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제일의 명산 무등산에는 국내유일 네모 모양 주상절리가 있다!(KBS 20130420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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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재발견 [역사를 넘어 빛으로 되살아나다 - 광주광역시]

▶ 모두가 평등한 산, 호남 제일의 명산 무등산
광주광역시와 화순군, 담양군 일대를 아우르는 진산 무등산, 무등산은 호남에서 광양 백운산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산이며 호남 들녘에 달덩이처럼 솟은 후덕한 산이다. 1972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무등산은 올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며 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는데, 등급을 매길 수 없어 무등이요 모두가 평등하니 무등산이라 불렸다는 무등산은 빼어난 경치, 정자, 역사, 먹거리를 두루 갖춘 광주사람들의 어머니 같은 산이다. 특히 정상 가까이에 있는 입석대. 서석대에는 국내에선 유일한 네모모양의 기둥처럼 생긴 주상절리가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는데. 평지가 아니라 산꼭대기에 주상절리가 위치한 건 무등산이 국내 유일하다. 자연적 아름다움으로 예로부터 시인 묵객들의 칭송을 받아온 산 무등산.
시인 이은상이 “돌을 돌이라 부르지 않고 서석이라 부른 것은 예찬의 뜻이나 나는 그 예찬이 과하지 않고 도리어 부족하다고 보고 싶다” 라 칭송했던 무등산의 아름다움을 만나본다.

▶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 감성을 느끼다, 광주극장
충장로의 좁은 골몰을 걷다 보면 잊혀진 시대의 한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공간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인 광주극장. 1935년 지어진 광주극장은 호남에서 한국인 자본으로 세워진 최초의 극장으로 일제강점기 현장검열을 나온 순사가 가위질하기 위해 자리를 잡았던 임검석이며 오래된 필름 통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인쇄하는 간판도 많지만, 이곳의 특징은 아직도 간판장이의 그림만 건다는 것이라는데.... 아직도 마지막 간판장이 박태규 화백이 그린 영화 간판이 그대로 남아있는 광주극장은 그 자체로 역사이자 문화가 되는 곳이다. 7~80년대 광주극장이 호황을 누리던 시절에는 일주일 동안 6~7편의 그림을 그려야 했던 간판장이들의 영화는 사라졌지만, 이곳은 그대로 남아 광주의 옛 시절을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로 남아있다.

▶ 광주 최고의 맛, 광주 반지 김치와 한정식
맛과 멋, 향의 도시 광주. 그중에서도 광주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손꼽히는 김치와 한정식. 전라도 하면 김치 맛 빼어나기로 소문 안 난 곳이 없지만, 광주 김치는 전라도 내에서도 가장 가짓수 많고 독특한 김치가 많기로 소문이 자자한데. 그 중 반지 김치는 광주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특유의 김치로 소고기 사태를 고아낸 육수에 오징어 새우 해산물뿐만 아니라 각종 과일까지 풍부한 재료가 가득한 고급김치이다. 귀하디귀한 재료로 만든 김치이다 보니 올라가는 상 또한 특별했는데, 그게 바로 광주 제일의 맛으로 불리는 한정식이다. 상다리가 휘어질 만큼 많은 가짓수의 음식을 제철음식으로 차려내는 광주 한정식은 예향의 도시 광주 음식의 대명사이자, 한류를 이끌 한식콘텐츠의 최고 상품으로 손꼽히는데... 조선 시대 수많은 선비가 정자와 누각에 한 상 가득 차려놓고 시를 읊으며 풍류를 노래하던 문화가 훗날 광주를 한정식의 메카로 자리 잡게 한 것이다. 선비문화가 만들어 낸 광주의 특별한 맛과 멋, 광주 음식들을 만나본다.

▶ 조선 시대 실리 유학의 상징 기대승의 애일당과 월봉 서원
대대로 실리 유학과 문화예술의 고장으로 유명한 광주, 광주를 빛낸 수많은 학자와 예술인 중 한 명인 고봉 기대승은 조선 시대 퇴계 이황과 유학 논쟁을 벌여 유명해진 학자로 영남에 퇴계가 있다면 호남엔 고봉 기대승이 있다는 말을 할 정도로 한 시절을 풍미했던 인물이다. 그런 기대승을 모신 서원인 월봉서원은 행주기씨의 집성촌인 너브실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마을에 자리 잡은 오래된 집, 애일당은 고봉 선생의 6대손인 기언복이 숙종 때 터를 잡은 집으로 300년의 역사와 학풍을 자랑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애일이라는 당호는 ‘나이 든 부모님께 하루의 햇볕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담은 의미로 부모님이 하루라도 더 오래 살기를 기원했던 효도의 마음이 담겨있는 이름이다. 애일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월봉서원은 고봉 기대승을 모시는 사당이자 선비들의 교육기관이다. 월봉서원의 강당으로 쓰인 빙월당은 화려한 단청 하나 쓰지 않으며 소박하고 검소한 기대승 선생의 성품을 반영한 듯 보이는데... 호화롭진 않지만 배움보다 배움의 자세를 더 중시했던 고봉 기대승을 통해 진정한 선비정신을 느껴보자.

▶ 남도를 비춘 민주화의 빛 5.18과 역사를 만든 사람들
1980년 5월 18일 광주는 모두에게 잊힌 도시였다. 그동안 군사독재 정권 치하에서 신음해온 대한민국 국민을 대신해 목숨을 바쳐 일어섰던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 대한민국에 민주라는 선물을 안겨주는 기폭제가 된 그날의 시작은 전남대였다. 5월 18일 전남대생 200여 명은 휴교령이 내려진 학교에 들어가려다 계엄군과 투석전을 벌였고 부상당한 학생들을 보고 합세한 시민과 시위를 벌였으나 계엄군의 폭력 진압으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면서 광주 민주항쟁이 시작된 것. 계엄군은 장갑차를 앞세우고 착검한 총으로 시위대를 진압했지만, 이에 시민은 스스로 시민군이라 칭하며, 경찰서나 계엄군으로부터 탈취한 소총으로 무장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끝내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공세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으며 광주민주화운동은 막을 내렸다.
당시 광주 우체국에 근무하며 민주화 운동을 지켜본 조한유 씨. 그는 33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때의 사건을 기록한 그의 일기에서는 당시 상황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말해주고 있는데... 그 치열했던 10일, 우리 역사를 바꾼 그 눈물의 시간을 만나본다.

▶ 상인과 작가가 함께 만드는 소통의 공간, 광주 대인예술시장
수많은 전란을 겪고 공존의 정신을 터득한 이들이 사는 곳. 각각의 네모난 상점들이 얽히고설킨 곳, 해방 이후 역전에 자리 잡아 웃돈을 얹어야만 점포를 살 수 있었던 곳. 하지만 터미널과 역이 이전하고 농협 공판장이 옮겨가면서 쇠락의 길을 걸어야 했던 곳. 바로 대인시장이다. 굳게 내려진 셔터가 다시 열리기 시작한 건 2008년 예술가들이 이곳에 모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닭집 벽엔 주인아줌마의 얼굴이 그려졌고 상인들은 자신이 만든 도자기를 구워 팔기 시작했다. 생필품은 사라졌으나 이곳에서 골목을 여행하며 문화를 만나려는 사람들은 늘어갔다. 비엔날레와 문화 역사를 품은 도시 광주, 대인시장은 21세기 광주의 예술과 문화가 시민과 함께 할 때 어떤 시너지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남았다. 사람을 찾아 시작된 예술시장, 상인과 작가들은 물론 거쳐 가는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도시 광주의 새로운 미래를 이곳에서 엿본다.

#광주 #민주화운동 #무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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