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면 하고, 하면 됐던 시절! 제철부터 선박, 자동차까지 경제 영토를 넓힌 중화학공업 강국 대한민국의 도약! ≪한국경제 70년, 그들이 있었다≫ 3부 (KBS 150425 방송)

Описание к видео 하라면 하고, 하면 됐던 시절! 제철부터 선박, 자동차까지 경제 영토를 넓힌 중화학공업 강국 대한민국의 도약! ≪한국경제 70년, 그들이 있었다≫ 3부 (KBS 150425 방송)

한국경제 70년, 그들이 있었다 - 3부 “중화학공업, 산업혁명을 일으키다” (2015.04.25 방송)

1960년대까지 후진 농업국에 불과했던 한국이 조강 생산 세계 5위, 선박 수출량 세계 1위, 자동차 생산 세계5위의 중화학공업 강국으로 성장한 비결은 무엇일까? 신흥 경제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산업구조의 일대 전환, 그것은 1973년 중화학공업화로 시작되었다. 세계가 주목하는 대한민국의 고속성장이 가능했던 것은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던 아버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 쇳물을 그리는 사나이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철의 생산으로 본격 중화학공업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1973년 6월 9일, 대한민국의 첫 쇳물이 쏟아지던 날. 그 역사가 시작된 곳은 포항제철 제1고로였다. 당시 고로 건설과장으로 근무했던 한경식(81)씨는 지금 화가로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림의 주된 주제는 평생을 바쳐 일해 온 쇳물, 그리고 그 현장이다. 그에게 쇳물의 의미는 청춘을 바친 열정 그 자체이다.

“쇳물에는 나의 인생이 다 담겨 있으니까, 지나간 인생을 그린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 불철주야 근무하던 아버지들, 첫 배를 띄우다.

1974년 최초의 초대형 유조선인 애틀랜틱 배런호와 함께 한국 조선 산업은 세계 속으로 첫 출항을 했다. 당시 애틀랜틱 배런호의 전기 배선 작업을 하던 김해식(68) 씨. 첫 진수식의 기억은 4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를 눈물 나게 만든다.

“전부 다 만세 부르고 환호했죠. 그날의 감동은 잊지 못합니다. 서울의 잠실 운동장 몇 배가 되는 그런 배이기 때문에 전 세계가 저희를 주목했고 전 국민이 박수를 쳤습니다.”

가족에게는 얼굴도 보기 힘든 아버지로, 현장에서는 ‘이틀 철야, 삼일 철야’로 불철주야 일하던 김해식 씨. 그에게 배는 대한민국의 자부심이자 인생의 긍지이다.


■ 기능공, 산업혁명의 주역이 되다.

1973년 정부는 중화학공업화와 함께 국민의 과학화를 선언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기능 인력을 대규모로 양성하기 위해 전국에 공업고등학교를 집중적으로 설립했다. 그 중 대표 격인 금오공고는 다양한 분야에서 기능공을 배출해냈다. 기업인 오왕근(58) 씨는 금오공업고등학교의 1회 졸업생이다. 국제기능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기도 한 그는 공고생이 우리나라의 산업혁명을 일으켰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나라 중화학 공업의 발전. 자동차산업의 발전. 철강 산업의 발전 등 모든 기술이 이렇게 빨리 성장할 수 있던 배경에는 70년대의 공업고등학교에서 우수한 자원들을 모집해서. 훌륭한 교육을 시켰기 때문에 가능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이 대리의 비밀노트, 국내 1호 자동차를 만들다

중화학공업 정책은 한국의 자동차 산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1970년대 초반만 해도 외국의 자동차 부품을 조립하던 수준이었던 한국에서 1976년 최초의 고유모델 1호인 포니가 개발된 것이다. 당시 현대자동차의 대리였던 이충구(70) 씨에게 떨어진 업무는 이탈리아에서 디자인 및 설계를 배워 국내 공장에서 그대로 실현해 내는 것이었다. 이탈리아 연수 당시, 설계도의 모눈종이 크기까지 꼼꼼하게 기록했던 연수일지는 ‘이 대리 노트’라 불리며 한국 자동차 개발의 지침서가 되었다. 빛바랜 노트로부터 자동차 생산 연간 452만대의 신화가 시작된 것이다.

“감히 포니를 시작할 때만 해도 저게 가능하겠느냐 했지만 자동차를 생산하면서 우리나라가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다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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