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르네 지라르 6. 기독교를 구원했다. 통섭과 만유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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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지라르 6. 기독교를 구원했다. 통섭과 만유이론

고대문명의 신화와 물리학, 철학과 신학을 아우르는 역사학자 르네 노엘 지라르, 프랑스의 모태신앙에서 가나안 성도로 기독교로 회심한 후 기독교세계관을 지향한 통섭(consilience)과 mimesis (모방,대통일인 만유이론)을 기반으로 창조. 타락. 구속. 완성으로 나름 설득력 있는 사유방식으로 암흑의 "기독교를 구원했다"는 다소 황당한? 평가의 주인공이다.
인식에서 물질이 나온다는 빅뱅이나 창조진화론이란 기독교적 재해석을 했다. 어거스틴의 무로부터의 창조를 복원한 것같은 합리적 설명을.. 쉬뢰딩거의 양자얽힘인 간선과 파동, 고양이의 확률적 죽음이란 양자역학의 혁명적 패러다임이다.
그리고, 하이젠베르크 왈 "자연과학의 첫잔은 무신론을 만들지만 그 잔의 바닥에서는 하나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 했던가? 옥스포드 왈드(ward) 왈, 궁극적 정보원리로서의 하나님에서 "우주적 의식으로서의 하나님을 최고의 정보적 원리"로 보았다. 이는 어떤 면에선 로고스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 지고 지순한 원리의 인식의 정보가 육화된 그리스도로 물질화했단 말이니 말이다.
즉 양자물리학이 관찰할 때 파동의 붕괴에서 "의식이 가능성들의 현실화에 있어서 구성적인 방식으로 관여한다". 만약 현실화되지 않는다면 존재조차 할 수 없단다. 즉 "하나님의 의지"로부터 탄생한단다.
물리학에 따라 고전물리학의 유신론에서 시계같은 이론신 그리고 불명확한 불가지론에서 유신론으로 돌고 도는 것도 신비롭다. 이것도 양자얽힘인가? 그리고 신화와 문화적 근거인 "희생양"이론으로 카오스에 빠진 군중이 희생양을 통해 안정된 상태가 된다는 은유적 해석으로 ..

아브라함 카이퍼의 일반은총에 영향을 받아 기독교에 새 활력을 불어넣은 입지적 인물 르네 지라르다. 종래의 신비적이거나 문자나 교리주의적 신앙에 당황한 분이라면 합리적 신앙을 추구하는 대안이 될 수도 있는 또 다른 기독교 신앙의 접근이라 할만 하다. 그저 삶의 방편으로써의 신앙에 쩔어 있다면 우주를 포괄하는 저 너머의 하나님과 내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숨결을 세밀하게나마 돌아볼 수 있는 것이라면 거창할까? .. 좀 난해한 면이 있지만 말이다.

역시, 원자의 양자역학의 미시세계나 빅뱅의 거시세계의 물리를 듣자보면 물리를 넘는 형이상학의 철학을 만나고 신학을 논하는 인간의 인식의 능력은 참으로 우주만큼이나 크고 원자만큼이나 작지만 그 오묘한 조화는 끝이 없다. 단순 물질의 우연이나 진화의 산물로 여기기엔 너무나 정교하여 신의 인식의 작용이 물질을 창조했단 것에 까지 이르르니 말이다.
인식을 강조하면 유심론의 불교나 우파니샤트의 범아일여에 이르게 되는 것이니 양자역학의 에르빈 쉬뢰딩거나 루돌프 슈타이너의 신지학, 주자학, 퇴계 이황의 자연주의적이고 신선사상이 얽여 있다. 그럼에도 신화와 문화속에 있는 "희생양 메카니즘"이라는 신체적인 죽이기, 정신적인 죽이기라는 "희생제의"를 통해 문화,우주의 기원을 해석하기도 한다.

힌두의 우파이샤트나 불교의 수행이나 명상은 본래의 내면화된 불 제사 몸의 열을 발생시키는 결과라는 것이다. 출가자들의 몸 자체가 하나의 신성한 제단이라는 것 즉 명상자세는 죽음의 자세이며 힐링효과의 부산물일며 내면화된 불제사라는 것 호흡을 통해 정수리까지 숨을 올려 드리는 불제사의 호흡이며 이는 좌탈입망의 열반의 순간 임종계라는 죽음의 시를 읊는다. 즉 자가파괴난 세계포기라는 부정주의의 모방현상이며 극단적인 붓다의 희생제의적 문화원형이다.
근데, 어떤 실체도 없다는 "제법개공"이나 천지만물을 지칭하는 것은 오직 마음이라는 "삼계유심" 즉 마음이 투영된 것이라는 것인데, 그 인식의 마음이란 건 뇌의 작용이 아닌가? 그게 물질로 소멸되어도 유심한가? 그저 물질과 뇌의 인식의 조화일 뿐이니 우주의 물질은 무생명이라는 말도 .. 그 무생명속에 생명이 있으니 그것도 우주적인 기적과 은혜라는 것 ..

기독교적 명상의 최종목표는 무덤이나 멸절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적 세계를 이루시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통해 만물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크크 말이야 뭔들 못해 ..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다"는 비트겐슈타인의 말도 참 명언이다. 말할수 있는 물리적 세계를 말하고 말할 수 없는 것엔 침묵하란 것이 어쩌면 주어진 현실을 살아가는 딱 주제에 맞는 말일 것이니 지금의 순간의 소중함은 감사함으로 받는 것이 최고의 선일 것이란 생각도 든다. ...우하하 주유소 습격사건의 .. 끝말 잇기의 끝판왕 "지랄"이 아닌 지라르 ..

그렇게 신존재증명의 현대판이라 해서 칭송을 한다 한들 .. 그 하나님과 나와의 긴밀한 관계의 풍성함은 또 다른 것이다. "예루살렘과 아테네와 무슨상관이냐?" 혹은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의 근원적 질문 말이다. 저 너머의 하나님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는 정작 중요한 그 문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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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송도역 남인천 농협앞, 베짜마 카페에서 이종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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