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횡성] 풍수원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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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원성당

1.강원도 횡성군 서원면에 위치한 풍수원성당(豊水院聖堂)은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1892년), 전북 완주 되재성당(한국 최초의 한옥성당 1895년, 현 고산성당 1994년) 그리고 서울의 명동성당(1898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네 번 째로 1907년에 지어진 성당입니다.

높이 5m, 건평 120평으로 로마네스크와 고딕의 절충식 건축물인 풍수원성당은 강원도에 세워진 최초의 성당이면서 동시에 한국인 신부가 지은 첫 번 째 성당이기도 합니다. 1982년 11월 3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 6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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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이면서 횡성에서도 고개를 두개나 넘어야 하는 첩첩산중이었던 풍수원은 1801년 신유박해 때 경기도 용인의 신태보(베드로)를 중심으로 순교자 유가족 40여 명의 신자들이 피난처를 찾아 떠돌다가 정착한 곳인데요, 한국 천주교 최초의 교우촌입니다.

신유박해(辛酉迫害)는 1801년(순조 1년)에 발생한 조선 최초의 대대적인 천주교 박해사건으로 이때 중국인 선교사인 주문모 신부를 비롯한 300여 신자들이 순교하게 됩니다.

이후 1839년 기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 그리고 1866년 병인박해와 1871년 신미사옥 때도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들어옴으로써 이 곳 풍수원은 80여 년 동안 성직자 없이 신자들끼리 신앙생활을 영위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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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마침내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됨으로써 한국에서도 천주교 박해가 끝나고 신앙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고, 또 성당도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프랑스 선교사들의 전도가 공식적으로 허용된 직후인 1888년 6월 20일, 조선교구장이었던 뮈텔주교가 이곳에 풍수원 본당을 설립하고, 1890년(고종 27년) 프랑스인 르메르(Le Merre 1858~1928) 초대 주임신부를 파견합니다.

당시 풍수원 성당은 춘천, 화천, 양구, 홍천, 원주, 경기도 양평 등 12개 군을 관할하며 공소만 29개나 되었다고 합니다. 신자 수는 약 2,000명으로 초가집 20여 칸을 성당으로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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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이 후 고종 33년(1896년)에 2대 주임으로 정규하(아우구스티노1893∼1943) 신부가 부임하는데요, 이분은 김대건, 최양업에 이은 세번 째 한국인 신부이십니다. 한양 용산에 있던 신학교인 예수성심학교 제 1회 졸업생으로 다른 세 분과 함께 1896년 약현성당에서 사제서품을 받게되는데요,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서품식이었습니다.

1906년 정신부님은 직접 설계도를 작성하여 명동성당 건립에 참여했던 중국인 기술자 진베드로와 함께 성당을 착공합니다. 신도들도 다함께 벽돌을 굽고 아름드리 나무를 해오는 등 자재를 현지에서 조달하며 힘을 보탠 결과 마침내1907년 성당이 완공되고 1909년에 낙성식을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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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풍수원 성당 건물은 국내 최초의 서양식 성당인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을 모델로 삼았습니다.
약현성당은 1891년 10월 건축을 시작하여 착공 일년 만인 1892년 11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벽돌집 성당으로 준공되어 1893년 4월 축성식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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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참고로 명동성당은 1887년 5월에 부지를 매입하고 그해 겨울부터 정지작업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1892년 8월 기공한 후1898년 5월에야 축성식을 가지는 바람에 약현성당이 명동성당에 앞선 것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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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풍수원성당의 앞면에는 돌출한 종탑부가 있고 출입구는 무지개 모양으로 개방되어 있습니다. 지붕은 두꺼운 동판을 깔았으며, 내부에는 기둥들이 줄을 지어 있는데 벽돌 기둥처럼 보이게끔 줄눈을 그려 넣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방문 시 미사중이어서 내부는 촬영하지 못해 빌려온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8.성당 앞마당에는 최근에 지은 초가집이 한 채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의 성당이 있기 전에 사용했던 초기의 초가집 풍수원성당을 재현한 것인데요, 이곳에 앉아 아름다운 성당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세상 근심을 다 잊고 평온하고 따뜻한 마음이 될 듯 합니다.

9. 사계절 모두 아름다운 이 성당은 드라마, 영화촬영지로도 유명합니다.
mbc드라마 '러브레터'를 시작으로 박신양ㆍ전도연 주연의 '약속'  차인표ㆍ장미희 주연의 '보리울의 여름' KBS드라마 '애정의 조건' '상두야 학교가자' '그녀는짱' '인생이여 고마워요' SBS드라마 '유리화' '패션 70s' '조강지처 클럽'등 많은 작품들이 촬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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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성체현양대회
성당 왼편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십자가의 길 14처(이철수 판화가 제작)가 있으며 그 위에는 성체현양동산이 자리합니다.

정규하 신부는 1920년 부터 6월 '성체성혈대축일'에 힘든 여건 속에서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교우들을 위한 성체현양대회를 열었습니다.

이때가 되면 전국에서 1,500여 명이 넘는 신도들이 풍수원성당을 찾는다고 하는데요(단, 6·25때는 3년간 본 행사가 치뤄지지 못했습니다) 신앙의 요람터이자 선조들의 얼이 담겨 있는 역사의 현장인 이 성당은 그동안 30여 명에 달하는 한국인 사제들도 탄생시키며 그 의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풍수원성당 구 사제관]

본당 옆에 위치한 구 사제관은 원형이 잘 남겨진 벽돌조 사제관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오래된 건물인데요, 2005년에 그 가치가 인정되어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 163호로 지정됩니다.

이 건물은 1913년 10월  2대 주임이셨던 정규하(아우구스띠노 1863~1943)신부님에 의해서 진행 완공되었으니 어느덧 110년이라는 세월을 함께하고있습니다.

정 신부님은 사제관 1층을 산골 아이들을 위한 학교인 ‘삼위학당’으로 활용하시고,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도 마을 사람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고 가난한 이들과 고아들을 돌보셨는데요, 1943년 선종하실 때 까지 사제서품을 받으시고 첫 부임하신 이래로 47년 간 이곳에서만 사목하셨습니다.

1997년 이후에 사제관은 유물전시관으로 전환되면서 320여 점의 유물 가운데 일부가 현재 전시 중인데요, 이곳에서 풍수원성당의 역사를 살펴 볼 수 있는 유물과 자료, 또 정 신부님께서 사용하셨던 제의와 제구, 그리고 오래된 신앙 도서들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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