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추분(秋分) [𝑷𝒍𝒂𝒚𝒍𝒊𝒔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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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미리 만들어 놓은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잠시 걸었다. 한 시간 전쯤만 해도 무서울 정도로 비바람이 몰아쳤는데 점심을 먹고 나오니 거짓말처럼 햇빛이 쨍쨍했다. 바닥에는 물웅덩이가 군데군데 고여 있었고, 그 위로 햇살이 내리쬐었다. 동시에 바람이 불어 햇살이 들은 웅덩이에 작은 파도가 치고 있는 걸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거리에 물웅덩이가 고여있으면 지독한 습기가 옷을 적시고 내 온 피부를 눌렀는데 지금은 가볍고 산뜻한 공기가 온통 가득했다. 순간순간 먹구름이 지나가며 하늘이 가려지는 때도 있었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 금방 먹구름을 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지금같은 순간은 일 년에 몇 번 볼 수 없는 날이다. 음,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런 날들과 매 계절의 의미는 늘 세상 도처에 널려있지만, 이것들을 신중하고 특별하게 직시하는 내 마음이 드물었다. 세상은 겨울을 준비하며 조금씩 움츠러드는 계절이지만 하늘은 그 어떤 의도나 미련도 없이 파랗다. 채도는 그 어떤 물감을 섞지 않고 금방이라도 튜브에서 짜 팔레트에 옮겨 담은 듯 맑다. 나는 김환기 화백을 좋아한다. 취미로 그림을 그리고, 즐겨 보는 입장에서 아직 그의 정신과 마음을 이해하진 못하지만, 그와 그의 반려자인 김향안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얻기보다는 버릴 줄 알았고, 현명하게 서로가 바라는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을 낮출 줄 알았다. 서로가 서로의 세상 속에 살았으며 그 세상은 김환기 화백의 붓끝에서, 김향안 평론가의 펜 끝에서 표현되었다. 김환기 화백의 그림에는 사람에게 말로 표현 못할 감동을 주는 '색'이 있고, 이 그림은 그 혼자만의 재능과 감각이 아니라 김향안 평론가의 '협조'를 통해 탄생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두 사람이 만들어낸 색이 산책하며 올려다본 하늘에 온통 뿌려져 있었다. 김환기 화백이 그려놓았던 파란색이 내가 보고 있는 하늘에서 시작되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퍼런'보다는 옅고, '푸름'보다는 조금 더 진한 말 그대로 정확한 '파란'하늘을 앞으로 더 살아가며 지금보다 더 명확히 느낄 수 있을 수 있을까 생각하니 자신이 없었다. 다만, 평생 이런 것들을 느껴보지 못하고 스쳐 지나갈 사람들과 비교해 적어도 난 이것 하나만은 정확히 느끼고 잠시나마 생각했으니 내가 그들보다 조금은 나은 점이 있다는 별 쓸모도, 의미도 없는 우월감에 조금은 뿌듯했다. 다음에 날 감탄시킬 하늘은 이젠 '파랑'으로도 표현되지 못할 더 아름다운 하늘이며 이것은 곧 내 마음이 지금보다 그러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다시 느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큰 상관은 없다. 적어도 '파랑'이라는 단어 하나만큼은 어떤 것인지 난 정확히 이해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파랑, 이걸로 되었으니 말이다.




00:00 가을 - 615
03:14 가을 - 다린
07:08 2000년6월 25일 - 명주혁
11:56 그대야 - 프롬
16:22 그렇게 우리는 (Feat. 프롬) - 권영찬
21:40 그냥 있자 (Piano Ver.) - 이설아
26:39 오늘의 안녕 - 이영훈
30:49 Replay - DAIN
(https://soundcloud.com/ddaiin/replay?...)
35:13 사라진 소녀 - 윤종신, 루싸이트 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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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네일 : Pride And Prejudice(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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