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국 세가 / 무임 승차자 조참 - 사마천 사기세가 인문학 고전 소하 한신에 이은 이인자

Описание к видео 조상국 세가 / 무임 승차자 조참 - 사마천 사기세가 인문학 고전 소하 한신에 이은 이인자

인문학 고전 사마천 사기 조 상국세가

-. 조참의 등장과 유방과의 관계

조참은 유방이 천하를 쟁패하는 과정의 소하 다음가는 두 번째 공신 인물입니다.
그는 진나라 말기 패현의 (옥연) 옥사를 관리하던 하급 관리자였다.
그는 유방을 추대하여 패공으로 삼고 그를 따라 진나라에 항거하여 함양을 점령할 때까지 서쪽으로 진출하며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며 유방 패공을 도왔다. 조참은 항우가 유방을 한왕에 봉해 한중에 왔을 때 와서 장군으로 승진했다. 이후 동쪽 팽성까지 진출했다가 항우의 반격을 받자 유방과 함께 형양까지 다시 물러난다. 이때 함께 연합했던 위나라 위표가 반역을 하자 조참은 한신과 함께 안읍을 치고 위표를 사로잡은 후 위나라 도읍 평양을 차지했다. 이후 조나라까지 쳐서 상국 하열을 죽인다. 한신은 장이와 함께 조나라 진여를 공격하고 조참은 회군하여 조나라 잔류 군사를 치며 한나라에 중요한 식량창고 요새인 오창을 공격하여 점령한다.
이후 조참은 한나라 우승상의 신분으로 승격되고 제나라를 공격하려는 한신과 함께 제나라 역하를 공격하고 임치까지 점령한다. 제나라가 초나라와 연합하여 용저를 앞세워 대항하자 조참은 초나라와 싸워 용저를 베었고 제왕 전광을 사로잡았다. 이후 한신은 제왕이 되고 조참은 제나라 잔류 지역을 평정하였다.
해하 전투에서 한과 초가 최후로 싸워 항우가 죽고 한왕 유방이 이제 한나라 황제가 되었다. 한 고조 유방은 이제 한신을 제나라 왕에서 초나라 왕으로 봉했고 제나라 왕에는 조 씨 부인으로부터 얻은 큰아들 유비를 제왕에 봉하고 그 밑에 조참을 제나라 상국으로 삼았다.
한신의 기세가 두려웠던 유방은 한신을 진 지역으로 불러들여 모반의 죄를 묻고 회음후로 강등시킨다. 이후 한신은 유방에게 불만을 갖게 되었다.
얼마 후 북쪽으로 발령받았던 진희가 모반을 했을 때 고조 유방이 조참과 직접 출정하여 진압을 했고 이때 여후는 한신이 진희와 연대하여 장안에서 함께 모반하려 했다는 누명을 씌워 소하를 시켜 한신을 죽게 만든다.
일 년 뒤 이번에는 남쪽 회남왕 경포가 모반을 하자 이때 역시 유방과 조참이 직접 나가 경포를 진압한다. 그리고 조참이 그 지역 뒷정리를 하고 돌아오고 얼마 뒤 고조 유방이 화살 맞은 곳이 상처가 심해져 죽게 되고 이후 여후의 아들 유영이 혜제로 황제에 등극(BC195)하고 그 뒤로 2년 뒤 일등공신이며 상국이었던 소하마저 죽는다.

-. 무장이었던 조참의 행정 관리능력
혜제가 등극하고 한나라 황제국 이외 제후국에는 상국이라는 벼슬을 없애 승상으로 명하고 이때 제나라 상국이던 조참도 이제 제나라의 승상이 되었다.
천하가 평정되고 조참이 제나라 상국에 발령이 나자 제나라 왕 도혜왕은 아직 어리니 조참이 제나라를 이끌어야 하는데 장수 출신이라 잘 모르니 예로부터 사상가가 많이 배출된 제나라의 유생들을 모아 공론을 열다. 그중 갑공이라는 황로 학설에 정통한 사람이 ‘국가를 다스리는 이치로 최고는 (맑고 고요한 것) 청정이며 그리되면 백성은 스스로 안정된다’라는 설을 풀고 설명하자 조참이 그 황로 학설을 받아들여 시행한 이후 9년이 지나자 제나라는 안정되고 편안해졌고 제 나라 사람들은 조참을 현명한 승상이라 여겼다.
황로 사상 : 중국 고대(삼황오제) 시대 사상과 노자사상의 융합 (황제의 애민+노자의 무위)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과 저절로 그리되게 하는 무위)

-. 승진하여 제후국 제나라 승상에서 황제국 한나라 상국이 되는 조참의 능력 발휘
효혜제 2년 (BC193) 상국 소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조참이 자기 사인에게 “짐 챙겨 내가 한나라 황국의 상국이 될 것이니까?”라며 김칫국을 들이켠다.
얼마 안 돼 황제의 사자가 조참을 찾아와 상국 임명장 즉 김칫국물을 전하니 조참이 주욱 받아 마시고 난 후 자기가 떠나고 나면 제나라에서 조참을 이어 후임자가 될 승상에게 부탁의 말을 전한다. “제나라 감옥과 시장은 간사한 사람들이 모아는 곳이니, 그러한 곳에 대해서는 삼가고 소란스럽게 다뤄서는 안 될 겁니다.”
이 말은 듣고 후임자가 묻기를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려면 간사한 자들이 있는 이런 곳을 신경 써야 하지 않나요?”라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자 조참이 풀어 말하기를 “당신의 생각은 틀렸소. 감옥과 시장은 선 그리고 악 이 둘이 모두 용납되고 공존하는 곳인데 만약 당신이 잘해보겠다고 그곳 시장과 감옥에 인위적 개입을 하거나 조치를 취하면 그 간악한 사람들이 어느 곳에서 용납될 수 있겠소? 나는 이 때문에 이 일을 우선해서 말한 것이오.”
이 말 뜻은 황로 사상에 근거한 조언이었다. 세상 사람은 좋고 선한 사람만 존재할 수 없는 일. 악한 자에게 법을 강하게 하고 단죄하고 벌한다고 해서 죄짓는 사람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없애고 없애도 또 일어나고 막으면 피하고 억지로 가두면 튕겨나간다. 그러니 그들이 머무는 곳에 그냥 두면 시장과 감옥 외의 지역에서는 태평하지 않겠는가? 굳이 악을 흩쳐 여기저기 악으로 오염시킬 필요 없다는 말. 예 전두환 5공 때 사회정화한다고 삼천 교육대 만들어 잡아넣었다고 나쁜 사람 사회 악같은 존재가 없어졌는가? 오히려 선량한 피해자만 늘고 악인은 사라지지 않았다.
조참이 벼슬하지 않았을 때는 소하와는 좋은 관계였으나 조참이 무관 장군이 되고 소하가 승상이 되자 서로 사이가 나빠졌다. 하지만 소하는 죽기 직전 그 뒤를 이을 상국을 묻는 혜제에게 조참을 추천했다. 상국이 된 조참은 이후 바꾸거나 고치는 일 없이 소하가 만들어 놓은 법과 제도를 그대로 따랐다. (보통 새로 임명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싹 다 바꾸는데)
조참은 관리자를 뽑을 때 의욕과 정열에 충만 한 자들은 모두 배척하고 말이 질박하고 중후한 사람만 등용시켰다. (의욕이 넘치면 욕심도 많을 수 있고 독점하려는 인간의 이기심이 발동하는 인간 본성적 욕구 심리를 파악한 것 같다)
조참이 정사는 뒷전으로 두고 밤낮 술로 지냈으며 일을 하지 않자 그의 게으름을 지적하고자 빈객들이 찾아 왔는데 조참은 오히려 그들에게 술을 권하고 술 취하게 만들어 그들이 조참에게 뭔 말을 못 하게 했다.
하루는 조참의 시종이 조참 집 뒤쪽 편으로 관리들이 많이 사는데 늘 그들 끼리 모여 술 마시며 떠들자 시종은 조참을 뒤뜰에 머물게 해서 그 술 취해 떠드는 소리를 조참이 듣게 되면 조참이 그들에게 좀 조용히 하라며 호통칠 줄 알고 그리했는데 참새가 방앗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처럼 조참이 오히려 그들과 어울려 더 술을 권하고 함께 더 떠들었다. 혹 떼려다 혹 붙인 격.
황제 혜제에게는 조참의 아들 조줄이 중대부(황제 곁의 의논 담당관)였는데 혜제가 조줄에게 말하길 “당신 부친이 조참 상국께서 어찌하여 짐을 하찮게 여기는지 모르겠다. 집에 가거들랑 당신 아버님께 남모르게 넌지시 이렇게 좀 말해라 ‘고제께서 돌아가신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현재 황제도 어린데 상국인 아버님께서 이리 허구 헛날 술만 드시고 일을 하지 않으시니 천하 대사를 어찌하시려 하시옵니까?’라고 그리고 이 말을 내가 시켰다고 하지 말고 네 의견인 것이냥 말씀 좀 드려라” 했다.
조줄이 휴가를 내서 아버지 조참의 집에 와서 기회를 봐 이 말을 했더니 오히려 아버지 조참이 아들 조줄에게 “이 놈아 넌 황궁에 들어가 황제 모시는 일이나 얼른 하지 천하 일을 네가 뭘 안다고 이러쿵저러쿵하려 하느냐?”라며 매를 들어 다 큰 자식을 이백 대를 때렸다. 이 상황을 전해 들은 혜제가 조회를 할 때 조참을 보고 나무라며 “지난번 당신 아들 일은 내가 사실시켜서 한 것이오”라고 말하자 조참이 알아듣고 혜 제인 황제에게 사죄하며 말하길 “혜제 폐하와 고제이신 유방과 비교했을 때 어느 분이 성스럽고 영민하신지요?”라고 물으니 혜제는 “내가 어찌 아버님 선제를 처다 볼 수나 있겠습니까?”라고 답한다. 조참이 이번에는 “그러면 저와 소하 중 누가 더 능력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되묻는다. 혜제는 “그야 당연히 당신 조참이 소하만 못한 것 같소!”라며 솔직히 말해준다. 이 소리를 듣고 조참이 더해 말하기를 “폐하 말씀이 천부당만부당 옳은 말씀이십니다. 고제와 소하께서 천하를 평정하고 법령도 잘 정비하여 천하가 잘 다스려지고 있어 폐하께서도 할 일이 없으시고 저희 신하도 직책만 잘 지키면서 옛 것을 따르기만 하고 바꾸지 않으려고 하니 이 것 또한 좋은 것 아닌가요?” 하고 한 수 더 떠 말을 하니 이 소리를 듣고 혜제가 “ 아이고 됐소. 이제는 더 이상 말하지 마쇼!”하며 할 말을 잃었다.
이후 상국이 된 지 삼 년 만에 조참도 죽고 그 아들 조줄은 여태후가 집권했을 때는 어사대부까지 오르고 효문제가 등극했을 때는 관직을 그만두고 후로서만 지내다 죽었다. 조삼의 후손들은 황제의 공주들과 혼인하며 누리다 무제 때 태자 일에 연루되어 죽고 봉국도 모두 잃었다.

태사공 평
조참이 전쟁터에서 공이 많은 근거는 한신과 같다. 한신이 모반하여 죽고 나서 열후 중의 가장 큰 전공자는 조참뿐이다. 상국이 된 조참은 오로지 청정을 온 힘으로 강조하며 도가의 원칙을 따랐다. 하지만 천하 사람들이 조참의 미덕을 찬미하고 좋게 평하는 이유는 그가 잘 통치했다기보다는 그동안 백성들이 진나라의 잔혹함에서 벗어난 대다가 조참이 백성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도록 쉬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신의 세력이 비대해질 것을 두려워해 한신을 역모했다 하여 처리한 결과 조참이 한신을 대신해 어부지리로 소하 다음 공신이 되었고 소하가 나라 운영 기틀을 잘 마련한 덕에 조참은 아무 일도 않고도 좋은 평가를 받고 후세까지 번영했으니 운이 무척 좋은 사람이었다 라고 생각된다.
사실 무장으로서 전쟁터에서 수 없는 생과사의 문턱을 넘나 들고 수많은 사람의 죽음도 목격했을 텐데 한나라가 통합하고 난 후 전쟁은 끝나고 무장이었던 조참이 백성을 위한 정책을 세우고 문관으로서 소임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만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조참은 무장으로서는 한신을 대신한 영광을 누렸고 문관으로서는 소하의 후광을 얻어 이름을 올렸으니 이인자였지만 그래도 일인자의 영광은 모두 누린 무척 운 좋은 한나라 제2의 공신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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