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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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세중립 정책을 추구했던 대한제국(근세조선)은 1891년부터 영세중립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으나 1904년 2월 10일 일본이 러일전쟁을 일으킴으로서 실패하게 되었다."

대한제국의 영세중립 실패
서울주재 독일영사관 부영사인 허만 부들러(Hermann Buddler)는 1885년 3월 조선이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스위스와 같은 영세중립국이 되어야 한다는 방안을 고종(高宗)정부에 건의했다. 조선의 학자로 영세중립을 최초로 주장한 사람은 유길준(兪吉濬1856-1914)이다. 유길준은 1885년 12월 러시아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조선이 벨기에와 같은 영세중립 정책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고종정부에 건의했다. 유길준은 1884년 12월 발생한 갑신정변의 결과로 1885년 본국의 소환을 받고 귀국하는 길에 유럽을 경유했으며 벨기에의 영세중립 정책을 파악한 후 귀국했다.
1883년부터 조선에서 관세업무 보좌역으로 근무한바 있는 영국 왕립아시아협회 중국지부 회원인 체스니 던켄(Chesney Duncan)은 1889년 8월 그의 저서 Corea and the Power에서 조선이 강대국에 의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나고 강대국으로부터 조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조선의 엄정한 중립(strict neutrality)정책이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의 궁내부(宮內府) 고문으로 근무한 윌리엄 샌드(William F. Sands)는 1900년 1월 조선에 부임한 후부터 스위스와 벨기에의 영세중립 모델에 따른 조선의 영세중립을 조선정부에 건의했다. 그는 “조선이 자주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열강의 동의가 필수적이므로 이를 위해 조선이 스위스나 벨기에와 같이 영세중립을 선언하고 열강의 동의를 받아야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의 영세중립 정책의 필요성을 건의 받은 고종은 1891년 6월부터 조선의 지정학이 스위스와 유사하다는 인식으로 영세중립 정책을 적극 추진함에 따라 러시아, 미국, 영국 등은 조선의 영세중립에 관심을 가졌으나 중국과 일본은 조선을 지배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어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고종은 1900년 8월과 10월, 1901년 1월 동경주재 조병식 공사를 통해 일본 정부와 동경주재 미국 공사와 러시아 공사들을 만나 조선의 영세중립 정책을 논의하라고 지시했다. 고종은 1903년 9월 현영운을 일본에 보내 일본정부와 조선의 영세중립 문제를 다시 논의케 했으나 일본의 협력을 받지 못했다. 고종은 1904년 1월 20일 일방적으로 조선의 영세중립국임을 선포했으나 일본이 1904년 2월 10일 러일전쟁을 일으킴으로서 고종의 영세중립 정책은 완전히 실패하게 되었다.


북한과 함께 통일한국을 이루기위해서
반드시
거쳐야할 협력의 기간이 필요하고
세계적인 연합이어야 한다
그래서
김정은위원장의 스위스 유학경험을 통해
북한을 스위스적 영세중립국으로 인정받게하여
세계의 중심국가로 나아가길 소망한다.

또한 통일한국을 위해
평양은 대국적인 결단으로
30만 지하기독인들의 바램을 들어야하며
그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허락해야한다

남북통일은 세계가 기다리는 우주적 사건이며
하나님의 섭리이다.
이제 하나되어 예수한국 선교한국의 길로 함께 나아가자
통일바램이 JoshuaK

기도동역자를 모십니다.
함께 전세계 정당들을 방문하며
이 시대의 영적 선발대가 될것입니다.

마른 광야로 나가야 꽃의 아름다움을 본다


대북정책연구소(Maybes)

설립목적과 방향

작성위원 Joshua Kim 소장

1. 대북정책연구소는 한반도, 동아시아, 그리고 지구촌의 현안에 대한 깊이 있는 정책대안을 제시하고, 올바른 사회담론을 주도하는 독립 싱크탱크를 지향합니다.

2. 특히 통일-외교-안보, 공공정책-철학 등의 분야에 역량을 집중하여 우리가 직면한 대내외 도전에 대한 해법을 모색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및 번영을 위한 여건 조성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3. 대북정책연구소는 대북정책의 기본을 북한의 경제회복과 정치범 수용소에 체류중인 30만의 기독인들을 주체적으로 도우며 그들의 전문성과 훈련을 통해 유관분야 전문가를 육성해 북한 기독인들의 미래를 보다 능동적으로 개척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데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4. 대북정책연구소 산하, 대북정책위원회는 북한의 2016년에서 2018년까지의 27개 경제특구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2020년부터 현재 29개로 확장된 경제특구를 활성화하는 경제정책을 도울것입니다. 이에 현 북한의 절망적인 상황과 우한 코로나의 만연으로 회복불가능한 현실을 세계 29개 나라의 특화된 경제협력을 조직하여 북한의 천연자원을 세계화 하는데 협동하고, 한국은 약 30만으로 추정되는 15호 관리소인 요덕정치범수용소와 회령 청진등의 수많은 정치범수용소의 기독인들의 구원을 위해 삼성. LG등과 함께 가장 독창적이고 획기적인 경제특구를 개척한다.

5. 대북정책연구소는 일정 인원의 협력연구원들과 함께 삼성 LG 등의 다국적 기업의 적극적 동역과 29개 국가의 기독당과 연대하고 각국가기관에 직접방문하여 직접적인 북한경제개방을 이루고자합니다. (유관부서와 해외지사 연결을 위한 초기자본 100억원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 북한의 경제특구군은 그들이 원하는 상공농업 대로 29개국의 6.25 당시 UN파병국 중심으로 새로운 경제파병을 얻게 될것입니다.
김정은위원장은 반드시 대북정책연구소의 제안을 받아드릴것입니다.
하나님은 통일한국을 위한 대북정책연구소의 사 명을 허락하실것입니다)

별첨) 지금 전세계 한인 디아스포라의 기독실업인들이 이 북한사역에 문을 열고자 합니다. 이에 대북정책연구소는 영적인 리더십을 당정책으로 제시하고자 합니다.
지금 북한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닫은 절반의 기독교인들에게 올바른 담론을 제시하여 반드시 북한을 영세중립국으로 인정받게하여 통일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만들어가는 중심이 될 것을 약속드립니다

대북정책연구소 소장 Joshua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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