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눈물, 스리랑카 (역사기행 2007.02.25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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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종합병원이 설립된 곳, 소승불교의 종주국으로 인도, 태국, 미얀마 등지에서 건너온 수많은 유학생들이 공부했던 곳, 5천 명의 승려들이 머문 국제대학을 세운 2600년 전의 고대도시 ‘아누라다푸라’가 있는 스리랑카! 2600년 전의 약탕과 수세식 변기는 당시 뛰어났던 스리랑카의 고대문명을 짐작하게 한다. 찬란했던 옛 번영을 뒤로한 채, ‘인도의 눈물’이 된 스리랑카의 역사를 따라간다.

▶▶ 취재 내용
인도의 남동쪽, 인도양에 위치한 아름다운 섬나라 스리랑카! 국토의 모양이 눈물방울처럼 생겨 ‘인도의 눈물’이라고 불린다.
인구의 70%가 불교를 믿는 스리랑카는 계율이 엄격한 소승불교의 성지로, 옛 부터 불경을 공부하기 위해 미얀마, 타이, 중국, 한반도 등지에서 수많은 승려들이 유학을 온 곳이었다. 곳곳에 사원과 불상을 세워 찬란한 불교문화를 이룬 스리랑카! 스리랑카의 고대 왕조인 싱할라 왕조는 ‘아누라다푸라’에 세계 최초로 종합병원을 세워 약탕과 수술도구를 사용하여 병자를 치료했다. 또한 목욕탕과 수세식 변기를 갖추는 등 놀라운 선진문명을 이루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스리랑카에는 풀리지 않는 오래된 현안이 있다. 바로 불교를 믿는 싱할라족과 힌두교를 믿는 타밀족 간의 종족 갈등이다. 18세기 말,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된 스리랑카는 타밀족과의 갈등으로 유혈 사태로까지 치닫게 된다.. 싱할라족과 타밀족 간 분쟁의 역사, 그 뿌리는 깊다. 식민 통치가 빚어낸 눈물의 역사와 고대 스리랑카의 번영! 그 명암의 흔적을 찾아 기행을 떠난다.

▶ 아누라다푸라 - 세계 최초로 병원을 설립하다
‘아누라다푸라’는 스리랑카에 처음으로 왕국을 세운 싱할라 왕조의 첫 번째 수도이다. 수백 년 동안 밀림 속에 파묻혀 있던 이 고대 도시는 1912년 발굴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2천 6백 년 전, 싱할라 왕조는 고도로 뛰어난 의학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세계 최초로 종합병원을 세워 병자들을 치료했는데, 약을 탄 물에 몸을 담가 치료할 수 있게 약탕을 만들고 의학서는 물론 각종 수술 도구들을 사용하였다.

▶ 바위 위에 세워진 철옹성, 시기리야!
왕은 왕궁을 세웠다. 5세기 후반,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카사파 왕은 동생의 반격이 두려워 바위 위에 왕궁을 지었다. 그러나 결국 카스파왕은 동생의 공격으로 전쟁에 패하고 자살을 택한다. 사자 발톱 모양을 한 거대한 시기리야 입구를 통과하면 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수 있는 절벽 계단이 이어진다. 바위 정상에 위치한 왕국은 바깥쪽에는 인공호수를 파서 해자를 만들고 그 물로 거대한 정원을 만들었다. 시기리야를 통해 고구려의 ‘오녀산성’과 비슷한 구조와 기능을 갖춘 좋은 예를 찾아 볼 수 있다.

▶ 치밀하게 설계된 계획도시, 폴론나루와
기원전 3세기부터 타밀족에게 침입을 받은 싱할라 왕조는 7번에 걸쳐 수도를 옮기게 된다. 싱할라 왕조가 새로 옮긴 수도, 폴론나루와는 적이 쉽게 침입하지 못하도록 요새화하고 너비 9킬로미터의 거대한 인공호수를 만들었다. 이 인공호수를 통해 도시로 물이 들어갈 수 있도록 수로시설을 갖추었으며, 이것은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폴론나루와의 왕궁터에 있는 7층 건물은 천여 개가 넘는 방들을 갖췄던 것으로 당시 왕궁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 실론티의 고장, 캔디
13세기, 타밀족의 침입으로 싱할라 왕조는 스리랑카의 남부지방에 위치한 ‘캔디’로 수도를 옮긴다. 캔디로 가는 길에 있는 천 미터가 넘는 푸른 산들은 모두 차 밭이다. ‘실론티’로 알려진 홍차는 스리랑카에서 재배되는 것으로, 스리랑카의 옛 이름인 ‘실론’에서 따온 것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19세기 영국 식민지 시절 스리랑카로 강제 이주된 타밀족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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