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는 3천년이다. 터키, 몽고는 단지파 민족이다. 옛날에 3200년 전에 그 이스라엘 나라에서 동쪽으로 동쪽으로 이주해서 우랄알타이 산맥까지 올라와서 살게 됐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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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역사는 3천년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수천년 미국 시카고에서 성서언어학 수메르어을 연구하는 강신택 박사가 '단군이 수메르인'이라고
주장하여 학계의 주목을 받는 바 있다. 그에 따르면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일으켜 B.C 3천에서 2천년까지 융성했었던 스메르족이 아케디언족에 의해 멸망당하자 농사법과 무기 등 선진문명을 갖고 약 B.C 1천년경, 한반도에 들어와 세운 나라가 '조선'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단군이 수메르인일 뿐만아니라 우리나라의 역사도 5천년이 아닌 3천년인 셈이다. 그는 메소포타미아라는 세계최초의 문명을 이뤘던 수메르족의 말을 20년간 연구하면서 이같은 '가설'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수메르어의 어순은 주어, 목적어, 동사, 순으로 우리말과 문장형식이 똑같고 조사로 쓰이는데 '-로'는 ra(라) 로 , '-에서'는 es(에스)로 각각 비슷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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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히브리어에 절대적 영향을 준 것이 바로 수메르어라는 사실이다.
언어는 곧 지혜와 상통한다고 볼수 있다. 따라서 히브리 민족의 근원인 수메르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의 고향도 메소포타미아 남부(갈대아)에 위치한 '우르'가 아닌가 그도 수메르인인 것이다.

고려때 행촌 이암 선생이 전한 단군세기에는 위의 사실에 대해 부연설명하고 있다.
단군세기는 1세 단군 왕검으로부터 47세 단군고열기까지 각 단군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주요 사건들을 편년체로 기록한 것으로, 우리가 흔히 지칭하는 단군은 1세 단군이다.

제15세 단제때의 기록을 보자. '신시2년 기원전 1660년 대홍수가 나서 민가가 크게 해를 입었다. 겨울 10월에는 양운국과 수밀이국의 사신이 와서 특산물을 바쳤다. 가을 7월에는 우루국 사람 20여명이 투항해 오니, 염수 근처의 땅에 정착하도록 명하였다.
단군세기를 비롯 북부여기, 태백일사, 삼성기, 단기고사, 등의 '한단고기'들은 사학계에서는 소위 이단시
되고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고대사에 있어서 정통으로 취급되고 있는 사서들의 '곰이 사람을 낳았다.'
는 식보다는 훨씬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왕이 제위등을 따져봤을 때 부분적으로 시기가 맞지 않거나 연도계산이 틀린 것도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일하게 등장하는 사건들이 있다. 이를테면 위의 것들이다.
위에서 언급한 영운국, 수밀이국, 우루국은 모두 한인시대의 한국 12연방 가운데 하나로서 특히 수밀이국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일으킨 수메르족의 나라로 츠측된다. 그리고 우르국 역시 서남아시아의 '우르국' 또는 성경에 나오는 '갈대아 우르국'과 전혀 무관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역사는 오히려 상고시대의 지구촌을 이룬셈 아닌가? 광활한 영역을 통치한 칭키즈칸은 이미
인터넷의 개념을 알고 있었다는데...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단군의 지배영역이다. 아마도 전후 상황으로 보건데 통치영역이 지나칠 정도로 넒었거나 아니면 한반도에 정착하기 이전에 보인다. 아직까지도 우리는 단군의 첫 도읍지인 아사달이 어디인지조차 모르지 않는가. 어쩌면 흑해나 지중해 연안에서 찾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르국 사람이 투항해오자 염수 근처의 땅에 정착하도록 명했다고 했는데... 어쩌면 이 염수 소금물처럼 짠 호수가 바로 사해는 아닌지...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라고 하면 우리나라 전역을 일컬는 것처럼 이스라엘에서는 그 전역을 '단에서 브엘세바'라고 한다. 레바논 동북지방에 위치한 단은 단지파가 가나안 땅에 쳐들어가기 위해 200년간을 싸우는 동안 점령하고 있던 땅으로 원래는 '라이쉬'였다고 한다. 그후 또다시 레센도 점령하여 '단'이란 이름으로 고쳐 불렀는데. 이처럼 단지파는 이동하여 정착하는 곳마다 단이라는 이름을 즐겨 사용하였다. 그러나 단지파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동시에 기원전 10세기경 성서에서도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그들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최근 학자들은 그후 단지파의 경로에 대해 시리아-이라크-이란-중국 북부 우랄알타이 산맥 -한반도라는데 대체로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특히 우랄 알타이 산맥에서는 100년간 정착함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자란 2세들은 아예 히브리말을 잊어버리고 알타이 말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동양사에서 우리 민족을 우랄 알타이어족이라 부르는 것도 이런 연유이다. 일본어에 지천으로 널린 뜻모르는 단어의 어원이 우리나라에 고어가 많듯이 마찬가지로 우리가 뜻모르고 쓰는 대부분의 언어도 몽고어를 비롯한 외래어들이 많다. 가령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으례 '야호'하고 외치는데 이것이 바로 현재도 쓰이고 있는 몽고어다. 컴퓨터와 전화가 없던 시절, 장거리를 단번에 전달하는 유일한 방법은 이 산 꼭대기에를 향해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야호~' 가도 되느냐고. 비록 민족의 대이동에 대한 기억은 사라졌을지언정 언어의 생명력은 아직도 남아 단지파의 이동경로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수메르어에 뿌리를 두고 다음으로 히브리어, 몽고어, 중국어가 남아 있는 것이다. 나중에 영향을 받은 것일수록 많이 남아 있는 법,그렇다면 과연 히브리어는 어디에 남아 있을까?

현재 국립중앙 박물관과 광주 박물관에는 아주 희귀한 고조선시대 와당이 소장되어 있다.
대동강변에서 출토된 것인데, 놀랍게도 고대히브리 문자가 씌여 있다. 그 내용은 다분히 종교적인 것으로 '잠언을 가르치는 사사가 통치한다', '오엽화와 협력하여 신의 나라에 단결하여 들어가자', '도착했다'
'성도가 모여서 기도함으로 하나님 나라가 회복된다'이다. 이것은 히브리인들이 대략 B.C.1천년경에 사용했던 것으로 그 당시의 것에서 약간 진보된 것도 있다. 이 문자는 야곱의 12지파만이 사용한 것인데,그 문자의 사용시기가 성경상에서 갑자기 사라진 단지파의 소멸시기와 일치하고 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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