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경스님 #위빠사나 #마음
도경스님 인터뷰 법문 (2020.6.20. 담마숲)
쉐우민 숲속 | 도경스님 담마숲법회 20200620(인터뷰) - Daum 카페
https://cafe.daum.net/Shwe-oo-min
1. 자신의 삶이 가치 있나요?
가치는 지혜의 잠재력에 있으며 알아지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들음, 봄, 느낌, 생각 등 알았던 것에 대한 이해가 생기면 지혜가 길러집니다. 가치 있는 삶은 내가 스스로 만족하고 스스로 떳떳한 것입니다. 알아지는 것에 대한 이해로 자유로움이 생깁니다. '인생 참 별거 없구나.'와 같은 관념적 지혜는 쓸수록 작아지지만 법에 대한 지혜는 쓸수록 커집니다. 코 고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내가 아는 것은 소리지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진짜 아는 것은 소리지, 소리일 뿐이라는 지혜는 쓸수록 커집니다.
냄새, 맛, 봄, 들음, 느낌, 생각 6개가 아니라 우리가 흔히 쓰는 봄, 들음, 느낌, 생각 4개에서도 궁극으로 갈 수 있습니다. ‘있네’라고 알고, ‘자연의 이치지’ 하면 점점 지혜가 커집니다. 소리 있다고 알고, 느낌 있다고 아는 단순함을 통해서 이해가 되어 지혜가 커지면 스스로 행복하고 만족할 수 있습니다. 사념처를 실천하는 것이 단순함을 통해서 궁극의 삶을 살 수 있는 길입니다.
2.삼빠쟈나 지혜
화처럼 강한 대상은 알아차림 하기 쉽고 생각처럼 미세한 대상은 알아차림 하기 어렵습니다. 지혜는 자연의 이치, 대상이라고 여기는 것이며 관찰, 조사해서 뭔가 이해가 생기면서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 옳은가 그른가 : 관념의 지혜
㉡ 적당한가 적당하지 않은가 : 나를 둘러싼 주변 환경까지 포함함.
㉢ 실재하는 법에 대한 지혜
→내게 진짜 있는 것이 무엇인가 아는 것(그 사람, 코 고는 소리가 진짜가 아니라 내게 진짜 있는 것은 소리구나)
대상을 알아가다가 알아지는 대상을 보고 '아는가?'라고 묻고 '응, 알지' 할 때 아는 마음을 아는 것이 실재하는 법을 아는 것이 됩니다.
㉣ 무상, 고, 무아
→봄이 계속 일어나서 봄을 안다. 끝임없이 아는 마음이 일어난다. 아는 마음이 일어남에 나는 아무 역할을 못한다. 아는 마음의 일어남이 가치없다. 아는 마음의 일어남이 의미없다. 지겨운 것이다. 이어짐이 무의미하다는 것이 고에 대한 지혜이다(화로 지켜봄이 아님)
3. 바른 견해
법에 대한 지혜는 쓸수록 점점 효과가 커지지만 관념적 지혜는 쓸수록 점점 효과가 없어집니다. 법에 대한 지혜는 지금 내가 아는 것에 대한 지혜 즉 통찰지이며 관념적 지혜는 내가 지금 알아지지 않은 것에 대한 지혜입니다. 통찰지는 다른 것에도 적용이 가능하고 법의 이치는 똑같으므로 '견해가 잘못되어 괴로움을 느껴.'라고 다른 경우에도 써보면 됩니다.
화에 대한 이해는 마음이 좋아서 지혜가 일어난 것입니다. '왜 화냈지?' 의문의 에너지가 빵 터져서 마음이 확 바뀐 것입니다. '이게 뭐지?'라고 현재를 알아가는 것이 만법귀일 일귀하처에 비유되며 택법각지, 담마위짜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일상생활에서 알아차림이 꾸준히 이어지면 고요한 마음이 생긴다
고요함은 대상에 반응하지 않는 마음이며 명료함은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이다.
5. 몸에서 일어나는 것은 모두 느낌으로 알기
사대 현상은 관념입니다. 호흡을 멀리서 ‘있네.’라고 보며 다른 대상과 함께 있거나, 여러 가지 대상 중 하나가 호흡이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경행할 때 '뭐가 일어나고 있지?' '발 말고 다른 것은 뭘 알고 있지?' 질문해 보세요.
6. 지혜
내가 수행을 잘하고 있는지는 지혜로 판단할 수 있으며 지혜는 거친 마음이므로 가장 확인하기 쉽습니다. 사마디, 사띠 신심, 노력은 미세한 마음으로 확인하기 어렵지만 지혜는 확인하며 수행을 체크할 수 있습니다. 성질과 작용 측면을 보고 관심이 있는지 보면 됩니다. 함께 있는 느낌을 확인하고 '이건 아는 거지' 하면 작용 측면이 이해되는 것이며 지혜가 있으면 관심이 생깁니다.
7. 자신을 위한 최선이 수행이며 그 순간 자신을 아는 것이 궁극의 자유를 가져옵니다.
8. 기타 간단한 질문에 대한 모음
㉠ 우리는 원인에 접근할 수 없지만 나타나는 것을 보고 나타나는 것에서 물러날 수 있다, 물러남이란 그 생각이 있든 없든 상관이 없으며 가치가 없어진 것이다. 드러난 것을 바르게 보면 그것을 드러나게 한 원인이 바뀐다. 좌선을 할 때 심장이 뛴다는 것은 해석이며 가슴의 느낌이 있다는 것이 실재이다. 고요함이 커져서 몰랐던 것이 드러난 것이며 액면 그대로 알아야 한다.
㉡ 유신견은 수다원이 되어야 사라지므로 유신견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아만은 아라한 때 없어짐)
수행을 해가면서 그 길을 갈 뿐이다. 원인과 결과를 이해하면 무아를 이해하는 것이다. 관찰한 현상 자체가 무아적 현상이다. 무아적 현상은 의지와 무관하며 수행하는 마음이 좋아진다. 관찰해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무아에 대한 이해가 생길 때 '정말 내가 없구나, 나는 아무것도 안 하는구나' 라는 통찰지가 생긴다. 채워지지 않는 것은 의문으로 남는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일어나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알아차림이다.
㉢ 고에는 둑카둑카, 괴고성, 존재의 고가 있다
둑카둑카는 발 삔 것, 바늘에 찔린 것 등이며 괴고성은 배가 불렀다가 꺼지고, 또 먹어야 하고, 젊은이가 늙어지는 것처럼 변해서 괴로운 것이다. 상카라둑카는 존재의 고이며 있는 것이 바랄 바 아니다, 있는 것이 지겹다, 존재에 대하여 무의미함을 통찰하는 것이다. (지켜워하는 것은 보통 화의 마음이지만 이때는 아님)
소리에 대하여, 봄에 대하여, 느낌에 대하여 마음이 완벽하게 자유로운 것이 위빠사나 16단계 지혜 중 11단계인 상카라우뻬까냐냐이다. 이 때 오류가 있다. 상카라둑카에 둑카둑카가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항상 그럴 수는 없다. 위빠사나 지혜의 단계에 머무를 수 없듯이 수행이 잘 되는 상태에 계속 있을 수 없다. 지혜의 조건을 맞추기가 힘들다. 몇 단계에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한다. 나는 계속 그 길로, 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Информация по комментариям в разработк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