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상징 공간’ 청와대 영욕의 74년 / KBS 2022.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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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 이래 청와대는 대한민국 최고 권력의 상징이었습니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집무실이자 관저의 명칭을 넘어, 당대의 정치 권력과 역사의식, 시대정신이 공간에 구현된 장소이기도 합니다.

2022년 윤석열 20대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하겠다고 밝히면서, 정치적 장소로서 청와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전망입니다.

74년간 영욕의 정치사가 펼쳐진 청와대의 변화상은 KBS 아카이브에 영상으로 보관돼 왔습니다. 1948년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취임 직후부터 2022년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청와대의 변화에 담긴 시대상을 영상으로 정리했습니다.

■ '식민통치의 유산' 일제 총독 관저였던 경무대

최초의 대통령 집무실인 경무대는 일제강점기인 1939년 8월 조선총독부가 총독 관저로 세웠습니다. 3명의 총독이 사용했고, 해방 이후에는 주한 미군 사령관 관사로 사용됐습니다. 경무대가 대통령 관저가 된 것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의 일입니다.

미 군정 하지 장관이 군정 이양 과정에서 이 대통령에게 관사를 대통령 관저로 넘기겠다고 제안하자, 이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입주 시기도 늦었습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1948년 7월 20일 선출돼 24일에 취임했지만, 한달 뒤인 8월 22일에야 경무대로 입주했습니다.

경무대(景武臺)라는 이름은 조선 시대부터 이 지역의 명칭이었습니다.

경복궁 뒤 소나무 숲이던 이 곳에서 조선시대에는 과거 시험이나 궁술대회가 열렸고, 일제 강점기에는 소풍이나 각종 행사가 열렸습니다. 조선 총독 관저가 세워진 이후에도 기존의 용산 관저와 구분해 경무대 관저로 불렸습니다.

조선 총독 관저를 경복궁 뒤편에 지은 것은 식민통치의 일환이었습니다. 일제는 조선 왕조의 왕도정치 이상에 따라 배치된 경복궁을 훼손해 조선총독부를 짓고, 경복궁의 주산인 북악산을 훼손해 총독 관저를 지었습니다. 앞서 대한제국은 당시 경운궁(현재 덕수궁)을 중심으로 일반 국민의 생활공간과 좀더 가까운 근대적 도시개조사업을 계획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승만 정부는 식민 통치의 공간 배치를 그대로 수용했습니다.

대통령 집무실이 된 경무대는 봄꽃철에 정원을 일반에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촬영된 영상을 보면, 줄 지어선 시민과 학생들이 정원과 연못을 구경하고 이 대통령 부부와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기도 했습니다.

1955년 시작된 개방 행사는 4, 5월에 사흘 가량 진행됐고, 1968년 1.21 무장공비 침투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계속 열렸습니다.


■ '독재 청산' 경무대에서 청와대로 변경

경무대를 청와대로 명칭을 바꾼 건 2대 윤보선 대통령입니다.

1960년 4.19 혁명 당시 부정선거에 분노한 시위대는 경무대 앞까지 진출했습니다. 경무대 앞에서 투석전이 벌어졌고 경찰은 발포로 대응했습니다. 유혈 진압으로 경무대 앞을 포함해 전국에서 180여 명이 희생됐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를 발표하고 경무대를 떠나 사저인 이화장으로 돌아갔습니다.

윤보선 대통령은 취임 후 넉달 만인 196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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