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두 목사의 생애 | 한국의 위대한 부흥사 | 불의사자 | 순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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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무디라고 불리는 불의사자 김익두 목사는 1874년 황해도 안악에서 출생하였습니다. 부친이 일찍 돌아가신 가정을 일찍부터 돌봐 왔던 그가 사기를 당해 모든 재산을 잃게 되어 방탕하여 사람들을 괴롭히는 불량배가 되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인가 장에 나갔다가 전도지를 받고 친구의 전도를 받아 교회엘 나가게 된 후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는 신약성서를 100번 읽으며 신앙에 심취했고 그 과정에서 가슴을 칼로 찢는 것 같은 불세례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삼일간 금식을 하고 산에서 내려 올 때 큰 불덩어리가 가슴에 떨어져 화끈거리는 체험을 하였고 하늘에서 "김익두야! 김익두야!"하는 소리를 듣고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의 집회는 철저한 죄의 고백과 회개가 임하는 집회였습니다. 1920년 10월 11일부터 열린 평양집회에는 일만여명이 모여 통회와 자복을 하는 일이 있었는데, 새벽기도에는 수천명이 마당에 멍석을 깔고 통회의 눈물로 아침을 밝히는 영적 각성이 있기도 했습니다.

김익두목사는 늘 원칙을 세우고 생활을 하였는데 새벽에 은밀히 기도할 것, 신구약 2장씩 숙독할 것, 냉수마찰, 하루 세 번 가정예배 드렸습니다. 그는 또한 철저히 성경을 읽고, 성경대로 믿는 생활을 몸소 실천했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이적의 사역자로 삼으신 것은 이런 믿음의 그릇이 있었기때문인 것입니다.

그는 150여 곳에 교회를 세웠고, 설교횟수 28,000번, 새신자 28만명, 치병자 일만여명이였고, 그의 감화로 목사가 된 사람이 200여명이 있는데 그 중에 이성봉, 주기철, 김재준 등 한국교회사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는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사경에 이르도록 고문을 당했고, 목사직을 박탈당했다. 광복 후 목회를 계속 할 수 있었지만 한국동란 때 교회당에 모여 예배를 드리다 공산당에 의해 교인들과 함께 순교당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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