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그룹] 아파트 재벌 장수홍 청구그룹 회장의 일장춘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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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수도권 신도시와 서울 강남권에 건재한 청구아파트는 한 때 주부들 한테 가장 인기있는 아파트로 이름을 날렸습니다.대구에서 수도권으로 올라와 전국적인 인기를 끌던 청구그룹이 망한지 20여년이 흘렀습니다. 이 회사를 창업해 한때 기업인들의 우상으로 비쳐졌던 장수홍 창업 회장은 완전히 잊혀진 인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파트 건설을 시작으로 유통, 방송,금융등 재계 랭킹 30위권에 들었던 청구 그룹이 왜 하루 아침에 폭망하고 말았는지 이 회사를 창업했던 장수홍 회장의 근황은 어떤지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1. 대구에서 일어나 전국적인 명성 일군 청구아파트의 성장 비결
대구출신인 장수홍 회장은 부산대 섬유공학과를 나와 일본어 공부를 하기위해 일본잡지를 보다가 일본에서 주택경기가 활성화 되는 것을 보고 주택사업을 하기로 마음먹습니다.1973년 자본금 2천만원으로 현 대구 수성구 범어동에 12명의 직원을 거느린 ‘청구주택개발’은 이렇게 탄생합니다.그때 그의 나이 31살 때였습니다.처음에는 일반 주택을 지어 팔면서 주택사업의 묘미를 익혀갔습니다.행운이 찾아온 것은 1981년 대구시가 직할시로 승격됨에 따라 대구지역 곳곳에서 개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였습니다.장 회장은 이때 단순한 일반 주택이 아닌 고층아파트에 승부를 걸었습니다.청구아파트는 대구지역에서 단 시일내에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이에 자신을 얻은 장 회장은 서울로 진출을 시도합니다. 지방업체로선 엄청난 모험이었습니다.당시 서울에는 현대 한양 대림 한신 우성 등 기라성 같은 주택 건설업체들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장 회장에게 기회가 온 것은 서울 중계동 아파트였습니다.‘청구가 짓는 집은 좋은 집’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승부를 걸었습니다.장 회장이 설계도면 만은 직접 챙긴다며 홍보에도 색다르게 접근했습니다.이에 힘입어 1986년 중계동에 분양한 청구아파트는 대박이 터집니다.청약경쟁률이 37대 1을 기록해 당시 최고의 경쟁률을 보였습니다.

2. 최고의 청약률로 분당 일산 시도시 점령
이후 분당 일산 등 수도권 신도시에서 청구의 돌풍은 이어집니다.주부들로부터 대 호평을 받은 것입니다.장 회장은 수도권 진출의 성공을 기반으로 문어발식 사업 확장에 나섭니다.삼양코아,청구조경 등 건설업 뿐 아니라 분당 신도시에 블루힐 백화점을 세우고 유통업에 진출했는가하면 지역 민영방송인 대구방송 인허가를 받기에 이릅니다.주택건설업에서 유통 방송 금융 정보통신 레저산업등 전방위로 확장하기에 바빴습니다. 1990년대 중반엔 재계 순위 30위권에 드는 15개 계열사를 거느린 대그룹 반열에 올라섰습니다.당시 장수홍 회장은 월급으로 700만원을 책정해 총수 월급 순위 10위권에 들어 화제가 된 적이 있을 정도였습니다.대대적인 광고와 홍보 등으로 청구그룹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몰랐습니다. 그 무렵 각종 메스컴에서는 장수홍 회장과 청구그룹의 비전을 홍보하기에 바빴습니다.장 회장은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건설 중심으로 성장하던 기업 틀을 물류,정보통신,방송 등으로 사업 다각화를 이루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밝히기도 했습니다.1999년엔 매출을 3조6천억으로 늘리고 이에 걸맞는 전문 경영인들을 대거 영입하겠다고 했습니다.실제로 청구 그룹은 전문 경영인들을 공개 모집해 세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습니다. 정부에서 수여하는 각종 훈 포장도 휩쓸다시피했습니다.
그러나 장 회장과 청구 그룹의 대대적인 홍보에도 시장에서의 반응은 그렇게 좋지 않았습니다.1996년 말부터 청구그룹 자금 압박설이 증권가를 중심으로 터져 나왔고 청구의 아파트 사업도 지지부진하다는 얘기들이 시장에서 퍼지기 시작했습니다.장 회장과 그룹 측에서 적극 해명하면서 위기는 넘기는 듯 했습니다. 1997년 말 닥친 IMF외환 위기는 제일먼저 건설업체들에게 직격탄이 되고 말았습니다.미 분양 아파트가 속출했고 분양된 아파트는 중도금이 들어오지 않는 현상까지 일어났습니다.청구는 미분양 아파트가 1천600여가구에 이르렀고 여기에 묶인 자금만 2천억원이 넘었습니다. 다른 주택 건설 업체들도 마찬가지였지만 특히 청구는 이전부터 자금사정이 안좋다는 소문이 시장에 돌았던 터라 치명상을 입고 말았습니다.청구는 이를 타개하고자 일산 신도시에 ‘오디세이’라는 주상복합물을 분양하면서 안간힘을 썼으나 IMF의 파고를 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당시 청구의 부채 규모는 1조700억원으로 매출액과 거의 맞먹는 수준이었습니다.업계에선 청구의 부도는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습니다.청구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이른바 ‘TK정서’에 의해 하루 하루를 버티고 있다는 진단이었습니다.1997년 12월 대선에서 승리한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청구그룹은 부도를 내고 법정관리를 신청하기에 이릅니다.청구그룹이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그렇다면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청구 그룹이 왜 하루아침에 몰락하고 말았는지 의문으로 남습니다.물론 직접적인 원인은 IMF한파에 따른 자금시장 경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실제로 청구 그룹은 금융기관의 자구책 여파로 여신이 동결된데다 기존 여신의 상환 압력,회사채 재발급 불능 등으로 1997년 들어 극심한 자금난을 겪어왔습니다.특히 IMF구제금융 이후 일반 금리가 20%,단기금리는 40%로 치솟아 부채가 많은 기업들은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할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주택업체들에겐 시중금리가 아파트 중도금 연체 이자율 보다 높아지자 아파트 분양계약자들이 대거 중도금 납입을 포기하면서 자금 유입이 사실상 중단되기도 했습니다.청구로서는 치명상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이에 대해 경영사학자들은 청구의 몰락은 IMF사태 이전에 예견되었다고 진단합니다.분당 일산 등 신도시 특수가 끝나면서 주택 건설 물량이 급감한 것이 원인이라는 것입니다.이 무렵 우성 유원 삼익 건영 한신공영 등 주택명문 건설업체들이 줄줄이 도산한 사례가 이를 증명합니다.

3. 백화점 방송 금융 등 문어발식 경영으로 자금 압박
청구는 주택의 비중을 줄이고 유통과 방송 등 사업다각화에 나섰지만 이게 다시 족쇄가 되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특히 1996년 분당에 2천억원을 투자 ‘블루힐백화점’을 개점했으나 서울 강남으로 향하는 고급 소비자들을 잡는데 실패하고 투자금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한 것도 그룹 몰락의 한 원인이라는 얘기입니다.대규모 자금이 투자된 대구방송과 종합영상 프로덕션인 파라비전 등도 돈만 투자하고 수익은 가져다 주지 못해 결국은 청구 몰락의 단초를 제공하고 맙니다.

4. IMF직격탄에 TK건설 3인방과 함께 몰락
그룹이 몰락하면 검찰 수사가 뒤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대구 지검은 청구그룹과 장수홍 회장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진행해 장 회장이 회사자금을 대규모로 빼낸 사실을 확인하고 장 회장을 구속하기에 이릅니다.장 회장은 청구그룹을 경영하면서 총 1천472억원의 회사자금을 유용한 혐의와 대구방송 설립 인가를 위해 홍인길 전 대통령수석에게 45억원을 건넨 혐의등으로 1998년 6월 구속기소돼 징역 5년이 선고돼 실형을 살았습니다.구속될 당시 ‘장수홍리스트’가 정치권과 검찰 주변에 나돌아 많은 거물 정치인들이 해명하기에 급급했었던 적이 있습니다. 야당 대권주자에서 당시 여권 거물 정치인들이 이름이 오르내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장수홍 리스트’는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채 유야무야 되고 말았습니다.어쨌든 장수홍 회장은 5년의 실형을 꽉 채우고 만기 출소합니다.그때만해도 비자금 조성이나 분식회계 등 혐의로 실형을 선고 받은 재벌기업주들 대부분은 집행유예나 보석으로 풀려나는 현실에서 장 회장은 재벌총수로서는 이례적으로 만기 출소했었던 것입니다.그 후 한참 잊혀졌던 그가 2011년 사기혐의로 피소되면서 세상에 잠시 얼굴을 내민적이 있습니다.산업단지 조성 공사를 하기 위해 아들 친구로부터 돈을 빌렸는데 갚지 못해 사기혐의로 피소된 것입니다.나중에 무죄로 밝혀졌지만 장 회장이 재기하려다 실패했었다고 당시 언론에선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그 후 장 회장의 소식은 현재까지 특별하게 알려진 것은 없습니다.

우방 건영 등 TK건설 3인방으로 불리며 서울에서 최고의 인기 아파트를 짓는 회사로 유명했던 청구그룹은 이제 몇군데 아파트 이름만 있을 뿐 모든 계열사는 파산했거나 다른 회사 간판을 걸고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장인정신을 내세우며 재계에 기라성처럼 등장했다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고만 장수홍 회장을 보면서 사업을 계속해서 영위하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청구그룹의 흥망성쇠는 요즘 갑자기 졸부가 된 기업들에겐 타산지석이 아닐 수 없습니다.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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