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독립운동 유적지] 태국 방콕 쁘리디 파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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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리디 파놈용(1900.5. 11~1983. 5. 2)은 태국의 정치인이자 사회 운동가이다. 탐마삿대학은 1932 년인민당 혁명의 주역 중 한 명이 법학자이자 정치가, 그리고 사회 운동가였던 쁘리디 파놈용이 세웠다.
1920년 사법부 장학생으로 발탁되어 프랑스로 법학 공부를 하러 갔던 쁘리디는 1924 년 캉 대학에서 법학학사 학위를 받고 1926년 파리정치대학에서 법학박사와 정체 경제 대학원 과정을 졸업한 뒤 이듬해 4 월에 태국으로 돌아온다. 헌법주의와 관료제, 그리고 내각 선출이라는 개혁을 시행하고 완성하기 위해 그는 신분에 관계없이 근대 교육을 받은 인재 양성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생각했다. 그래서 1932년 혁명 이후 제일 먼저 한 일 중 하나가 민간인을 위한 대학 설립안 발의였다. 그렇게 1934년에 태국 역사상 두 번째 국립대학인 “도덕 및 정치 과학대학교”를 세우고, 초대 총장이 되었다.
1947년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자 쁘리디는 망명했고, 군부는 “정치 과학”을 뺀 나머지 이름인 “탐마삿(도덕)”으로 대학 이름을 바꾸고 학제를 개편한다. 평생 공산주의자로 의심 받았던 쁘리디는 프랑스에서 생을 마감했다.
태국은 동남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입헌민주주의제도를 도입한 명실상부한 민주주의 국가다. 1932년 6월 24일 군부 세력과 법률가, 그리고 민간인이 주도해 일어난 ‘인민당’ 혁명은 짜끄리 왕조의 절대왕정을 종식하고 입헌군주제와 함께 내각제를 도입하는 변화를 낳았다. 이 인민당 혁명의 주역이 바로 법학자이자 정치가, 그리고 사회운동가이던 쁘리디 파놈용이다. ‘타이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릴 자격이 충분한 그의 삶은 타이의 민주주의 역사가 군부독재에 가려진 것처럼 왕의 암살에 연루됐다는 오명 때문에 역사에서 지워졌다가 최근 타이의 어린 학생들이 주도하는 민주화운동이 전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재조명되었다.

제공 : 항일영상역사재단(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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