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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석중국사상146 고사전高士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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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高士傳》 序 ……皇甫謐

上卷
001 피의披衣 … 35
002 왕예王倪 … 40
003 설결齧缺 … 49
004 소보巢父 … 54
005 허유許由 … 59
006 선권善卷 … 68
007 자주지보子州支父 … 74
008 양보壤父 … 78
009 석호지농石戶之農 … 83
010 포의자蒲衣子 … 87
011 피구공披?公 … 92
012 강상장인江上丈人 … 97
013 소신직小臣稷 … 105
014 현고弦高 … 111
015 상용商容 … 121
016 노자老子 이이李耳 … 128
017 경상초庚桑楚 … 136
018 노래자老萊子 … 142
019 임류林類 … 150
020 영계기榮啓期 … 157
021 하궤荷? … 162
022 장저長沮·걸닉桀溺 … 166
023 석문수石門守 … 171
024 하조장인荷篠丈人 … 175
025 육통陸通 … 179
026 증삼曾參 … 187
027 안회顔回 … 194
028 원헌原憲 … 198

中卷
029 한음장인漢陰丈人 … 207
030 호구자림壺丘子林 … 212
031 노상씨老商氏 … 217
032 열어구列禦寇 … 222
033 장주莊周 … 227
034 단간목段干木 … 232
035 동곽순자東郭順子 … 238
036 공의잠公儀潛 … 243
037 왕두王斗 … 247
038 안촉顔? … 252
039 검루선생黔婁先生 … 258
040 진중자陳仲子 … 262
041 어부漁父 … 268
042 안기생安期生 … 274
043 하상장인河上丈人 … 280
044 악신공樂臣公 … 284
045 갑공蓋公 … 288
046 사호四皓 … 292
047 황석공黃石公 … 299
048 노魯 이징사二徵士 … 307
049 전하田何 … 313
050 왕생王生 … 318
051 지준摯峻 … 324
052 한복韓福 … 330
053 성공成公 … 335
054 안구망지安丘望之 … 338
055 송승지宋勝之 … 342
056 장중울張仲蔚 … 346
057 엄준嚴遵 … 349
058 팽성노보(彭城老父) … 354
055 송승지宋勝之 … 344
056 장중울張仲蔚 … 348
057 엄준嚴遵 … 351
058 팽성노보彭城老父 … 356
059 한순韓順 … 358
060 정박鄭樸 … 363
061 이홍李弘 … 367
062 상장向長 … 370
063 민공閔貢 … 375

下卷
064 왕패王? … 383
065 엄광嚴光 … 387
066 우뢰牛牢 … 397
067 동해은자東海隱者 … 401
068 양홍梁鴻 … 404
069 고회高恢 … 415
070 대동臺? … 418
071 한강韓康 … 422
072 구흔丘? … 427
073 교신矯愼 … 430
074 임당任棠 … 437
075 지순摯恂 … 441
076 법진法眞 … 446
077 한빈노보漢濱老父 … 453
078 서치徐穉 … 457
079 하복夏馥 … 463
080 곽태郭太 … 471
081 신도반申屠蟠 … 480
082 원굉袁? … 487
083 강굉姜肱 … 492
084 관녕管寧 … 499
085 정현鄭玄 … 509
086 임안任安 … 518
087 방공龐公 … 524
088 강기姜岐 … 529
089 순정荀靖 … 534
090 호소胡昭 … 540
091 초선焦先 … 546
092(附-1) 해당亥唐 … 554
093(附-2) 동곽선생東郭先生 … 556
094(附-3) 손기孫期 … 559
095(附-4) 공숭孔嵩 … 563

부록
Ⅰ 皇甫謐傳(《晉書》 51) … 569
Ⅱ 《高士傳》 序跋類 … 575
Ⅲ 《高士傳》 著錄 … 584
Ⅳ 《高士傳》 佚文 … 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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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현존 최고(最古) 은일전집(隱逸傳集)!
《논어》에는 ‘일민(逸民)’이라는 부류가 등장한다. ‘사(士)’의 계급으로서 현능하고 재질을 갖추었다면 마땅히 정치에 참여하고 관직에 나아갈 수 있으나 조정이나 지도자의 눈에 띄지 않아 빠뜨려 누락된 채 살아가는 부류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누락’되었다기보다는 도리어 세속을 떠나 초연한 절조를 지키며 자신이 처한 당대의 정치에 비판적이거나 소극적, 또는 거부의 행동으로 버티는 자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마땅히 유가보다는 도가의 뜻을 신봉하게 되고 이 도가가 현학을 거쳐 도교로 발전하면서 그에 따라 이들도 신선의 경지에 오른 것으로 여겨 유향(劉向)의 《열선전(列仙傳)》, 갈홍(葛洪)의 《신선전(神仙傳)》의 부류에도 속하는, 범위가 확대된 한 집단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렇게 속세를 벗어나 은둔하는 경향의 고사는 도가적인 색채가 강하게 풍기며 위진남북조 소설의 주류 가운데 하나인 지인소설(志人小說)의 면모를 동시에 지니고 있어서, 중국 고대 도가문학과 필기소설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작품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고사전》은 지인소설이 종래의 사전문학(史傳文學)의 굴레에서 벗어나 독립된 소설양식으로 정착하기까지의 과도기적인 특색을 갖추고 있다. 또한 《고사전》에 실린 고사 가운데 일부는 후대의 여러 문인들이 전고(典故)로 즐겨 사용해 그 영향력이 자못 크다. 그리고 《고사전》은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은일전집(隱逸傳集)’으로 《후한서(後漢書)》 〈일민열전(逸民列傳)〉의 성립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대부분의 후대 정사(正史)에서 〈은일전〉을 따로 입전(入傳)하는 기풍을 조성했다.

지식인의 지조와 절개란 무엇인가!
황보밀은 건안(建安) 19년(214)에 태어나 삼국시대 조위(曹魏)를 거쳐 서진(西晉) 무제(武帝, 司馬炎) 태강(太康) 3년(282)에 생을 마쳤다. 《진서(晉書)》 본전에 따르면 그는 평생 병고에 시달렸음에도 눈에서는 책을 떼지 않았고, 손에서는 붓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시(詩), 부(賦), 뇌(?), 송(頌), 논(論), 난(難) 등 모든 문체에 주옥같은 글을 지었고 이에 따라《고사전》, 《일사전(逸士傳)》, 《열녀전(列女傳)》, 《제왕세기(帝王世紀)》 등 주옥같은 문장을 남긴, 위진시대 가장 박학다식한 문학가이며 역사가이자 문장가이며 의학가로서의 업적을 남긴 대단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런 황보밀이 채록한 고사의 기준은 엄격했다. 징사(徵士)이되 벼슬을 거부한 경력이 있는 자여야 한다는 원칙을 앞세웠던 것이다. 그 때문에 공자와 사마천이 그토록 칭송했던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반고(班固)가 높이 여겼던 공승(?勝)과 공사(?舍)라 할지라도 그는 채록하지 않았다. 백이와 숙제는 수양산에서 굶어죽으면서 절의를 지켰지만 “고마이간(叩馬而諫)”하여 ‘자굴(自屈)’ 행동을 했다는 이유였고, 두 공 씨는 신망(新莽)의 요구를 단호히 거절한 면에서는 위대하나 일찍이 출사(出仕)한 경력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명분에 어떠한 흠집도 없어야 하는 인물만을 고사로 한정했던 것이다. 이는 곧 황보밀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철저하게 투영하고자 한 것이며, 그 무렵 지식인의 ‘추세축리(趨勢逐利)’에 대한 거부 의사를 분명하게 밝히고자 한 것이다.

서로 마구 죽이기 막장시대 현대인 영혼의 힐링책
《고사전》을 읽노라면 여기에 실린 고사 모두가 실은 황보밀 그 자신의 모습을 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자신의 생각이 그러하였고, 황보밀 그 자신이 징사(徵士)이자 고사(高士)였으니 그런 사람들만 골라 ‘고사’라는 부류에 넣고 편찬한 것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이처럼 철저히 한평생 세속적인 성공과 인연을 멀리하고 높은 절개와 지조로 일생을 살아낸 고사들의 이야기는 이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준다.
“가난은 선비의 상(常)이요, 천함은 도의 실(實)이다. 이 둘을 얻어, 죽을 때까지 근심이 없는 것, 이것이 부귀하면서 신(神)을 어지럽히고 정(精)을 소모함과 비교하면 어느 것이 낫겠는가?”라는 황보밀의 일갈은 부귀와 명예, 세속적 성공에 급급한 현대인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 책은 오늘날과 같이 상처받고, 경쟁하고, 헐뜯기는 시대에 힐링의 치료약으로 쓸 만한 이야기가 참으로 많이 실려 있다. 그저 조용히 한 번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깊은 울림을 남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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