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평야, 큰 읍성이라는 뜻의 달구벌로 불리며 1800여 년 전부터 대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춰온 대구광역시 ㅣ 한국 재발견 (KBS 20121006 방송)

Описание к видео 넓은 평야, 큰 읍성이라는 뜻의 달구벌로 불리며 1800여 년 전부터 대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춰온 대구광역시 ㅣ 한국 재발견 (KBS 20121006 방송)

한국 재발견 '어제와 오늘이 만나는 도시 대구광역시'

1. 달구벌의 상징, 팔공산 - 동화사와 갓바위
산세는 아름다운 풍광을 펼쳐내고 신라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대구의 역사를 품고 있는 문화유산들이 가득한 팔공산은 대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태평성대에만 나타난다는 봉황과 상서로운 오동나무의 기운이 가득한 천년고찰 동화사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킨 사명대사가 영남승군사령부를 두고 승군을 지휘하던 곳이다. 또한 해발 850m 지점의 ‘갓바위’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관봉석조여래좌상도 팔공산의 진경 중 하나다. 이 불상은 머리에 쓴 갓의 모양이 대학 학사모와 비슷해 해마다 이맘때면 입시철 합격을 기원하는 행렬이 장사진을 이루는데... 나라의 평화와 안녕, 삶의 크고 작은 소망들을 담고 있는 팔공산을 찾아가 보고 팔공산 자락 신숭겸장군 유적지에 들러 고려 개국 공신인 그의 우국충정을 기려본다.

2. 전통이 살아있다 - 국내유일의 대구약령시
대구에는 임금의 명으로 개설됐다고 해서 ‘령(令)’자가 붙은, 국내 유일의 ‘약령시’가 존재한다. 왕실 내의원에서 먼저 약재를 골라간 후 전국의 약재상들이 모여 거래를 할 만큼 질 좋은 약재들의 집산지였던 약령시. 지금도 2백여 개의 한의원과 한약방, 약재상들이 350년의 역사를 잇고 있다. 낙동강과 문경새재 등 수로와 육로가 고루 발달해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였던 대구에는 삼남의 물자가 다 모인다고 할 정도로 큰 시장들이 유독 많았는데...약령시에서 3대 째 한약방을 운영하고 있는 이용식 원장을 만나 장터에 얽힌 소박한 삶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3. 골목, 예술의 향기에 취하다 - 예술인 거리와 다시 그리기 길
대구의 골목 곳곳에는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피난 예술가들에게 창작과 사색의 공간이 되어줬던 찻집과 음악 감상실 등의 흔적이 남아 있다. 1946년 문을 연 이래 2대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클래식 음악감상실 ‘녹향’도 그 중 하나다. 이중섭이 담뱃갑 속 은박지에 그림을 그리고 조지훈, 박목월, 구상 등 당대 최고의 문인들이 이곳에서 글을 썼다는데...반 세기 전, 중구의 골목을 흠뻑 적셨던 문화예술의 향기가 중구 방천시장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대구가 고향인 가수 고(故) 김광석을 기리는 350m의 벽화 거리를 필두로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들면서 쇠락해가던 재래시장이 새로운 문화의 거리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낡은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속에서 그리움을 느낄 수 있는 중구 예술인 거리를 찾아가 본다.

4. 100년사 거리와 청라언덕
대구의 100년 역사를 담고 있다고 해서 ‘100년사 거리’라고 부르는 대구 도심 골목에는 선교사들이 들어와 지은 서구식 주택과 교회, 성당, 학교 등이 즐비하다.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어 마치 100년 전 거리를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가곡 ‘동무생각’의 무대가 된 청라언덕에는 1899년 동산의료원 초대원장인 존슨 박사가 선교 목적으로 들여온 대한민국 최초의 서양사과나무의 2세 자손목이 남아 있어 능금의 도시, 대구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100년사 거리는 1919년 대구 만세운동이 시작된 곳이기도 한데, 골목 끝에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잘 알려진 민족시인 이상화의 고택이 보존돼있어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의 저항정신을 느낄 수 있다. 격동의 근현대사 100년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있는 대구의 골목을 따라 거닐어본다.

5. 빨갛게 익어가는 가을 - 평광동 사과마을
선교사가 들여온 사과나무가 효시가 되어 대구를 대표하는 특산물이 된 대구사과. 특히 평광동 사과는 일교차가 큰 날씨와 토질 덕분에 다른 지역 사과에 비해 쉽게 무르지 않고 더 아삭한 맛을 낸다고 한다. 대구에 유일하게 남은 집단사과재배지로서 대구사과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평광동에는 국내 최고수령인 83년 된 홍옥나무가 아직도 빨간 열매를 맺고 있는데... 불면 날아갈까 만지면 깨질까 자식처럼 정성으로 키우며 팔십 평생을 함께해온 우채정 할아버지. 대를 이어 사과농사를 지으며 대구사과의 명맥을 잇고 있는 팔공산 자락의 과수원에서 빨갛게 익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느껴본다.

6. 선비의 도리를 묻다 - 도동서원
낙동강 물길이 내려다보이는 달성군 구지면의 언덕에는 옥산, 병산, 도산, 소수서원과 함께 조선 5대 서원으로 꼽히는 도동서원이 있다. 서원 앞 450년 된 은행나무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곳은 조선 5현의 수장인 한훤당 김굉필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곳이다. 한훤당을 추모하기 위해 전국의 유생들이 가져온 형형색색의 돌로 강당의 석축을 쌓았을 만큼 명망 높은 조선 선비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곳. 줄을 서서 한 사람씩 계단을 올라야 닿을 수 있는 강당의 구조며 허리를 숙여 몸을 낮춰야 통과할 수 있는 환주문까지, 곳곳에서 선비가 지켜야 할 질서와 도리의 가르침이 배어 있다. 또한 보물 제350로 지정된 담장을 비롯해 조선시대 건축물의 섬세한 아름다움이 살아 있어 또 한 번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7. 인흥마을 만권당의 비밀
대구의 화원읍에는 조선시대 고택을 중심으로 아홉 가구가 모여 사는 한옥마을이 있다. 붓두껍에 목화씨를 숨겨 국내에 들여온 것으로 유명한 문익점의 후손인 남평 문씨의 집성촌이다. 이 마을이 특별한 것은 단순히 집성촌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배어있는 학문과 교육에 대한 열정 때문이다. 문익점의 21대손 문영박은 가문의 재실로 쓰던 광거당에 문중 서고인 ‘만권당’을 열고 국내는 물론 중국 등 해외의 유명 고서 5천여 점을 모아 전국 선비들의 학문의 장이 될 수 있도록 했다. 후손에게 재산이 아니라 학문과 책을 물려주려 했던 선대의 유지는 후손들에게까지 이어졌고 문중서고인 인수문고와 중곡서고에는 무려 만 권이 넘는 책들이 보관돼있다. 선대가 그래왔듯 문고 옆에 지은 ‘서사(書舍)’에서 책을 읽으며 손님들에게 책을 내어주는 일로 하루를 보낸다는 후손 문태갑씨를 만나 어제와 오늘을 이어가는 100년 고택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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