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옥련사..가는 길에 본 풍경 | 안평들 | 폐교..안평중학교, 하령국민학교 | 창길리 선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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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옥련사

옥련사는 경북 의성의 봉두산(鳳頭山)에 남쪽에 자리한 사찰이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하는 설과 신라 흥덕왕 때 승려 덕운(德雲)이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구체적인 근거는 없다. 옥련사란 이름은 사찰 아래에 있는 연못에서 연꽃이 구슬과 같이 아름답게 피어난다고 한데서 유래한 것이다. 법당인 극락전 내부의 중앙에는 주불인 옥련사 목조 아미타여래좌상(유형문화재 제355호)이 안치되어 있다. 이 불상의 후면에는 1730년(영조 6)에 제작된 후불탱화가 있었는데, 1998년에 도난당해 현재는 대형 사진을 걸어놓았다. 옥련사 경내에는 고려시대 오층석탑과 조선시대 석불좌상이 남아 있다.옥련사의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불상의 전체높이가 132cm인 중형불상이다. 전체 높이대비 머리의 비율은 약 3:1이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의 머리에는 소라 모양의 나발이 있으며 머리 위에는 정상 계주가 있다. 정상계주 앞에는 반달형의 중앙계주가 나발 사이에 표현되어 있다. 눈썹과 가까운 이마 중앙 미간에는 돌출된 원형의 백호가 조각되어 있다. 눈썹은 둥글고 가늘게 처리하였다. 반개한 눈은 눈썹의 길이만큼 좁고 길게 옆으로 펴져 있다. 코는 약간 둥근 각을 이루며 도톰하고 안정되게 자리 잡고 있다. 입술은 옅은 미소가 흐르도록 표현하였다. 볼은 약간 통통하며 턱선은 살이 접힌 듯 턱밑에 한 줄의 주름을 표현하였다. 일반적으로 조선시대 불상의 상호(相好)는 정방형에 가깝게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아미타여래좌상의 상호는 얼굴을 풍만하게 표현하였음에도 자연스러운 볼의 모습을 보여준다. 법의 착용 방식은 상의 위에 대의를 입는 이중착의법이다. 양쪽 어깨를 감싸고 있는 통견(通肩)의 가사 옷깃이 어깨를 덮고 수직으로 내려와 가슴 아래에서 ‘U’ 자형으로 모아지고 있다. 가슴 아래까지 올린 군의(裙衣)를 덮고 내려오는 옷 주름은 아래로 길게 내려와 복부 아래에서 한번 접혀 결가부좌를 한 양 무릎 사이로 부채꼴 모양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가슴은 비교적 넓고 오른쪽 어깨에는 반달형의 대의 자락이 걸쳐져 있다. 손 모양은 아미타여래가 취하는 전형적인 수인인 전법륜인(轉法輪印)을 취하고 있다. 불상의 내부에서 발견된 복장유물로는 조선 초기의 『석보상절(釋譜詳節)』과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등이 있다. 1961년에 개금을 하였고 대좌는 이때 새롭게 제작되었다. 의성 옥련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전체적인 조성 기법과 양식이 조선시대 불상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조성 시기는 임진왜란 이전인 16세기로 여겨지고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성 옥련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義城 玉連寺 木造阿彌陀如來坐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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