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HD역사스페셜 – 박지원의 열하일기 4천리를 가다 1부 고구려성을 넘어 요하를 건너다 / KBS 20060728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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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하일기의 ‘열하’ 는 어떤 의미인가?
박지원은 팔촌형이자 영조의 사위인 박명원의 자제군관 자격으로 연행길에 올랐다. 연행길은 보통
압록강을 건너 북경에 도착하는 것이 정해진 루트. 그러나 박지원 일행이 북경에 도착했을 때,
황제는 내몽고 지역에 위치한 ‘열하’ 에 있었다. 열하는 청나라 황제들이 즐겨 찾던 휴양지. 때문에
사신단은 북경에서 약 230킬로미터 떨어진 ‘열하’ 까지 가게 됐다.

- 조선사신단은 왜 노숙을 해야 했나?
제1편의 여정은 고구려의 옛 땅인 단동에서 요하까지. 취재팀은 고구려 전문가인 우석대 조법종
교수와 함께 대장정 길에 올랐다. 압록강을 건너 중국 대륙에 들어와 첫날을 보낸 조선사신단.
그들은 천막을 짓고 노숙을 해야 했다. 청이 정한 ‘봉금지대’ 때문이다. 청나라는 자신들의 발상지인
만주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봉금지대를 제안, 구련성부터 국경관문소인 ‘책문’ 까지는 사람이 살지
않았다. 취재진은 책문을 지나 ‘봉황산’ 에 도착, 옛 고구려의 성을 확인했다.

-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박지원이 본 역사의 비극!
봉황산성을 떠난 취재진은 ‘초하구’ 와 ‘연산관’ 등을 거치며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뼈아픈 역사를
반추한다. 박지원은 [열하일기]의 ‘허생전’ 에서 북벌의 무모함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청석령과 석문령. 조선사신들은 청석령 일대를 고구려의 고토로써 특별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현지에서는 지금까지도 고구려의 생활 방식인 ‘부경(창고의 하나)’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중원을 누빈 고구려의 기억
다음 행선지는 요동 벌판. 우리에게는 만주 벌판으로 더 익숙한 곳이다. 고구려는 한때 이 넓은
요동벌의 주인이었다. 취재팀은 중원을 누빈 고구려의 역사를 찾아가 봤다. 요동벌과 산봉우리들이
만나는 접점에는 고구려의 산성이 일렬로 줄지어 있다. 중원 세력들이 넘보지 못하게 1차 방어선으로 산성을 구축한 것이다. 요동벌심장부인 대도시 ‘요양’ 은 중국 대륙 동서남북을 잇는 요충지로,
고구려는 여기에 ‘요동성’을 세웠다. 요동성을 둘러보는 것은 조선 사신들의 연례행사였다.

- 청이 일어선 곳, 조선은 피눈물을 흘린 곳 ‘심양’
청태조 누르하치의 아들인 청태종 ‘홍타이지’ 는 병자호란 때 직접 군대를 이끌고 조선을 침략해
삼전도의 치욕을 안겨준 인물이다. 그는 심양에서 국호를 청으로 정하고 황제 즉위식을 올렸다.
한편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볼모로 끌려와 8년간 억류당했던 곳도 심양이다. 소현세자가 심양에
있던 시기, 청은 이미 만리장성까지 진출했으나 조선은 숭명반청을 고집했다. 그 때문에 조선의
백성들은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심양 곳곳에 남아 있는 당시 조선의 애환을 취재했다.

HD역사스페셜 55회 – 박지원의 열하일기 4천리를 가다 1부, 고구려성을 넘어
요하를 건너다 (2006.7.28.방송) http://histor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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