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찌무라 간조의 생애 | 일본의 양심을 깨운 시대의 선구자 | 신앙의 위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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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기독교 사상가 우찌무라 간조(1861-1930)는 일본인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찾고자 한 사상가입니다.

미국 농학자 클라크가 세운 삿포로 농과대학을 다니던 중 친구를 통해 복음을 듣게 되고 기도 모임에 참여하며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대학 졸업 후 1882년 친구와 함께 삿포로 독립교회를 설립한다. 미국 애머스트 대학과 하드포드 신학교를 졸업했으나 성직자가 되진 않았습니다.

일본으로 돌아와 도쿄 제일고등중학교 교사가 되었다. 그러나 1891년 교육 칙어 봉독식 때 천황에 예를 표하지 않아 일천황을 숭배하는 존황파의 미움을 받아 직장, 아내와 자식을 잃게 됩니다.

1900년 월간 성서연구를 간행해 선교에 몰두합니다. 그는 철저한 십자가 신앙을 강조하면서 참된 신앙은 성경에 근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의 꿈은 성경대로 사는 것과 위대한 평민을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수십년간 청년들 가르쳤던 6평짜리 다다미방에서 야나이하라 다다오 같은 3명의 도쿄대 총장, 오호히라 일본 수상 등 지도급 인사들이 배출됨으로 1차대전 후 일본의 근대화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김진홍 목사(두레수도원)는 우리가 지금 왜 우찌무라 간조를 알아야 하는가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한국 교회는 세인들의 비난과 조소 속에서 휘청대고 있습니다. 병든 세상을 치유하여 새롭게 하며 바른 미래로 이끌어 가야 할 교회가 오히려 세상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이런 때에 우리의 이웃 나라 일본에서 바른 교회를 일구고,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을 세워 나가기 위해 고민하며 살았던 우찌무라 간조의 삶과 사상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은 큰 의미를 갖습니다."

예수님을 닮은 사람, 우찌무라 간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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