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역사추적 – 수라간의 비밀, 왕의 요리사는 남자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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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건강이 국가의 건강과 동일시되던 시절.
조선의 운명을 좌우하던 왕의 밥상, 수라!

왕의 밥상을 책임진 주방장은 수라를 올리는 수라상궁인가?
이조(吏曹)에 속한 조리사 숙수인가?

수라간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
1604년 선조가 마련한 연회를 그린 선묘조제재경수연도.
이 그림의 두 번째 그림 ‘조찬소’에는 다소 낯선 모습이 등장한다. 그림 속, 부엌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모두 남성인 것이다. 드라마의 소재로 등장하면서 한류의 주역이 되기도 했던 공간, 수라간! 하지만 그 실제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확연히 달랐다. 왕의 밥상이 만들어지는 곳, 수라간의 비밀이 조찬소 그림에 숨겨져 있다.

최초공개, 창덕궁 수라간
조선의 수라간은 분업, 전문화된 공간이었다. 1920년대 현대식 부엌으로 개축된 창덕궁 수라간에는 당시 사용했던 일제 오븐과 당시 쓰던 찬장까지 그대로 남아있다.
그렇다면 개축 전 조선의 수라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경국대전에 따르면 수라간은 대전과 왕비전 등 궁궐 곳곳에 있다. 이곳에 종사하는 인원은 400여 명. 밥을 짓는 반공, 생선을 굽는 적색, 술을 빚는 주색 등 한 사람이 평생 한 가지 일에만 종사했다. 왕의 요리사는 철저하게 분업화되어 있었고, 전문성까지 갖추고 있었다

왕의 요리사는 숙수라 불리는 남성이었다
세종실록에는 출퇴근을 하는 수라간 사람들에게 출입증을 발급한 기록이 있다. 기록에 따르면 남자는 380명 여자는 20여 명. 경국대전 역시 수라간 남녀의 비율은 15대 1로 명시하고 있다. 17세기의 소문사설 역시 남자들이 요리하는 모습을 기록. 여성들은 상을 차리거나 수라를 나르는 등 간단한 일만 맡고 있었다.
1903년. 왕의 수라에 관한 커다란 사건이 발생한다. 홍합을 먹은 고종의 이가 부러진 것이다. 요리의 책임자로 처벌받은 사람은 다음과 같았다.

“숙수 김원근(金元根), 사환 김만춘(金萬春), 숙수패장 김완성(金完成), 각감 서윤택(徐潤宅)”
그들의 이름은 모두 남자였다.

잘못 알려진 왕의 수라에 관한 진실
원행을묘정리의궤에 등장하는 정조의 7첩 반상.
흔히 상상하는 12첩 반상이 아닌, 소박한 수라상이다.
유교사회였던 조선에서 왕의 수라는 검소한 건강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그렇다면 수라에 대한 수많은 오해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1907년. 고종의 양위와 함께 궁의 살림을 맡아보던 사람들이 대거 해고된다. 당시 고종의 요리사였던 안순환은 이후 명월관이라는 요리집을 열어 궁중요리를 보편화시킨다.
우리에게 익숙한 수라상은 조선이 패망한 이후 상궁들이 이어받은 것이었다.

역사추적 3회 – 수라간의 비밀, 왕의 요리사는 남자였나 (2008.12.6.방송)
http://histor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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