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뉴스] 세성협, 마틴 루터 '탄생에서 죽음까지' 순례.."성경을 소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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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인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의 생애를 따라 순례를 해보고 싶으실 텐데요.

세계성령중앙협의회 종교개혁지 순례단이 루터의 전 생애를 돌아보는 순례 길을 걸었습니다.

이 시간 시청자 여러분들께서도 함께 루터의 숨결을 느껴보시죠.

송주열 기자의 보돕니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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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아이스레벤에 위치한 마틴 루터 생가는 현재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보다 많은 순례객들을 맞을 채비를 마쳤습니다.

[인터뷰] 자비나 후틀/ 아이슬레벤 루터 생가 매니저
“적게는 하루에 80-90명, 많게는 300명 정도 옵니다. 가장 많이 방문하는 사람들이 미국, 한국 사람들입니다. 두 나라 순례 객이 40-50%를 차지합니다.”

에르푸르트에 있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

아버지의 뜻에 따라 에르푸르트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청년 루터는 1505년 7월 벽락을 맞을뻔한 경험을 한 뒤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도원에 들어갑니다.

22세의 루터는 청빈, 정결, 순명이라는 전통적인 수도생활에 전력했습니다.

[인터뷰] 배진기 목사 / 세계성령중앙협의회 대표회장
“자기 죄 해결을 위해 몸부림치면서 고행하고 금식하고..루터의 고해성사를 받던 신부가 도망을 갈 정도였다고 합니다.”

2년간의 몸부림 끝에 가톨릭 참회제도의 허구성을 깨달은 루터는 수도원장이던 자신의 스승 요한스타우피츠를 따라 비텐베르크로 갑니다.

비텐베르크대학에서 신학을 시작한 루터는 이곳에서 성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사제 서품을 받고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루터는 이곳에서 면죄부를 팔던 가톨릭의 부패상에 눈을 떴고,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성교회 성문 앞에서 종교개혁의 불씨를 당긴 역사적인 95개조 반박문을 게재합니다.

로마 교황청은 수차례 루터를 심문했지만, 루터가 뜻을 굽히지 않자 1521년 루터를 파문하며 이단으로 정죄하기에 이릅니다.

루터를 파문했으나 종교개혁의 물결이 사그러들지 않자 교황청은 당시 황제를 종용해 눈엣가시 같은 루터를 보름스 대성당으로 불러 종교재판을 엽니다.

[스탠딩] 송주열 기자 / 독일 보름스
“마틴 루터는 1521년 4월 비텐베르크에서 제국의회가 열리는 이곳 보름스 대성당까지 와서 종교개혁이 하나님의 양심에 비추어 잘못되지 않았음을 담대하게 증언합니다.”

제국의회를 마치고 비텐베르크로 돌아가던 루터는 자신을 죽이려는 이들을 피해 아이제나흐의 바르트부르크 성에 은둔하게 됩니다.

그리고 10여 개월의 은둔생활 동안 헬라어 신약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등 가톨릭 사제들이 독점하던 성경을 누구나 볼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합니다.

[인터뷰] 김용완 원로목사 / 서울순복음교회
“하나님말씀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생명처럼 여겼는 가 이것을 느낄 수가 있고 우리도 목회자로서 그런 자세를 가져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인터뷰] 박흥일 장로 / 한국기독교직장선교연합회 명예이사장
“자유롭게 성경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성경을 좀 더 열심히 보고 성경으로 돌아가 말씀을 생활화하는 생활을 해야겠다고 느낍니다.”

루터는 이후 숱한 죽음의 위협속에도 각종 저술과 설교 활동을 통해 종교개혁을 완성해갑니다.

특히 죄에 대한 각성, 그리스도를 통해서 얻는 죄사함의 용서, 이웃 사랑을 강조했습니다.

루터는 자신의 고향 아이슬레벤에 위치한 성 안드레아스 교회에서 마지막 설교를 한 뒤 1546년 2월 18일 63세 일기로 위대한 생애를 마감합니다.

루터의 무덤은 종교개혁의 불씨를 당겼던 비텐베르크 성 교회 예배당 안에 안치돼 있습니다.

송주열 기자 / 독일 비텐베르크
“루터의 종교개혁 정신이 세속화된 한국교회를 깨우고 있습니다. 비텐베르크 성교회에서 CBS뉴스 송주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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