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 한국사 273회] 이시애의 난 feat 20대 총사령관 밑에 70대 돌격대장이 들어오면 생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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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양정은 사건이 일어난 나흘 만에 참수되었다.(1466년 6월)

죽으려고 환장했다는 말은 딱 양정에게 어울리는 말이었다. 공신이라면 웬만한 비리나 부정은 다 눈감아 주었던 세조였다. 왕권에만 도전하지 않는다면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 수 있었을 텐데

양정은 왜 이런 무모한 행동을 했을까?

실록은 오랜 변방 생활에 대한 불만의 표현이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한명회가 뒤에서 조정했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술자리에서 세조와 대신들이 노는 꼬락서니를 보니 속이 뒤틀려져 홧김에 나온 행동이라고도 한다.

어쨌든 이 일을 계기로 세조도 공신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다.

그러던 어느 날... (1467년)

"저.. 전하~! 함경도 길주의 호족 이시애가 반란을 일으켰다 하옵니다."

이징옥의 난(1453년)에 이어 또 북쪽에서 난이 일어나니 세조는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이시애는 또 누구인가? 그자가 무슨 이유로 반란을 일으킨 것인가?"

이시애는 함경도 길주 출생으로 경흥진 병마절제사를 거쳐 첨지중추부사, 판회령부사를 역임한 길주의 대표적인 토호였다.

조부 이원경은 평안도 출신의 고려계 몽골인(이오로테무르)이며 이성계가 동녕총관부를 정벌할 때 30여 호를 거느리고 항복한 이후 대대로 함길도에서 근거하였다.

이들은 사병을 거느리며 자체방어를 하는 대신 그 지역을 왕처럼 다스렸다.

그러나 조선 건국 후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사병 해체작업이 진행되었고 중앙집권이 강화되었다. 이에 권력은 점점 줄어드니 지역의 호족들은 불만이 쌓여갔다. 그나마 위안이 있다면 고을의 수령은 호족의 자제로 삼아주니 체면은 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세조가 집권하자 이마저도 사라졌다.

세조는 자신이 직접 임명한 수령들을 파견하여 지역을 다스리게 하였다.

당연히 호족들의 불만이 있었다.

#한국사 #이시애의난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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