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수경 / 아트디렉터
[앵커]
독일 국회의사당을 천으로 뒤덮어 전 세계 이목을 끌었던 예술가가 있습니다. 바로 불가리아 출신의 '크리스토 자바체프'인데요. 익숙한 건축물, 자연공간을 탈바꿈시켜 신선한 감동을 줬던 미술가이죠. 오늘 '사이언스 in Art' 에서는 크리스토 자바체프의 일생과 작품 그리고 대지 미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박수경 아트디렉터와 함께합니다. 안녕하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베를린의 독일 국회의사당이 포장됐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요? 진짜 의사당이 통째로 포장이 됐나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베를린의 국회의사당 건물이 대형 포장지에 둘러싸였던 적이 있는데요. 바로 크리스토 자바체프의 작품입니다. 크리스토는 이 프로젝트를 승인받기 위해서 24년의 세월 동안 독일 의회 등을 설득시켰다고 하는데요. 1971년에 처음 구상한 후, 94년에서야 승인이 나서 그로부터 1년 후인 95년 6월에야 비로소 완성된 작품입니다. 스케일이 어마어마하죠. 말 그대로 하나의 거대한 건축물을 포장해버린 건데요.
우리가 일상 속에서 쉽게 볼 수 있던, 익숙한 건축물이지만 이렇게 전혀 보이지 않게 포장을 해버리면 갑자기 낯설어지고, 이 건축물의 원래 기능이나 특성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베를린 국회의사당은 독일의 의회 민주주의와 입헌군주제 간의 협치로 건립된 건물이자 상징이기도 한데요.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국민에게 어떤 공간 개방성과 투명성 그리고 기존 이 건축의 의의 등을 상기시켰다고 크게 호평받기도 했습니다.
[앵커]
크리스토 자바체프는 어떤 작가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인터뷰]
크리스토 자바체프는 불가리아 출신의 대지미술가입니다. 방금 보신 국회의사당 프로젝트처럼, 건축물이나 오브제, 자연환경 자체를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여 포장하는 작가로, 대지 미술의 대표적인 작가로 손꼽히는데요. 불가리아에서 성장하고 체코에서 무대디자인을 공부하다가 1958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는데요. 이때부터 실제 살아있는 사람이나 오브제 등을 포장하기 시작하고 또 포장 미술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196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공공건축물, 야외 환경 등의 포장을 시도하는데요. 뉴욕에서 부인인 잔 클로드를 만나 함께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크리스토의 대표작으로는 파리의 퐁네프 다리를 포장한 작품과 콜로라도 계곡에 대형 커튼을 설치한 '밸리 커튼', 그리고 유작이 된 프랑스 파리의 '포장된 개선문' 등이 있습니다.
[앵커]
크리스토가 대지 미술가라고 하셨는데, 대지 미술이란 야외에 작품을 설치하는 것을 의미하나요?
[인터뷰]
대지 미술은 자연환경을 활용한 작품, 또는 프로젝트를 말하는데요. 주로 미술품의 상업화에 대한 저항 또는 환경 운동의 맥락을 담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자연의 요소를 활용한 작품이나 프로젝트, 또는 자연환경에 전혀 다른 재료를 더해서 설치하는 것이 바로 대지 미술입니다.
미술관이나 갤러리 등 제도화된 시스템 밖으로 나온 예술로서 목소리를 내기도 하는데요,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 부부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에 일체 후원 받지 않고, 모든 비용을 직접 충당하기도 했습니다. 또, 작품을 보는 사람들 또한 관람을 위해 돈을 지불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을 고수하면서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공 건축물이나 자연환경에 작품을 설치해서 예술의 상업화를 거부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 부부는 주로 도심 속 환경 즉, 산책로나 다리 등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자연에서는 해안가, 섬, 계곡이나 산 등에서 작업했습니다.
[앵커]
크리스토의 부인인 '쟌 클로드'가 크리스토의 대형 프로젝트를 함께 했다고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두 부부와 함께했던 빈스 데이븐포토라는 컨설팅 엔지니어는 부부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는데요.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는 이전에 한 번도 해본 적 없고 다시는 볼 수 없는 무언가를 디자인하고 구축한다. "모든 프로젝트는 일생에 단 한 번뿐인 기회다." 때문에 굉장히 흥미로웠다고도 밝혔습니다.
이처럼 크리스토 부부는 굉장히 유니크하고 스케일이 큰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해왔는데요. 특히 잔 클로드는 원래 미술 전공자가 아니었습니다. 철학을 전공했던 잔 클로드는 크리스토를 만나면서부터 대지 미술에 눈을 뜨기 시작한 건데요. 함께 작품 구상은 물론, 프로젝트의 자금 조달을 책임지기도 할 만큼 예술에 진심이었다고 합니다.
이 둘은 결혼 후 1961년부터 함께 공공 건축물을 포장하기 시작하고, 누구나 무료로 예술을 즐겨야 한다는 공통된 철학 아래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대형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진행하게 됩니다.
[앵커]
대표작으로는 어떤 작품이 있을까요?
[인터뷰]
네, 아마 국내 많은 분들이 이 프로젝트를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을 포장한 건데요. 2021년 9월에 진행된 '포장된 개선문'입니다. 파리에서 에펠탑 다음으로 유명한 장소가 바로 개선문이죠. 먼 옛날 전쟁이 끝난 후 금의환향하는 군사들을 환영하거나 전사자를 기리던 장소이면서 또 오늘날에는 수많은 관광객이 오가는 '포토스팟'이기도 합니다.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가 무려 1961년부터 구상하기 시작해서 약 60여 년의 시간 동안 준비한 프로젝트인데요. 개선문을 재활용 천과 붉은 밧줄로 감쌌습니다. 이런 거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면 당연히 당국의 협조가 있어야겠죠. 프랑스 정부와 파리시의 지원 아래 진행됐다고 합니다. 크리스토 부부가 한때 파리 거주했을 때 지내던 집이 개선문 근처라서, 개선문을 매일같이 보면서 영감을 얻었다고 전해지는데요. 1961년에 첫 스케치를 한 후 점차 발전되어 1988년에는 본격적인 스케치가 시작됩니다. 2018년에 마크롱 대통령을 만나서 이 프로젝트에 대해 발표하고 결국 허가를 받아 진행하게 된 겁니다. 60여 년의 긴 시간 끝에 마치 선물처럼 포장된 개선문이 완성되었는데요.
아쉽게도 전시 준비가 한창이었던 2020년 5월에, 크리스토 자바체프는 뉴욕의 자택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하지만 크리스토의 조카인 블라디미르 자바체프를 포함해 기존 프로젝트팀이 작업을 이어받았고, 무사히 완성되었다고 하고요. '포장된 개선문'은 크리스토 자바체프의 유작으로 남게 됩니다.
[앵커]
이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모습이 모두 공개되었다고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때문에, 처음에는 사람들이 설치 광경을 보고 보수공사를 하는 줄 알기도 했다고 합니다. 2020년부터 작업이 시작됐는데, 중간에 조류 보호 연맹의 요청이라던가, 코로나 등의 이슈로 연기가 되기도 했지만, 작업은 틈틈이 진행되었는데요. 구조물이 설치되는 모습부터 포장 천이 감싸지는 모습까지 전부 공개적으로 진행되어 누구나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이 또한 크리스토 부부의 뜻이기도 했는데요. 한 측근은 인터뷰에서 “부부에게 예술은 모든 사람이 무료로 즐길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앵커]
크리스토 부부가 협업의 대가라고 하던데요. 둘뿐만 아니라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에게 늘 진심이었다고 하는데 어땠나요?
[인터뷰]
네, 작업들이 아무래도 엄청난 시간과 비용, 또 인력이 투입될 수 밖에 없는 규모죠. 실제로 하나의 프로젝트당 수백 명의 작업자가 투입되었다고 하는데요. '둘러싸인 섬'이라는 프로젝트가 있었습니다. 마이애미 비스케인 만의 11개 섬을 분홍색 천으로 두른 작업인데요, 이때는 해양 생물학자와 조류학자, 변호사와 건축가 및 다양한 행정 관계자까지 총 400여 명의 인력이 투입되었다고 합니다.
크리스토 부부는 이렇게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을 ‘가족’이라고 생각했는데요. 특히 잔 클로드는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다. 거기에는 미술품 수집가, 변호사, 엔지니어 등의 사람들이 포함된다. 사실 크리스토와 나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크리스토 부부는 자신들이 구상이나 그 외 여러 가지 큰 맥락을 짜지만, 그 외의 훨씬 많은 일을 담당하고 작업하는 많은 작업자와 관계자들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동등한 가족으로 대우했던 겁니다. 나아가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들까지 생각했던 부부이기 때문에, 시간은 오래 걸리더라도 대규모의 명작들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앵커]
크리스토의 많은 작품들은 대지 미술, 설치 미술이다 보니 이제는 철거돼 직접 보긴 어렵지만, 구상, 그리고 설치 과정들, 그리고 그런 시도들이 많은 이들의 마음에 예술로 남아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박수경 아트디렉터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사이언스 김기봉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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