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제 2의 도시 테살로니키 여행 - 에게해 크루즈 기항지 투어

Описание к видео 그리스 제 2의 도시 테살로니키 여행 - 에게해 크루즈 기항지 투어

00:00 ~ 01:28 기항지 테살로니카 입항
01:28 ~ 04:30 로마.비잔틴 성벽
04:30 ~ 09:24 갈레리우스 개선문과 로툰다
09:24 ~ 11:38 아이아 소피아 교회
11:38 ~ 13:36 화이트타워

#테살로니키
#데살로니가 에 도착하니 성경 말씀(살전 5장 16-18절: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 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이 생각납니다.
이런 곳을 방문하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테살로니키는 알렉산드로스가 사망한 뒤 마케도니아
본토의 통치자가 된 카산드로스가 그의 아내인
테살로니키(알렉산드로스의 이복누이)의 이름을 따서
기원전 315년 건립한 도시다.
그는 이 도시 주위에 성벽을 쌓아 도시를 요새화하였다.
그 후 천연의 양항 조건과 강력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데살로니가는 급속하게 동부 지중해 해운과 상업의
중심지로서 성장하였다.

로마제국 시대인 기원전 2세기에 벌써 이 도시의 위상은
에게해 최고도시의 하나로 발돋음하여 기원전 42년에
행정과 경제를 자치할 수 있는 자치도시가 되었습니다,

로마제국의 확장은 큰 도시마다 자치회당사회가 생겨나게
되며 당시 디아스포라 회당사회에서 최고신은 야훼였다.
테살로니키에도 잘 짜인 이스라엘계 회당이 존재했다.
구성원은 가나안인 뿐만 아니라 시나이,페니키아,시리아,
모압, 암몬 및 길르앗 족속들이 섞여 있었다고 전한다.

사도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중인 49년경에 테살로니키를
방문하였습니다.
바울 일행은 테살로니키의 회당사회로 들어가서 3주간
활동했다. 이 시기 바을과 함께한 동료는 실리와 디모데
입니다.(행 17: 1~14 참조 요약)
(또 다른 학자는 살전 2:9, 와 빌 4:16을 들어 3주이상 활동
했덨다고도 전합니다.)

바울은 제2차 전도여행에 이어 제3차 전도여행에서도
테살로니키(데살로니가)를 두세 번 방문한 것으로 봅니다,
(빌립보에서 고린도를 가거나, 고린도에서 빌립보로 오는
여정에 데살로니가는 반드시 통과하게 됩니다)


오늘날 데살로니가(테살로니키)는 2021년 기준 인구 100 만
명으로, 그리스에서 수도 아테네에 이어 두 번째 큰
도시이다. 데살로니가를 여행하는 방문객은 도시 뒤로 펼쳐진
산 능선과 산을 오르는 길에 세워진 두껍고 높은 성벽을
보며 감탄하게 되는데, 이 성벽은 비잔틴 제국시대 4세기 말과
5세기 초에 걸쳐 세워진 것입니다. 15세기부터는 1차대전까지
튀르크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 #비잔틴시대_성벽 (Byzantine walls)
4세기 후반, 테오도시우스 황제(379~475)가 건축한 성채로
방어를 위해 높은 위치에 자리 잡았고 14세기에는 오토만이
지배를 하면서 더 굳건히 보강을 했다. 지금은 테살로니키와
그 앞바다 전체를 조망하는 탁트인 전망대가 되었습니다.
성벽 한쪽에 대포를 발사하고 무기고가 있는 탑이 있으며
트리고나우 탑 (Trigoniou Tower)으로 부릅니다.

● #갈레리우스_개선문 (Arch of Galerius)
갈레리우스 황제(242~311)가 297년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이를 기념하여 303년에 건립하였습니다,
벽돌 조적후 외부는 돌로 마감하였습니다. 전투장면 일부를
부조로 조각해놓았습니다.

● #로툰다 (Rotunda)
갈레리우스 황제의 영묘로 추정되며 306년에 건립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황제가 다른 곳에서 사망하여 이곳에 묻히지
않았습니다.
이후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교회라 명했고, 16세기 말에는
튀르크 지배하의 모스크로 사용되었으며 바로 옆에 있는 뾰족
탑이 바로 모스크의 일부 입니다. 1912년에는 다시 교회가
되었으나 뾰족탑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내부에는 훼손된 프레스코화가 부분적으로 보여집니다.

● #화이트_타워 (White Tower)
돌을 깍아 만든 벽돌을 사용하여 쌓은 탑으로 튀르크인(오스만)
들이 15세기에 기존의 비잔틴 탑 대신 높이 35m의 망대로 건립
하였습니다.
16세기에는 감옥으로 사용되면서 죄수들이 죽아가며 흘린
피로 일명 ‘피의 탑’으로 불립니다.
19세기에 붉은 피로 손상된 명예를 되찾기 위해 튀르크가
순백의 회로 외부를 바르기도 해서 다시 ‘화이트 타워’로 불립
니다. 내부는 박물관으로 운영합니다.

● #아이아_소피아_교회 (Agia Sofia Church)
8세기에 재건된 교회로 1585년 ~ 1912 년까지 이슬람
모스크로 사용었으며 비잔틴 양식과 바실리카 양식이 혼재된
모습입니다. 성당 건물의 머리인 주두는 아칸서스 잎모양으로
다른 건물에서 가져와 올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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