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군 황현 순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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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黃玹, 1855~1910)의 본관은 장수, 자는 운경(雲卿), 호는 매천(梅泉)이다. 황희의 후손이며, 황시묵(黃時默)의 아들로 태어났다. 특히 시문에 능하여 1883년 과거에 응시했다가 그 부패상에 실망하여 귀향했으나, 5년 후인 1888년에 부친의 엄명으로 성균관 생원시에 응시하여 장원으로 합격했다.
하지만 시국의 혼란함과 관리들의 부패상을 개탄하며 관직진출을 단념하고 구례 만수동에 은거하였는데, 초가 3칸을 짓고 구안실(苟安室)이라 이름하여 학문연구와 후학의 교육에 힘썼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김택영과 같이 중국으로 망명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1908년 사립 호양학교(壺陽學校)를 설립하여 신학문 교육에 힘을 기울였다.
1910년 일제가 나라를 병탄하자 국치를 통분하여 절명시(絶命詩) 4수와 유서를 남기고 1910년 9월 10일 음독 순국하였다.
황현은 강위·이건창·김택영·정만조 등과 교류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문장가였다. 특히 황현은 이건창·김택영과 함께 '한말삼재(韓末三才)'라 불렸다.
1955년 후손과 지방 유림들이 생전에 살았던 곳에 매천사(梅泉祠)를 건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제공 : 항일영상역사재단(제작 202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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