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이것이다13. 플라톤 Platon, '파이돈' : 영혼은 불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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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이것이다13. 플라톤의 ‘파이돈’의 주제는 영혼의 불멸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플라톤의 철학의 근본 목적은 정의 국가의 실현 가능성을 철학적으로 정초하는 데 있습니다. 이러한 플라톤의 철학적 목표는 그의 대화편들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어떤 대목을 강조하느냐에 따라서 해석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부인하기 어려운 점은 플라톤이 이데아론을 구체화한 것도 스승 소크라테스의 삶을 좌절시킨 부정의한 현실의 변혁을 통해서 정의 사회와 이상 국가의 실현을 꿈꾸었기 때문입니다. 그 꿈은 실패로 끝났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인간의 삶을 구원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 창조를 위한 노력은 평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려면 좋은 나라와 나쁜 나라, 정의와 부정의를 구분할 수 있는 객관적인 척도가 존재해야 합니다. 플라톤은 그런 척도가 존재한다고 믿었으며 또 증명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다름아닌 플라톤의 이데아론입니다.

이 이데아론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서 두 세계 이론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참과 거짓, 옳음과 그름, 좋음과 나쁨, 이 이원적 가치를 구별하고 식별할 수 있는 척도로서 이데아의 객관적 실재성을 증명하는 작업은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과제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것과 관련이 깊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철학함의 목적을 영혼을 훌륭하게 만드는 것, 훌륭한 삶을 사는 데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영혼은 육체의 죽음 이후에도 살아남는 존재, 즉 하나의 독립적이며 독자적인 실체로서 비가시적인 존재입니다. 이는 감각적 지각으로 통해서 인식되는 개별 사물들과 달리 사유를 통해서 파악될 수 있는 이데아가 이성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비가시적 존재인 것과 같습니다. 플라톤은 영혼의 고향이 이데아의 세계라고 은유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영혼과 이데아의 존재론적 위상을 동일시합니다. 그런데 이런 영혼이 훌륭한 삶을 산다는 것, 따라서 훌륭한 영혼이 된다는 것은 그렇지 않은 영혼과 구별된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즉, 이 또한 좋음과 나쁨을 구분할 수 있는 척도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이데아의 객관적 실재성을 증명하는 것은 모든 면에서 플라톤의 철학적 목적의 성취 여부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파이돈’은 영혼이 불멸한다(불사한다)는 증명을 직접적으로 시도합니다. ‘파이돈’에서 플라톤은 또 다른 대표적인 대화편인 ‘국가’에서 고려되고 있는 영혼의 성격과는 다른 점을 강조하며 논증을 수행합니다. ‘파이돈’이 ‘국가’ 보다 약간 먼저 쓰여진 것으로 본다면, ‘국가’에서의 영혼론은 ‘파이돈’에서의 논의를 보완하는 성격의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파이돈’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내용에만 집중하려고 합니다.

‘파이돈’에서의 영혼은 육망이나 감정과 완전히 구분되는 순수한 이성과 동일시됩니다. 플라톤이 불멸한다고 증명하려는 대상은 부동의 '불멸하는 실재'로의 영혼입니다. 플라톤이 영혼을 이렇게 특징짓고 있는 것은 영혼을 개념적으로 단순실체임을 증명하려고 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논점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핵심 주장과 관련해서만 살펴보면 플라톤은 영혼의 불멸, 불사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영혼이 몸에서 떨어져 나온 뒤로는, 더는 어디에도 있지 못하고, 사람이 죽게 되는, 그 날로 파괴되어 소멸되는 게 아닌지...” … “[케베스가 말하기를] [소크라테스] 선생님의 주장에 따르면, 즉 우리들에게 있어서 배움(앎; mathesis)이란 상기(anamnesis)에 불과하다고 하신 말씀이 옳다면, 우리들이 상기하게 되는 것들은 이미 이전의 어느 때인가 알고 있었던 게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는, 만일에 우리들의 영혼이 지금의 이러한 인간적인 모습으로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어딘가에 있지 않다고 한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이 점에 있어서도 영혼은 불멸하는 어떤 것으로 여겨집니다.” 플라톤은 우리의 앎은 태어나기 전에 알고 있었던 것을 상기 즉 기억해내는 것이며, 따라서 앎의 주체인 영혼은 태어나기 전이나 살아 있을 때나 불멸의 상태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영혼은 신적이며 불사이며, 지성에 의해서 알 수 있으며, 한 가지 모양이며, 해체될 것이 아니며, 또한 자기에 대해 언제나 똑같은 방식으로 한결같은 상태로 있는 것을 가장 닮은 것이다.”라고 합니다. 이는 영혼이 불사인 것은 영혼이 이데아에 관한 지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영혼불멸논증의 핵심적인 논거입니다. 하지만 영혼의 속성을 들어 증명하기도 하는데, 앞서 언급한 “한 가지 모양이며, 해체될 것이 아니며, 또한 자기에 대해 언제나 똑같은 방식으로 한결같은 상태로 있는 것을 가장 닮은 것” 즉 단순성, 불가분성, 동일성이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플라톤의 이 증명은 성공적이지 못해 보입니다. 이는 영혼이 이미 비가시적인 분할불가능한 불변하는 실체라는 것이 참일 경우에만 타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영혼불멸논증은 영혼이 그와 같은 실체일 수 있는 초감각적인 세계, 감각적인 것들의 원형으로서 이데아의 세계가 실재한다는 것, 그리고 이와 함께 영혼이 이러한 이데아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플라톤의 논증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데아의 객관적 실재성에 대한 증명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이데아의 실재성은 논리적 증명의 대상이 아니라 논리형식이나 이론체계의 완전성을 위한 필연적 요소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며, 이 경우에도 플라톤의 이론체계에서 이데아의 실재성이 필연적으로 요구된다는 독립적인 논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이론적 완결성을 구성하는 명제들은 이해와 직관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최후의 명제에 대해서 그것이 참임에는 확실하지만, 증명은 할 수 없다”는 진술은 직관적 이해, 이성적 통찰 혹은 깨달음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대부분 ‘철학적 문제’로 불리는 철학적 증명의 대상은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눠지는데, 하나는 인식론의 관점에서 비가시적인 대상의 실재를 증명하는 것으로서 미, 수, 영혼 등이 그런 대상들 중의 하나입니다. 다른 하나는 진리론의 관점에서 보편명제의 필연성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한 철학적 증명 또한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하나는 자연수 3과 5 사이에 있는 자연수는 4라는 것을 증명하는 방식으로서 논리적 필연성에 근거한 증명방식입니다. 이는 ‘p가 존재하며 그것이 참이라면, q는 반드시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는 않을 수 없다는 진술은 참이다’라는 형식을 포함합니다. 다른 하나는 경험적 지식들(사실들)로부터의 귀납적 일반화 또는 가설연역적 일반화를 통해 반대 사례가 발견되기 전까지 이를 보편명제로 승인하는 방식으로 선험적 필연성에 근거한 증명방식입니다. 그것이 선험적인 것은 우리가 경험적 사례들과 보편명제 사이에는 매울 수 없는 간극, 즉 논리적 비약이 존재할 수밖에 없지만, 보편명제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마 이는 보편명제에 대한 논리적 증명은 불가능하지만 그것은 보편명제임을 믿지 않을 수 없는 인간 마음의 자연적 성향이거나 그것이 참임을 부인할 수 없는 직관적 명증성이 승인된 결과라 할 수 있겠습니다.

플라톤은 이런 이야기들로 ‘파이돈’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영혼이 죽지 않는 것이라면 영혼을 보살피는 일이야말로 비단 우리가 살고 있다고 하는 이 기간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모든 때를 위해서 요구된다. 그리고 만약 누군가가 이를 소홀히 한다면, 그 위험은 이제 곧 무서운 것일 것으로 생각된다.” … “영혼이 나쁜 것들에서 벗어나는 길이나 구원책으로는 영혼이 가능한 한 최대한으로 훌륭해지고 지혜롭게 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왜냐하면 영혼이 저승으로 가면서 지니고 가는 것으로는 교육과 생활방식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인데, 이것들이야말로 그곳으로의 여정의 바로 시작 단계에서부터 망자를 가장 크게 이롭게 해주거나 해롭게 하는 것들이라고 한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와 함께 우리의 영혼을 훌륭하게 만들 수 있는 지혜(지식)를 가질 것을 권고합니다. 그것은 사후의 영혼이 계속해서 살아가게 될 삶의 여정을 위한 최선의 준비일 것입니다. 플라톤에 의한면, 철학은 죽음의 연습이다. 플라톤은 ‘파이돈’을 이런 말로 시작했었습니다: “철학[지혜에 대한 사랑]에 옳게 종사해온 사람들은 모두가 죽는 것과 죽음을 스스로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다.” 철학은 참 지식을 추구하고 참 지식을 갖는다는 것은 영혼을 훌륭하게 만드는 것이며, 그렇게 하면 육체의 죽음 이후에도 영혼은 계속 훌륭한 영혼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참 지식 즉 에피스테메는 그 누구도 갖기 어려운 지식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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