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한국사전 – 백제를 멸하리라, 김춘추의 지독한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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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마침내 삼국을 통일한 신라.
그 중심에는 태종무열왕 김춘추가 있었다.
한 가지 목표를 향해 평생을 바친 치밀한 외교지략가 김춘추!
20여년에 걸친 김춘추의 지독한 복수, 드디어... 나당동맹으로 달성한 백제 멸망 김춘추는 백제를 멸하고 신라를 지킨 영웅인가? 아니면 외세를 끌어들인 사대주의자인가?

- 구전동화‘토끼전’의 기원 - 김춘추의 탈출기!
구전동화로 잘 알려진 토끼전(별주부전). 이 이야기는 바로 김춘추의 고구려 탈출기에서 비롯되었다. 백제를 치기 위해 고구려에 원병을 요청하러 간 김춘추는 신라 땅의 일부를 주면 군사를 내주겠다는 고구려 왕의 요구를 거부해 옥에 갇히고 만다.
그때 고구려의 신하인 선도해가 들려주는 얘기를 듣고 꾀를 내어 무사히 빠져나오는데, 바로 이 이야기가 ‘토끼전’이다. 토끼전은 거북에게 속아 용왕에게 죽임을 당할 위험에 빠진 토끼가 간을 육지에 꺼내놓고 왔다고 속여 무사히 탈출했다는 설화로 ‘삼국사기-김유신전’에 기록되어 있다.

- 수어지교(水魚之交) : 김춘추와 김유신
우연을 가장한 계책을 써서 자신의 여동생과 김춘추를 결혼시킨 김유신. 김유신과 김춘추는 신라의 신귀족 세력을 형성하며 굳건한 관계를 형성한다. 대야성 전투에서 김춘추의 딸과 사위가 백제군에게 죽임을 당하자, 김유신은 8명의 백제 장군을 포로로 사로잡아 두 명의 유골과 맞교환한다. 또한 김춘추가 목숨을 걸고 고구려 외교길에 떠났을 때, 김유신은 신라에 군사조직 ‘별동대’를 준비해 고구려를 압박하였다.
고구려 감옥에 갇혀있던 김춘추는 자신의 지혜와 김유신의 군사력 덕분에 무사히 빠져나오게 된다. 실질적인 신라의 군권을 장악한 김유신의 군사력은 훗날 김춘추가 정권을 잡고 개혁을 펼치는 밑거름이 된다. 김춘추와 김유신은 수어지교, 즉 물과 고기의 사귐처럼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였던 것이다.

- 김춘추의 첫 번째 위기 : 대야성 패전
642년, 백제 의자왕은 신라의 대야성을 공격한다. 신라 장수 죽죽의 장렬한 전사에도 불구하고 신라는 대야성 전투에서 패하고 만다.
원인은 바로 대야성의 도독이었던 품석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백제에 항복해 부인인 ‘고타소’와 함께 참혹한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부는 바로 김춘추의 사위와 딸이었다!
두 사람의 죽음은 김춘추에게 큰 정신적 충격을 주었다. 김춘추는 온종일 기둥에 기대어 선 채로 사람이 그 앞을 지나가도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춘추에게 닥친 더 큰 위기는 바로 사위인 품석의 행동이었다. 화랑도 정신인 임전무퇴를 저버린 사위의 항복으로 인해 대야성 패전의 책임과 비난이 김춘추에게 쏟아진 것이다. 이 위기를 극복할 돌파구를 찾기위해 김춘추는 결단을 내린다.

- 김춘추의 두 번째 위기 : 목숨을 건 외교길
정치적 위기의 극복과 국가의 원수인 백제를 멸망시키기 위한 김춘추의 선택은 바로 신라의 또 다른 적국인 고구려에게 원병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당시 고구려는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켜 왕을 죽이고 실권을 장악한 상태로 김춘추의 고구려행은 목숨을 건 위험한 외교활동이었다. 고구려 군사를 빌려 백제를 치려던 김춘추. 그러나 신라땅의 일부를 주면 군사를 내주겠다는 고구려의 입장과 팽팽하게 맞서게 된다.
결국 김춘추는 고구려 왕의 분노를 사 감옥에 갇히게 되는데...
고구려의 신하 선도해의 지혜로 무사히 빠져나온 김춘추는 목숨을 잃을 위기를 넘기고도 신라를 위한 외교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왜(일본)로 건너가 신라와 왜의 동맹을 성사시키려 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백제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있었던 왜를 설득하기는 쉽지 않았다. 잇따른 두 번의 외교 실패. 풍전등화의 신라를 김춘추는 과연 어떻게 구할 것인가!

- 고도의 외교전략, 김춘추의 나당동맹
끊임없이 신라를 공격하는 백제. 김춘추는 백제 제압을 위해 대당외교에 나선다. 당나라 군사를 요청하기 위해 위험천만한 당나라를 찾은 것이다. 당시 당나라는 네 차례나 고구려를 공격했으나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계속된 패전으로 신라와의 연합을 원했던 당나라. 그러나 김춘추는 이런 당나라 사정을 이용해 치밀하고 전략적인 외교 전술을 펼친다. 고도의 심리전으로 당 태종을 설득한 김춘추. 드디어 648년, 신라와 당나라의 ‘나당동맹’이 맺어진다. 이는 당시로서 파격적인 김춘추 외교의 승리였다. 신라로 돌아온 김춘추는 정권을 장악하고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한다. 당나라와의 굳건한 동맹을 바탕으로 한 김춘추의 정치력과 김유신의 군사력은 강력한 신라로 발돋움하는 원동력이었다.

- 태종무열왕 김춘추, “반드시 백제를 멸하리라”
654년, 진덕여왕이 죽자 김춘추는 화백회의를 통해 군신들의 추대를 받아 신라 최초의 진골출신 왕으로 즉위한다. 660년. 드디어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숙원이 풀리는 날이 찾아왔다.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한 것이다. 백제의 계백 장군이 목숨을 다해 싸웠지만 백제는 멸망하고 만다. 20여 년에 걸친 김춘추의 지독한 복수가 드디어 끝이 난 것이다. 고구려, 왜, 당을 오가며 외교 활동을 펼치고, 신라의 왕으로 등극해 끝내 백제를 멸한 태종무열왕 김춘추. 외세의 힘을 빌려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은 김춘추에 대해 여러 가지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국내외 정치적 상황을 꿰뚫어 보고 치밀한 외교로 돌파한 김춘추는 한 가지 목표를 위해 일생을 바친 탁월한 외교가이자 왕위에 오른 풍운아였다.

한국사전 15회 – 백제를 멸하리라, 김춘추의 지독한 복수 (2007.9.29. 방송)
http://histor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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