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격랑을 헤쳐온 한국 경제의 산 증인들을 만나다! ≪한국경제 70년, 그들이 있었다≫ 1부 “자본주의, 싹을 틔우다” (KBS 150411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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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70년, 그들이 있었다 - 1부 “자본주의, 싹을 틔우다” (2015.04.11 방송)

대한민국 광복 70주년. 1945년 이후 오늘까지 한국 경제는 어떤 길을 걸어왔나. 시대의 격랑 속에서 끊임없이 생존의 길을 모색해 온 한국 경제. 그 역동의 현장 한가운데 ‘그들이 있었다’. KBS "한국 경제 70년_그들이 있었다" 1편은 대한민국의 경제 토대를 마련한 한 시대를 좇는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광복과 함께 경제적 진공 상태에 빠졌던 대한민국. 그 땅 위에서 한국 경제의 씨앗이 뿌려지는 과정을 지켜본다.

■ 농부들에게 있어 진정한 광복은 1949년 이후이다?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은 광복을 맞이했다. 그렇지만 송영산(84세) 씨의 삶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1949년 당시 우리나라 총 인구수는 2,018만9천 명이었는데, 그중 1,441만여 명이 농가 인구였을 만큼 농업은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당시 넓은 농지는 대지주들의 것이었고, 대다수의 농민들은 지주들의 땅을 빌어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송영산 씨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 그에게 진정한 광복이 찾아온 것은 1949년 제정된 농지 개혁법 이후였다. 농지개혁을 통해 자신의 땅을 갖게 된 그의 삶에는 우리 경제의 50년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땅에서 먹고 크고 다 했다고 봐야죠. 그러니까 굉장히 고마운 건 말할 수 없고. 식구가 가족이 다 먹고사는 거니까.”- 송영산/ 농지개혁 사례자


■ 1954년, 어린이 25명이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사연은?

1950년 발발한 6.25 전쟁은 우리 경제를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몰고 갔다. 당시 우리 경제에서 미국의 원조는 거의 절대적이었는데, 이때 해외 공연을 통해 우리나라를 알리고 경제 지원을 이끌어 낸 어린이들이 있었다. 바로 1950년대 활동한 어린이 합창단이다. 1954년 미국 원조를 얻기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던 그 소년 소녀를 2015년 4월의 봄에 다시 만났다. 61년 전 나라를 위해 불렀던 그들의 노래 속에 우리의 한 시대가 흐르고 있다.

“지금 되돌아보면 저희들이 한국과 미국이 교류하는데 테이프를 끊기 시작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미국 사람들이 전체적으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상당히 달라졌고 그게 흐름에 초창기가 아니었나 그렇게 생각이 되고요.”- 이규도/ 어린이 합창단원


■ 이제 한국은 좁다. 한국 제품, 외국에 도전장을 내밀다!

김상혁(75) 씨는 인천에 있던 대성목재 근로자였다. 대성목재는 60년대 수출 품목 가운데 1위인 합판을 생산하는 회사였다. 합판 수출은 1960년대 1차 경제개발계획 중 수출 주도 산업화 전략이 낳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정부, 기업, 국민이 하나의 ‘코리아 컴퍼니’가 되어 해외로 물건을 실어 나르기 시작한 1960년대 초. 비로소 우리 경제는 자립의 기틀을 다져 나가기 시작한다.

“합판 산업이 뭐 옛날에는 그 우리나라 수출의 제1품목이었죠. 인도네시아가 원목 수출을 금지하고 자기들이 미국으로 직접 수출할 때 그때까지만 해도 거의 뭐 합판 수출이 우리나라 경제를 주도했다고 봐야죠.”- 김상혁/ 대성목재 근로자


■ 서독행 비행기가 늘어날수록 한국 경제는 발전한다?
홍종율(82) 씨는 64년, 서독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 다니던 직장도 있었지만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에 광부의 길을 택한 것이다. 당시 경제 개발 자금이 절실했던 박정희 정부와 외국인 노동력이 필요했던 서독은 ‘파독 협정’을 체결하였다. 그렇게 1963년부터 1977년까지 14년간 광부 약 8천여 명이 서독으로 떠났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은 자신들의 월급 상당 부분을 한국으로 송금했는데, 이역만리 독일 땅에서 들여온 귀한 외화는 우리 가계 경제는 물론 산업 발전에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다.

“그렇게 힘들고도 그랬지만 전혀 힘들다는 생각을 안 하고요. 또 불만도 안 가지고 이거는 우리가 사명을 가지고 왔고 우리가 이렇게 함으로써 가족들이 살 수가 있고 나아가선 국가의 그래도 이바지가 되지 않겠냐 해가지고 열심히 일했죠.”- 홍종율/ 64년 파독 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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