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사기 흉노열전(4) / 흉노족의 몰락 / 한무제의 흉노 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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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TV 고경

흉노는 왜 몰락했을까?

지난 시간까지 총 3부에 걸쳐서 흉노의 기원 그리고 북방 유목민을 통합하며 강력히 등장한 선우 묵돌과 통일 진나라 및 한나라 초기 유방과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3부에서는 유방이 죽고 난 이후 한나라 여태후에서 문제 경제까지 흉노가 한나라를 농락하는 여러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그렇게 한나라를 꼼짝 못 하게 만들었던 강대국 흉노가 왜? 기원후 3세기에 가서 몰락할 수밖에 없게 되었는지, 그 단초를 제공한 한무제 시절 흉노국과 한나라 사이 전쟁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한나라 제7대 황제에 오른 무제는 마침내 약 70여 년 간의 흉노와 맺은 굴욕적 화친을 깨고 흉노국을 괴멸시키기 위한 행동에 착수합니다.

한 무제는 기원전 141년 15세 어린 나이에 황제 올랐기 때문에 재위 초기 7년 간은 흉노와의 화친 조약을 유지합니다. 하지만 8년 차 23세 되던 해, 한무제는 신하 왕회의 제안을 받아들여 북방 변경 마읍성에 군사를 매복시켜두고 마읍성을 약탈하러 오는 흉노 기병 10만 명의 군대를 전멸시키려는 준비를 합니다. 하지만 이 것을 눈치 챈 흉노 선우가 급히 퇴각하면서 실패로 돌아간 이야기까지 지난 시간에 했습니다. 이후에 한나라의 함정에 빠질 뻔 했던 흉노의 군신 선우는 이제 본격적으로 한나라 북방 변경을 대 놓고 약탈하기 시작합니다.

이번 시간에는 사마천이 기록한 흉노 열전 마지막 4부로 한무제와 흉노의 대격전 이야기를 시간의 흐름을 이어가며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BC 139년 한무제는 흉노를 함께 대항할 동맹 결성을 위해 훗날 실크로드 길을 개척한 사람으로 알려진 장건을 대월지국으로 파견합니다. 사실 한무제가 처음부터 서역과의 교역을 위해서가 아니라 흉노를 견제하기 위한 일환으로서 장건을 파견했던 것입니다. 장건에 대한 이야기는 향후 대원 열전에서 자세히 다루 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한무제는 누이인 평양공주(平陽公主)가 주최한 연회에서 그 집의 종으로 있는 위자부衛子夫라는 여인을 알게 되어 후궁으로 삼습니다. 이 여자의 남동생이 훗날 흉노를 대대적으로 무찌른 위청 장군이 됩니다. 위청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번 위장군 표기 열전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 목차 --


#. 위청의 등장
#. 곽거병의 등장
#. 전략을 바꿔 흉노 진영 깊숙이 공격하는 한나라
위청의 공적
곽거병의 공적
작전을 변경해 화친을 청해 온 흉노
#. 흉노와 소강상태 중 한무제는 남월과 동월을 정벌하다
#. 흉노의 굴복을 받아 내려고 여러 차례 사신(곽길, 왕오, 양신)을 보낸 한무제
한무제의 다각적인 흉노 포위망 구축
한나라 사신 양신을 막대한 선우
다시 파견된 사신 왕오, 노충국. 화친은 불발
#. 아선우 이후 한나라 이광리의 등장
흉노 장수의 반란을 도우려다 실패하고 흉노에 투항해버린 한나라 조파노의 군대
#. 새로운 구리호 선우 등장
새로운 저제후 선우와 이릉의 등장
#. 마침내 한나라에 굴복하고 마는 흉노의 선후 저제후 하지만 또 번복
이릉의 등장
#. 이사장군 이광리의 패전과 투항
#. 태사공 사마천의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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