나의 일병시절 213- 군대송금 2 (2사단, 노도부대, 32연대, 스키대대, 양구, 구암리, 소양호, 군대이야기, 군복무담, 군인월급, 군인 용돈, 군대 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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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병시절 213

군대 송금 2

나는 군에 입대할 때 돈을 거의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돈을 넉넉히 가지고 올 형편도 안 되었지만 내가 선배들에게 들은 군대 정보로는 돈을 많이 가지고 가면 군대에서 모두 빼앗긴다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입대하는 사람들은 갖가지 방법으로 돈을 숨겨 가지고 들어가는 방법들이 회자되었습니다.
누구는 팬티 고무줄 있는 곳을 뜯고 넣어갔다고 했고 누구는 볼펜 속에 넣어가지고 갔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입대한 뒤 보니까 속옷까지 모두 군용으로 갈아입기 때문에 옷 속에 감추는 방법은 절대 성공할 수 없는 상황이더군요.

나는 처음부터 구차하게 그런 방법으로 돈을 숨겨가지고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군대라는 곳이 돈 쓸 일이 거의 없는 곳이라는 생각에 입대할 때 최소한의 필요 경비와 약간의 여분 정도만 가지고 들어갔던 것입니다.

훈련소에 입소하던 날 중대 인사계의 지시로 소지하고 있던 현금을 모두 제출하고 그 대신 훈련소에서 사용할 수 있는 쿠폰 8천원어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쿠폰 8000원은 다 써버렸습니다.
아직도 훈련기간이 한참 남아있어 걱정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PX에서 외상을 준다고 하더군요.
바로 우리가 인사계에 맡긴 예치금을 담보로 외상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PX를 들락거리며 외상거래를 했고 퇴소할 때는 예치금을 다 써버리고 무일푼 알거지가 되어 있었습니다.
다행히 퇴소할 때에 그동안 월급을 계산해 주었는데 12월은 보너스 달이라 5천 원 정도 손에 들고 강원도에 올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춘천 103보충대와 2사단 보충대를 거치면서 몇 차례 PX를 드나들다 보니 막상 자대배치 되었을 때는 수중에 거의 돈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자대에서의 졸병생활은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는 분주한 나날이었습니다.
바쁜 것 뿐 아니라 졸병이 임의로 PX에 다닐 수도 없었습니다.
비록 춥고 배고픈 졸병이었지만 내 마음대로 사먹을 수 없었기에 돈이 그리 필요하지는 않았습니다.
가끔 소대원들이 야간에 술을 마실 때나 또는 훈련 나갈 때 돈을 갹출하여 부식류 등을 사올 때가 있었는데 이때는 거의 분대장과 고참들이 돈을 내서 해결 했습니다.
항상 호랑이같이 무서운 고참들이었지만 돈 내는 문제만큼은 졸병들에게 거의 부담을 시키지 않는 것이 우리소대의 전통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1981년 3월 1일 어머니께서 면회를 오셨고 비로소 나도 경제력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뒤에 몇 달 간격으로 사랑하는 여인이 면회 오면서 얼마간 용돈을 챙겨 주었고 첫 휴가를 다녀오는 바람에 그런대로 부족함 없이 1981년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군대생활을 1년 이상 하고 내 밑으로 졸병들이 생기면서 이제는 내가 돈을 써야할 일들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첫 휴가를 다녀오고 나서 연말연시와 휴양소 입소 그리고 동계훈련을 거치면서 휴가 때 들고 온 용돈이 바닥 난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아무래도 내무생활이 좀 더 자유로워지면서 PX에 가는 횟수가 늘었고 동계훈련 등에 좀 더 많은 금액을 부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앞으로 팀스피리트 훈련이라는 큰 산이 남아 있는데 무일푼 상태에서 어떻게 감당 할 수 있겠는가.
앞으로는 훈련 나갈 때나, 소대 회식 같은 것을 하게 되면 나도 일병 말년으로 일정부분 분담을 해야 하는데 빈털터리가 되었으니 답답한 일이었습니다.
고민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부모님께 손을 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휴가를 다녀 온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또 집에서도 설 명절 준비에 동생들 학비 등으로 형편이 여의치 않은 것을 알기에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내가 직접 부모님께 말씀드리기가 민망하여 사랑하는 여인에게 편지를 띄워 내 사정을 이야기 하고 부모님께 대신 말씀 전해달라고 부탁을 한 것이 바로 동계훈련을 나가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십 여일이 지난 2월 3일 집에서 온 편지에 돈을 대월리 사슴집으로 보냈다는 내용이 있었고 그 다음날 짬을 내어 사슴집에 가보니 과연 우편환이 와 있었습니다.
단돈 2만원.
그러나 일병 월급 7개월치에 해당되는 군인으로써는 거금이었습니다.

사슴집 주인에게 환전을 부탁하고 2월 5일 다시 가서 돈을 찾아 돌아오는 발걸음이 왜 그리 무겁던지......
집에서도 여러모로 씀씀이가 많을 터인데도 아들의 소식을 듣고 황망히 돈을 마련하여 부치셨을 부모님 마음이 어떠하셨을지 생각하니 부대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고 눈물이 어렸습니다.
이날 이후 다시는 부모님께 송금을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군대에서 경험했던 가슴 아픈 하나의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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