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금요미식회] 새벽에 받아온 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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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배 두부 (2020. 08. 19. 국민일보)

일베 아니다. 일배이다. 한자로 日配. ‘매일 배달’이라는 뜻이다.

옛날에는 동네마다 두붓집이 있었다. 밤새 두부를 쑤었다. 동이 트기도 전에 자전거나 수레에 두부를 싣고 골목길을 누볐다. “두부 사려어~.” 날이 밝으면 두부 장수는 구멍가게 앞에 두부 목판을 놓고 갔다. 구멍가게 주인의 마진은 두부 판매 가격의 절반이었다. 두부를 반절 팔고 나면 그다음 판매분부터는 자신의 수입이고, 그래서 가게 문을 닫을 시간에는 몇 모 남은 두부를 떨이로 팔거나 단골에게 덤으로 주었다. 마지막 한 모는 구멍가게 식구의 저녁 반찬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다음날 두부 장수는 구멍가게에 그날의 두부 목판을 내려놓고 비어 있는 안날의 목판을 가져갔다. 두부는 하루에 한 번 배달해 모두 처분했고, 이런 식품을 일배식품(日配食品)이라고 했다.

1980년대부터 두부는 더 이상 일배식품이라 할 수 없게 됐다. 두부를 물과 함께 플라스틱 곽에 넣고 살균처리를 한 포장두부가 등장했다. 살균처리를 했으니 유통기간이 크게 늘어났고, 마트의 두부는 몇 날 며칠을 두고 팔 수 있게 됐다. 유통과 보관이 수월해지면서 전국을 ‘커버’하는 대형 두부 공장이 섰다. ‘일배 두부’를 생산하던 동네 두붓집은 하나둘 문을 닫았고, 새벽 골목길의 두부 장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됐으며, 구멍가게 식구의 저녁 두부 반찬도 사라졌다. 무엇보다도, 갓 쑤어 콩 향이 짙고 보들보들한 두부가 사라졌다.

“파리에 사는 주부들은 빵을 사다 묵히지 않는다. 식사를 할 때마다 그녀들은 빵집에 가서 빵을 사오고, 남으면 버린다. 식사란 모름지기 그래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두부만 해도 그렇다. 막 사온 것을 먹어야지, 밤을 넘긴 두부 따위 먹을 수 없잖은가, 하고 생각하는 게 정상적인 인간의 사고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주장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갓 나온 두부를 먹어야지 어찌 밤을 넘긴 두부를 먹을 수 있다는 말인가! 일본의 두부 사정도 한국과 비슷함을 짐작할 수 있는데, 산업사회 먹을거리의 변화는 대체로 맛과는 정반대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두부는 갓 쑤었을 때에 가장 맛있다. 갓 한 밥이 가장 맛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두부 쑤는 기술의 차이는 시간 앞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 공장의 포장두부도 플라스틱 곽에 담겨 살균처리가 되기 전에는 극상의 맛을 낸다. 심지어 초등학교 학생들이 실습시간에 만든 두부조차 갓 쑤었을 때에는 맛있다.

여러분이 인지를 못 해서 그렇지, 여러분은 요즘도 가끔은 일배 두부를 그 맛을 감탄하며 먹는다. 등산로 초입에서, 아니면 어느 관광지에서 먹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 곳에는 ‘촌두부’ ‘시골 두부’ ‘옛날 두부’ 간판이 반드시 있는데, 이들 두부가 대체로 제조 당일의 일배 두부이다. 제조법과 응고제 등은 식당의 소규모 제조 방식과 공장의 대규모 제조 방식에 큰 차이가 없다. 반복해서 말하는데, 갓 쑤었을 때에는 촌두부나 공장두부나 둘 다 맛있다. 하루키식으로 표현하면 밤을 넘긴 두부인가 아닌가 하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우리 동네 상가에 일배 두부 공장이 있었다. 배달은 하지 않았지만 매일 두부를 쑤어 팔았다. 1인 혹은 2인이 운영하는 작은 공장이었다. 두부 제조 경험이 많지 않은 듯했고, 그러니 두부가 그날그날 달랐다. “오늘은 좀 단단하게 나왔어요” 하며 이를 숨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밤을 넘기지 않은 두부의 맛을 낸다는 것은 분명했다.

우리 동네 일배 두부 공장은 1년 만에, 겨우 1년 만에 문을 닫았다. 동네 일배 두부가 대기업 브랜드 포장두부와 경쟁을 해 버틴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나는 다시 밤을 넘긴 두부를 먹고 있다. 정상적인 인간의 사고를 한다고 해도 정상적인 인간으로 살 수 없게 하는 사회이다. 아, 일베 이야기가 아니다. 일배 두부 이야기이다.

황교익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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