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다산초당과 다산 박물관 서암(다성각-초당-동암(송풍루)-천일각-백련사 가는 오솔길-해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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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사적 제107호)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선생이 유배되어 11년간 머물면서 많은 책을 저술했던 곳이다. 
정약용은 여유당 등의 여러 호를 가지고 있으며, 천주교 이름으로는 요한이라 하였다. 
정조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으며, 유형원과 함께 수원성을 설계하고 거중기 등의 신기재를 이용하여 수원 화성을 쌓기도 했다. 
정조가 죽자 신하들의 모함을 받아 투옥되어 유배되었고, 그후 18년간의 유배생활 동안 그는 많은 저서를 남겼다. 
정약용의 사상은 한국사상의 원형과 직결 된다고 할 수 있다.
이 곳에서 11년 동안 머물면서 목민심서와 경세유표, 흠흠신서를 비롯한 500여권에 달하는 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리고 이를 총정리한 여유당전서는 철학, 법제, 종교,악경, 의술, 천문, 측량, 건축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장래에 도움이될 학문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학술적 연구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옛 초당은 무너져서 1958년 강진의 다산유적보존회가 주선하여 건물이 있던 자리에 지금의 초당을 다시 지은 것이다. 
작고 소박한 남향집으로 다산초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초당 뒤 언덕 암석에는 다산이 직접 깎은 정석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으며, 초당 왼쪽으로 자그마한 연못이 있다. 
앞 뜰에는 차를 달였다는 청석이 있고, 한켠에는 약천이라는 약수터가 있어 당시 다산의 유배생활을 짐작하게 한다. 
#중앙의 다산초당 양옆으로는 제자들이 묵었던 서암과 다산이 기거했던 동암이 있는데, 유배 중에도 학문을 가르치며 사람을 만나고 의욕적인 저술활동을 하면서 학자로서의 소임을 충실히 했다. 
#다산초당과 서암
만덕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다산초당, 여기서 다산은 5백여권의 서적을 집필하고 18명의 제자들을 길러냈다고 한다.
#정석(다산초당 제1경)
다산이 직접 새겼다고 전해지는 정석은 다산초당의 제1경이다 아무런 수식도 없이 자신의 성인 정자만 따서 새겨 넣은 것으로, 다산의 군더더기 없는 성품을 그대로 보여준다.
#다조(다산초당 제2경)
다산 초당앞의 이 평평한 바위에 앉아서 솔방울로 차를 끓여 마셨다
#약천(다산초당 제3경)
초당 왼쪽 뒤 모서리에 흘러 나오고 있는 3경 약천, 이 물로 차를 끓여 마셨다고 한다.
#연지석가산(다산초당 제4경)
연못 가운데 돌을 쌓아 만든 산이다. 
다산은 원래 있던 연못을 크게 넓히고 바닷가의 돌을 주워 조그마한 봉을 쌓아 석가산이라 하였다. 
연못에는 잉어도 키웠는데, 유배생활에서 폴려난 후 제자들에게 보낸 서산에서 잉어의 안부를 들을 만큼 귀히 여겼다. 
다산은 잉어를 보그 날씨를 알아내었다고 한다. 
#동암
초당 오른쪽에 자리잡고 있는 동암. 
동암은 2천여권을 서적을 갖추고 기거하며 손님을 맞았던 곳으로 송풍루라고도 부른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이어지는 오솔길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백련사의 명승 혜장 선사를 만나기 위해 오가던 사색의 길이다.
길이는 800m이며 도보로 30분 정도 소요된다.
길주변에는 동백나무와 차나무가 어우러져있어 경관이 아름답고 경사도 완만하여 걷기 코스로 제격이다.
오솔길 중간지점에는 해월루가 있어 잠시 쉬어갈 수도 있다.
#천일각
하늘끝 한 모퉁이라는 뜻의 천애일각을 줄인 것이다. 
다산의 유배시절에는 없던 건물인데, 돌아가신 정조대왕과 흑산도에서 유배 중인 형님 정약전이 그리울때면 이 언덕에 서서 강진만을 바라보며 스산한 마음을 달랬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1975년 강진군에서 새로 세웠다. 
#백련사 가는 오솔길
찌뿌듯한 하늘이 맑게 갠 어느 봄날, 냉이 밭에 하얀 나비가 팔랑거리자 다산은 자기도 모르게 초당 뒤편 나무꾼이 다니는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들판이 시작되는 보리밭을 지나며 그는 탄식했다. 

나도 늙었구나.
봄이 되었다고 이렇게 적적하고 친구가 그립다니.
백련사에 해장선사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벗될만한 이가 없는 궁벽한 바닷가 마을에서 혜장은 다산에게 갈증을 풀어주는 청량제 같은 존재였다. 
혜장은 해남 대둔사출신의  뛰어난 학승이었다.
유학에도 식견이 높았던 그는 다산의 심오한 학문경지에 감탄하여 배움을 청했고, 다산 역시 혜장의 학식에 놀라 그를 선비로 대접하였다. 
두 사람은 수시로 서로를 찾아 학문을 토론하고 시를 지으며 차를 즐기기도 했다. 

혜장이 비 내리는 깊은 밤에 기약도 없이 다산을 찾아오곤 해서 다산은 밤깊도록 문을 열어 두었다고 한다. 
다산과 해장이 서로를 찾아 오가던 이 오솔길은 동백 숲과 야생차가 무척 아름답다. 
그러나 이 길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친구를 찾아가는 설렘일 것이다.
보고 싶은 친구를 가진 기쁨, 친구를 찾아가는 길의 행복
#해월루
해월은 바다위에 뜬 달이라는 뜻으로 다산초당과 백련사간 오솔길에 2층규모의 누각

#대금 연주 겨울을 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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