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자전] 조카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수양대군(首陽大君) 이유(李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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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대군 이유(李瑈)는 조선의 제7대 국왕 세조(世祖)로 아버지 세종이 충녕대군이었던 시절 차남으로 태어났는데 이듬해인 1418년에 세종이 왕위에 즉위했지만 5세 무렵까지 사저에서 자랐습니다.
이유는 정확히 전해지지 않으나 형인 문종은 일찍 입궐했고, 밑의 동생인 안평대군부터는 세종 즉위 이후 출생해 궐에서 자랐기에 그와 형제들의 가장 큰 차이를 사저에서 지낸 기간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 곁에서 떨어져 뛰놀며 자란 것이 그의 탁월한 체력과 운동 신경, 자유분방한 성품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인데 1428년 대군에 봉작되었고, 군호가 여러번 바뀌었지만 최종적으로 수양대군이었습니다.
현대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수양대군이라 흔히 불리지만, 왕자 시절은 진양대군으로 불린 시절이 12년간으로 제일 길었는데 휘나 묘호보다도 왕자 시절의 군호가 더 유명한 임금입니다.

간과되는 사실이지만, 1417년 태어나 1418년 세종 즉위 이후 1441년 세손이 태어날 때까지, 조선 왕위계승 서열의 잠재적 2순위였습니다.
서열이 절대적인 중요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세자빈만 두번 바뀌고, 14년 동안이나 아들을 보지 못한 형을 보면서, 수양대군 본인이 내심 왕좌에 대한 야망을 품고 있었을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그러나 만 24세가 되던 1441년에 세손이 태어나면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왕위에 오를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지고 말았는데 혈기왕성하던 시기에 겪은 이 경험은 그의 이후 행동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성군에게서 나온 무인 기질의 아들로 평가받지만 세조는 문(文)에도 뛰어났는데, 활쏘기를 좋아했지만 책을 다 읽기 전에는 활을 잡지 않겠다며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피리를 잘 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귀신이 궁궐에 나타나 피리를 불자 문종과 같이 있던 수양대군이 자신의 피리 실력이 조선 제일이라 자부함에도 저리 잘 불지는 못해 필히 귀신이 부르고 있다고 했답니다.
능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었는데 각별하게 뛰어났던 인물은 문종으로 장자이면서 세종 못지않은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었고 셋째 안평대군도 훌륭한 실력을 보였으며 세종의 다른 아들들도 모두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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