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자락 1코스 선비길에서 출발하여 구곡길 따라 달밭길로 넘어가는 역사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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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자락 1코스 선비길에서 출발하여 구곡길 따라 달밭길로 넘어가는 역사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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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자락길 1코스
소백산자락 1코스 선비길에서 출발하여 구곡길 따라 달밭길로 넘어가는 역사의 길

일시:2024년 12월 24일
코스 :소수서원 → 금성단 → 죽계구곡 → 초암사 → 달밭골 → 비로사 → 삼가동 (12.6km)

▶ 선비길 : 선비촌(소수서원) – 금성단(순흥향교) – 송림호(순흥저수지) - 배점분교(삼괴정) → 거리 3.8km
▶ 구곡길 : 배점분교(삼괴정) - 죽계구곡 - 초암사 → 3.3km
▶ 달밭길 : 초암사 – 달밭골 – 달밭재 – 비로사 – 삼가주차장 → 5.5km



▶ 출발지 주소 : 경북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 2796(청구리 357)

소백산자락 1코스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소수서원에서 출발한다
표지판이 금성대군신단을 가리킨다
이곳은 내죽2리이고
단종복위운동의 성지 금성대군신단 앞이다

삼괴점 (배점)까지 2.5km 거리를 도로를 따라 걷는다

단종애사 대군길
단종복위의거를 주도하다가 희생된 절의의 상징 금성대군(1426~1457)이 계셨던 순흥은 정축년 의거(1456)로 인해 순흥도호부가 폐지되고 초토화 되었다.
하지만 지역민들은 그를 원망하기 보다는 오히려 금성대군신단을 설치하여 재향하고, 성황제를 통해 그의 충정을 민간신앙으로 승화시켰다
의거로 희생된 사람들의 피로 붉게 물들었던 죽계의 물줄기를따라 피끝에서 금성대군신당에 이르는 길을 단종애사 대군길 이라고 하는데 목숨을 초개와 같이 던진 충절의 역사를 걸으면서 오늘날 다시금 역사를 되새겨 볼 일이다

금성대군의 신단 은행나무는 순흥지역의 흥망성쇠를 함께한 경이로운 이력으로 충신수라고 불린다. 언제부터인가 순흥사람들은 " 순흥이 죽으면 이 나무도 죽고, 이 나무가 살아나면 순흥도 살아나네"라는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조선세조3년 1457에 단종복위운동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금성대군이 순흥에서 죽임을 당하고 순흥부도 페지되었는데, 이때 은행나무가 함께 말라 죽었다고 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나무에 새 가지가 나고 잎이 돋아나니, 조선 숙종 9년 1683년에 이 노랫말처럼 순흥부도 다시 설치되었다고 한다.
수령은 약 11,00년 정도로 추정하며 높이는 30m이다. 특히 이 은행나무는 잎이 마치 오리발처럼 생겼는데,그로 인해 압각수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삼괴정 배점까지 3km 이다

==고인돌 고분이 있는 곳인데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 한그루가 지키고 섰다

밭에는 눈발이 깔렸다
농로를 따라 걸었는데 여기서 부터는 도로를 따라 걷는다
넓은 논밭을 가로질러 우리가 걸어온 길이다
눈이 얼어서 돌처럼 딱딱해 졌다
이 길은 다행히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이다
국망봉에 하얀 눈이 덥혔다

바람한점 없는 아주 고요한 순흥저수지 풍경에 산그림자가 비친다
소백산 배점펜션이 있고 구비도라 전통찻집도 있다

순흥지역은 어떤 곳인가
순흥은 고구려의 [급벌산군]에 속했으며, 신라 경덕왕때 급산군이라 하였고, 흥주(興州)라 하였다가 성종대 순정이라고 개칭하였다. 그 후 충렬왕의 안태지가 되면서 흥녕현이 되었으나, 충숙왕의 안태지가 되면서 지흥주사(知興州事)로 승격 되었다. 다시 충목왕의 안태지가 되면서 1348년 순흥부(順興府)로 승격, 1457년 (세조3) 순흥부사 이보흠과 금성대군의 단종복위운동이 발각되어 폐부된 후 1683년(숙종9)에 순흥도호부로 복부되었다가 1895년(고종32)에 순흥군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으로 영주군 순흥면이 되었다.

안태지 : 왕의 탯줄이 묻힌 곳

순흥의 슬픈 전설을 간직한 다리, 청다리

“너는 청다리 밑에서 주워왔단다.” 어릴 때 많이 들어본 말이다. 그런데 이 말 뒤엔 순흥의 슬픈 이야기가 숨어있다.
세조 때, 단종복위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단종복위에 동조했던 순흥의 선비들과 그 가족들이 희생되었다. 눈물겹게 살아남은 어린아이들이 청다리 밑으로 숨어들게 되었는데, 이를 가엽게 여긴 사람들이 아이를 데려다 키우면서 ‘청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전해온다.
청다리는 무량청정의 세계로 들어가는 다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는데, 훗날 광풍제월에서 따온 제월교라고 고쳐불렀다.

이 길은 배점1리로 가는 길이고
우리는 배점2리로 간다

이곳에 배순 정려비각 있다
이 비는 조선중기 이 지방에서 대장간을 하던 배순의 정려비이다. 광해군 7년(1615년)에 배순의 정문(旌門)이 세워졌으며 인조 27년(1649년)에 배순의 손자 배종(裵種)이 묘비와 함께 이 비를 세웠다. 그 후 영조31년(1755) 그의 7대 외손자 임만유(林晩維)가 비석에 '충신백성'이라는 말을 넣어 고쳐 세웠다.
배순은 천성이 유순하고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학문에도 힘썼다. 스승인 퇴계가 세상을 떠나자 철상(鐵像)을 만들어 스승을 기리며 삼년상을 치르는 등 제자의 예를 다하였다고 한다
선조의 국상 때에는 70세가 넘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삼년상을 치렀다고 한다.
배순이 죽자 군민들이 정려각을 세우고 이 마을을 배순이 대장간을 하던 마을이라 하여 배점(裵店)이라 부르게 되었다.

점심으로 맛있는 굴떡국이 준비되었다
떡국을 준비하느라 고생하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배점주차장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길을 떠난다
커다란 바위에 죽계구곡이라 새겼다
72년도 12월 23일 꺼예요
희방사로 해가지고 소백산 국망봉으로 해가지고 내려오다가
그때는 차가 인자 교통이 끊기서 끊기 가지고 고위에 민가에서 한번 방을 얻어가 잔적이 있어요 그때민박도 그전에 없었고
감회가 어떻습니까?
ㅎㅎㅎㅎ 인터뷰에요ㅎㅎㅎㅎ
죽기전에 한번 다시 올수 있어서 너무 다행입니다
화이팅
고맙습니다

떡국 품평을 한번

무슨품평예
떡국
떡국 진짜 맛었었어요
너무 맛있었어요
밖에서 돈 주고도 사먹을 수 없는 진짜 훌륭한 맛이었어요
그게뭐라구요
밖에서 돈주고도 살 수 없는 훌륭한 맛이엇어요
진짜 완전 최고 였습니다
그게뭐라구요
떡국
그게 굴떡국입니다
ㅎㅎㅎㅎ
다선님을 여기서 또 만날 줄이야


자 이기 시작인 모양이네
로고스님 마지막이제
계곡물이 얼음을 뚫고 세차게 흐른다

죽계8경후 금계 황준량( 黃㑓良)
소백산 원기 여기에 뿌리박아 서려 있으니
많고 적은 명승구역 골짜기 어귀에 산재하네
흐르는 물에 떠가는 도화 탈 없이 있는가
장풍타고 신선의 근원 방문하고자 하네

죽계구곡 옛길 7곡에 도착했다


詩. 숲으로 가는 길 이시하

숲이 내게로 오지 않아 내가 숲으로 갑니다

새 한마리 길 열어주니 두렵지 않습니다
때로 바람이 음흉하게 휘돌아 몰아치고
마른 까마귀 카악카악 울며 죄를 물어와
두근거리는 심장을 안고 가야할 때 있습니다

어느 순간 바람도 잔잔하여 지고

까마귀 울름소리 잦아들면
멀리 앞서가던 길잡이 새 나를 기다립니다
시냇물 소리 ,들꽃들 웃음소리, 나비의 날개짓 소리
푸른 숨소리, 소리들 무지개로 떠 흐르는
저기 먼 숲이 나를 부릅니다

때로 두려웁지만
숲으로 가는 길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초암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너랑나랑 여우랑 벤치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한다

소백산초암사 일주문에 도착하였다

죽계2곡에 도착했는데 계곡은 온통 얼어 있다
바위 위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억척같은 소나무가 있다


초암사 경내를 둘러보고 간다
영주 초암사 삼층석탑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이다

이탑은 통일 신라시대의 3층석탑으로 높이 350cm이다.
바닥돌 위에 이중 기단을 설치하고 각면에는 모서리 기둥과 1개씩의 안 기둥을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 받침을 두었으며, 네 귀퉁이에서 힘껏 치켜 올라갔다.

영주 초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16교구 본사인 고운사에 속한 사찰로 의상대사가 부석사 터전을 보러 다닐때 초막을 짓고 수도하며 임시 기거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이제 달밭골 국망봉 가는길로 들어선다
죽계구곡 곳곳에 시가 있고 죽계 1곡에 도착했다
詩.죽계구곡 팔우헌(八友軒) 조( 趙 ) 보양(普陽)
의 시를 한수 읊고 가자

왕대 아래 흐르는 맑은 물 시내를 벗어나서

산을 따라 꼬불꼬불 점점 낯은데로 달려가네

매번 아름다운 곳 만나면 내 갓끈을 씻으리니

아홉 구비 일제히 구경할 때 봄날이 저무네


국망봉 입구를 만났지만 자락길은 옆으로 비로사쪽을 가리킨다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 탐방로를 따라 간다

꽁꽁얼은 얼음 밑으로 계곡물이 흐른다

詩.길 위에서의 생각 류시화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녁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을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녁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 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또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 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 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 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 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져 간다.



달밭골에 도착하였다

소백산 비로사이다


달밭골은
비로사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다가 골짜기에 있는 산골 마을이 달밭골이다. 달밭골은 소백산의 가슴과 같은 곳이다. 그래서 그 속살은 부드럽고 푸근하다.
달밭골은 ‘달’은 원래 산의 고어이다. 즉 ‘산의 경사지에 있는 작고 다닥다닥 붙은 다락밭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달밭골은 옛날 화랑도들이 무술을 익히던 훈련장이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오고 있다.



주말산행과 평일산행
아름다운 산과 산사, 둘레길과 마을길 계곡과 바닷길등 자연과 도시를 다니며 역사가 있는 스토리를 담고 아름다움을 담고 추억을 남기기 위해 영상작업을 합니다
영상의 출연자는 주인공이 되고 , 기록을 되고 , 다른사람과 나눌 수 있는 만남의 이야기가 되기도 합니다.
시간은 변하고 차방넷에서 있었던 많은 이야기가 고스란히 영상과 사진에 남게 됩니다.
자연과 더불어 산에 오르고 , 계곡을 담고 , 바람을 담고 , 파도를 담아 두었습니다
언제나 다시 열면 그대로 전해주는 스토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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