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종정(宗正)으로 있으며 조계종의 선지(禪旨)를 높이고자 노력을 아끼지 않은 고암(古庵) 대종사. 평생을 오직 선수(禪修)로 일관, 많은 납자(衲子)들을 제접(提接)한 스님을 찾아 나섰다. 나주 다보사(多寶寺) 시절부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직 수선(修禪)과 일상청규(日常淸規)로 몸을 맑혀 나온 고암대종사는 그 티 없는 미소와 밝은 직심으로 무언의 계도(啓導)를 펴 제접하는 모든 이의 마음에 진실과 가식이 어떻게 다른가를 분명히 대비시켜준다. 노사의 미소는 만법의 뿌리가 진심에 있음을 열변으로 말하는 듯하며, 계략이나 책략이 섞이지 않는 지침(指針)은 염화미소의 깊은 도리를 분명히 밝혀준다. 오늘을 살면서 우리 모두가 문제로 안고 있는 것은 진정한 인간성의 회복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진실로 부처님 근처에 이르는 정진을 할 수 있는 요체(要諦)는 무엇인가. 고암대종사를 범어사로 찾아 오늘을 사는 부처님의 법손(法孫)들이 어떻게 있어야(存在)하며, 무슨 일을 하고 가야할지 그 깊은 경지를 알아보았다.
제3대에 이어 4대 종정을 지낸 고암대종사. 불교신문 자료사진
“조심히 잘살아라 인과가 분명하니”
고암스님은 1899년 10월5일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식현리 425번지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윤문 선생, 모친은 하원행(河原幸)여사. 스님의 속명은 지호(志豪 또는 之壕). 어려서 한문을 익힌 스님은 적성 공립보통학교를 마치고, 합천 해인사에서 제산스님을 은사로 불문(佛門)에 들었다. 1917년 세수 19세 때였다. 해인사 강원에서 공부하던 스님은 1919년 3ㆍ1운동 당시 독립만세 비밀운동을 전개했다. 이후 해인사 불교강원을 졸업하고, 1922년 용성스님에게 구족계와 보살계를 수지했으며, 훗날 용성스님에게 전법게를 받았다.
스님은 1923년 7월 해인사에서 수선안거 한 이래 직지사 천불선원, 통도사 극락선원, 덕숭산 정혜선원, 도봉산 망월선원, 백양사 운문선원, 천성산 내원선원, 오대산 상원사선원 등에서 정진했다. 이때 제산, 혜월, 만공, 용성스님 회상에서 공부의 깊이를 더했으며, 유점사, 표훈사, 마하연, 묘향산 등 북녘 선원에서도 정진했다. 고암스님은 해인사, 백련사, 표훈사, 직지사, 범어사 선원의 조실, 그리고 나주 다보선원장, 해인사 용탑선원 조실로 대중을 제접했다. 스님은 1967년 7월 제3대 종정, 1972년 7월 제4대 종정으로 취임하는 등 한국불교 최고의 어른으로 후학을 인도했다.
스님은 1988년 10월25일(음력 9월15일) 오후8시 가야산 해인사 용탑선원에서 원적에 들었다. 법랍 71년, 세수 90세로 입적해 드는 순간까지 “조심해서 잘 살아라. 인과가 분명하니라”는 말을 남기며 후학들을 위한 당부를 잊지 않았다.
진실로 묘한 뜻은
말이 끊어졌으나
글과 말을 빌어서
그 뜻을 말하고
참종지가 그 모양은 아니나
이름과 모양을 빌어서
그 종지를 표방한다
근세 한국불교사는 격동과 혼란으로 점철되어 왔다. 조선조의 억불, 일제의 왜색 불교화, 한국전쟁 전후의 격동은 이 나라 불교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하였다. 그러나 1600여 년 동안 우리민족과 그 운명을 같이 해온 이 나라 민중 속에 뿌리박은 민족 종교가 쉽게 맥이 끊어질 수는 없었다. 조선조에도 훌륭한 고승들이 많이 배출되었고 이들은 구국의 선봉이 되기도 하였다. 일제 때도 우리는 백용성, 한용운스님과 같은 구국선사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 돌이켜 보면 6ㆍ25사변 때 피난을 갔던 정부가 환도했을 때 한국불교사의 대전환이 전개된다. 이른바 진리파지(眞理把持) 운동이라고 일컬어지는 정화불사가 곧 그것이다. 고암대종사는 근대의 선지식으로 이러한 와중 속에서 살아오신 산 증인으로서 제3대, 4대 조계종 종정을 역임하셨다. 필자가 금정산 범어사를 찾아갔을 때 큰스님께선 언제나 처럼 악수(握手)를 청해 오시면서 자비스러운 미소만 머금고 계실뿐 어떠한 물음에도 “다 그런 거여, 다 그런 거여” 하실 뿐, 다만 악수와 미소로만 대답하실 뿐 더 말씀이 없었으나 마감시간에 쫓기는 편집자의 얼굴이 떠올라 두서없이 서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큰스님께서 해외 불자들을 위해 해외에 머물다 오신 줄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국력신장과 함께 해외로 나가는 교포가 날로 늘어나고 따라서 우리 스님들도 교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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