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과 런던 사이 -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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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더블린

오늘은 말로만 듣던 그리스 커플이 오늘 날. 사과와 오렌지는 약속이 있다고 했기에 내가 그들에게 숙소를 안내해 주기로 되어 있었다.

그들의 등장은 무척 화려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엄청 시끄러웠다. 몸도 컸다. 남자는 새까만 머리에 짙은 눈썹이, 여자는 핑크색으로 부분 부분 물들인 붉은 머리가 눈에 띄었다. 두 사람이 대화를 하면 확성기에 입을 대고 말하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경상도 사람이 서울 사람에게 “아, 싸우는 거 아니라니까!” 하는 상황이랑 비슷했다. 그들은 그냥 대화를 나누고 있을 뿐이지만, 내 귀에는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들렸다. 액센트도 엄청 강하다. (그런데 다른 나라 사람들 액센트가 너무 강해 알아듣기 힘들다고 불평했다.) 물론 내 방에서도 그들의 대화 소리가 다 들렸다.

숙소에서 욕실이 딸린 가장 큰 방을 배정 받은 그들이었음에도 집안 구석구석을 살펴본 두 사람의 표정(처음 보는 사람 앞이니 예의상 표정 관리를 하는 어색한 미소)은 좀 불행했다. 원인은 알 만한 것이긴 했다. 샤워실의 수도꼭지가 고장 나서 더운 물 조절이 힘들고, 가구는 낡았고, 한동안 방치된 방이니 먼지도 좀 쌓여 있었다. 하지만 호텔을 기대한 게 아닌 내 눈엔 잠시 지내다 갈 곳 치고는 괜찮아 보였는데 그들의 기대엔 못 미치는 듯했다.

그들에게 근처 마트의 위치를 가르쳐 준 후 두 시간쯤 지났을까… 우당탕쿵쾅 소리가 들리길래 부엌으로 내려갔더니 두 사람이 사 온 물건이 바닥에 잔뜩 늘어서 있었다. 생수와 식재료는 물론 온갖 청소도구와 포크, 나이프, 식기까지 사 온 그들이었다. 아니 길어야 두 달 머물 집인데... 부엌에 식기가 있다는 사실을 내가 깜빡하고 안 알려줘서 그런 건가 싶어 미안해 하고 있었는데 이들을 가만히 지켜보니 그런 게 아닌 듯했다.

수박은 섬세한 남자라서 물은 반드시 끓여 먹어야 한다고 했다. 아일랜드의 수도물은 깨끗해서 그냥 마셔도 보통은 탈이 없는데 그의 주장으론 자기는 위가 너무너무 예민해서 아무리 깨끗한 물도 끓여먹어야 한다 했다. 그래서 그는 매번 수도물도 아닌 생수를 사 와 끓여 먹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장 배탈이 난다면서. 한국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그들이었기에 삼겹살을 제안했더니 (고기라서 대부분 서양인들에게 무리가 없으므로) 돼지고기도 위가 약해 못 먹는다 했다.

그들은 새로 사 온 식기와 나이프, 포크만을 이용해 식사를 했고, 식기세척기는 절대 사용하지 않았다. 멜론은 싱크대에서 거품 목욕을 할 기세로 세재를 듬뿍 풀어 그릇을 박박 문질러 씻고, 뽀도독 소리가 날 때까지 헹궜다. 순식간에 대충대충 설거지하는 서양인들을 많이 봐 왔던지라 이러한 그녀의 모습이 무척 신선했다. 그들의 방에서 밤새 우당탕 소리가 난 것도 침실을 청소하느라 그런 것 같았다.

역시 사람은 다 다르다.


다음 날 아침, 빨리 출근해서 빨리 퇴근하고 싶은 나와 첫 날이라 빨리 출근하고 싶은 수박이 함께 나섰다. 멜론은 복장이 자유로운 회사에도 반드시 셔츠를 입고 출근하는 그에 대해 불평했다. 매일 셔츠를 빨고 다려야 한다며… 셔츠를 입고 안경을 쓴 수박은 확실히 좀 달라 보이긴 했다.

아침 시간에 유독 느긋한 사과와 오렌지를 기다리면 따라 늦을 것 같아 이틀 후부터는 나 혼자 출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편이 편했다. 각기 다른 서로의 보폭을 맞추지 않아도 되고, 억지로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되고, 듣고 싶은 음악을 들어도 되니까.

‘버스를 타려면 기다려야 하니 난 걸어서 출근한다. 충분히 걸을 만한 거리다’라는 내 말에 그는 흔쾌히 그럼 걷자고 했다. 여름에 있을 자신들의 결혼식을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리스의 여름은 더워서 여름이 되면 보통 자연스럽게 살이 많이 빠진다는 말을 덧붙였다.

몇 달 후에 식을 올리긴 하나 아직 결혼 전인데 그녀를 ‘피앙세’가 아닌 ‘와이프’라고 칭하는 것이 귀여웠다. 두 사람에겐 오래 연애하여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당연히 결혼하는 커플 특유의 편안한 분위기가 있었다. 두 사람은 어떻게 서로를 찾아냈을까 싶을만큼 잘 어울렸다.

10분 후 수박은 내게 헐떡이는 목소리로 아직 멀었냐고 물었다. 빠른 걸음으로 25분 거리란 누군가에겐 너무 먼 거리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결혼식을 대비해 근처 아일랜드 헬스장에 등록할 것이라 했다.

‘아니… 길어야 두 달 출장이래도….’

마침내 회사에 도착한 수박은 일을 시작도 하기 전에 완전히 지친 표정이었다. 회사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배정 받은 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주변 동료들에게 우리 숙소에서 회사로 오는 버스 시간을 물은 것이었다.

그 후로 그는 절대로 걸어서 출퇴근하지 않았다. 매일 아침 타운하우스 정문을 나서면 건너편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요컨데 나보다 일찍 집을 나서는 것이었다. 그런 그에게 손을 흔든 뒤 회사에 도착하면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먼저 도착한 것이었다.

예민한 위장 때문에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는 수박을 위해 멜론은 닭가슴살 요리를 했다. 후라이팬에 버터를 녹여 닭가슴살을 바싹 익혔다. 크림 치즈를 듬뿍 넣었다. 달달한 기름내가 온 집 안에 진동했다. 6시 30분에 집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는 그가 6시 45분까지 도착하지 않자 그녀는 사색이 되어 배가 너무 고파 더 이상 그를 기다리기가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10분 후 마침내 그가 도착하자 그녀는 완성된 크림 치즈 치킨 요리 위에 파마산 치즈를 솔솔 뿌리더니 냉장고에서 다이어트 콜라를 꺼내 침실로 향했다.

수박과 멜론은 출장 기간 중 헬스장에 등록하지 않았다.

몇 달 후 접한 결혼 사진 속 그들의 모습은 헬쓱하지 않았다. 그러나 둘은 무척 잘 어울렸고, 충분히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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