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역사추적 – 17세 가야 소녀는 왜 순장당했나 / KBS 2009.4.27.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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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창녕 송현동 15호분의 발굴현장. 3~5세기 가야 최고 수장급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고분 안에서 네 구의 순장 인골이 발견됐다. 그중 가장 온전한 인골은 17세 소녀로 추정됐다. 죽은 이를 위해 산 사람을 함께 묻는 잔혹한 고대의 장례풍습 순장. 1,500년 전 가야 소녀의 순장 인골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 순장의 증거들
학계에서는 순장을 한 봉분 안에 동시에 묻혔으며 추가매장의 흔적이 없어야 하고 순장자는 강제로 묻히며 주피장자와 확연한 종속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송현동 15호분 발굴팀은 순장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고분의 외부부터 내부구조까지 스캐닝을 통해 정밀 분석에 들어갔다.
송현동 15호분의 봉토는 1,500년 전 조성 당시 그대로로 추가매장이라면 발생했을 교란이 없었다. 그리고 인골과 유물의 배치도 추가로 들어온 흔적이 없었다. 순장 무덤이 확실했다.

- 순장된 네 구의 인골 중 한 명은 17세 가야소녀
창녕 송현동 15호분 인골 수습 결과, 순장자는 네 명이었다.
세 구의 인골은 도굴꾼들로 인해 훼손되어 2~30대라는 연령과 성별만이 드러났지만, 북벽에 위치한 온전한 한 구는 좀 더 구체적으로 정보를 내놓았다. 인골의 넓적다리 뼈를 통해 대략의 키를 추정한 결과 150~160㎝정도의 키를 가졌다. 치아는 다 발달이 되지 못했고, 성장판조차 닫히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 온전한 인골을 10대 가야 소녀라고 결론지었다.

- 왕과 함께 묻힐 수 있는 자, 누구였을까?
송현동 15호분의 순장자들은 기존의 가설처럼 전쟁 포로나 미천한 계급의 노비가 아닌 죽은 이의 가장 측근의 인물들로 ‘리스트’로 선별되어 존재했을 가능성이 크다. 순장 유골과 부장돼 있는 철제관식이나 마구류, 무기류, 금제장신구들은 순장자가 관리, 마부, 호위무사, 시종 등의 주변인들이었음을 알려준다. 즉, 순장된 사람들은 중간계급 이상의 신분이 낮지 않았던 가야인들이었던 것이다. 좀 더 정확한 단서를 얻기 위해 순장자들의 인골에 축적되어 있는 음식의 기록을 통해 생전 식생활 분석, 식생활 수준을 알아보았다.

- 순장자는 왜, 어떻게 죽음을 맞았을까?
인골 수습 당시, 발굴팀은 인골의 형태와 누운 자세를 주의깊게 살폈다. 인골들은 매장 당시 그대로의 흐트러짐 없는 자세와 간격이었다. 이들은 생매장이 아니라 죽은 후에 묻힌 것이다.
그렇다면 왜 죽은 이를 위해 주변의 이들을 죽여 함께 묻은 것일까? 현세의 삶은 죽어서 저승에서도 지속된다는 것은 가야인의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래서 실생활에 필요한 유품들과 측근 사람들까지 죄다 무덤 속으로 안고 들어갔던 것이다.
고대국가에서 보편적으로 이루어졌던 순장의 풍습은 가야권을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역사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순장의 폐지는 국가나 지배집단의 권력의 강도가 약해짐을 의미하기보다는 오히려 한 단계 더 성숙한 국가로 성장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역사추적 21회– 17세 가야 소녀는 왜 순장당했나 (2009.4.27.방송)
http://histor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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