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 1주일 가해 / 2026년 2월 22일 / 김유정 유스티노 신부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 만을 섬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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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 2,7-9; 3,1-7; 로마 5,12-19; 마태 4,1-11
찬미 예수님
명절 잘 쇠셨어요? 지난 화요일이 설이었는데요, 다음 날인 재의 수요일부터 사순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순시기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부활을 준비하는 회개와 정화의 시기입니다.
사순의 ‘순’자는 열흘을 뜻하는 말로서, 40일과 그 사이 여섯 번의 주일이 합쳐져서 사순시기가 되는데요, 왜 하필 40일일까요? 성경에 40이라는 숫자는 정화의 상징으로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요, 직접적으로는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하시며 기도하신 데서 유래합니다.
예수님은 40일간 단식하셨지만, 우리는 사순시기의 처음과 끝, 즉 재의 수요일과 성금요일에 한 끼를 단식합니다. 단식재의 의무는 열여덟 살부터 60세까지의 교우에게만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는 단식하는 게 힘들었는데요, 이번에는 그리 힘들지 않았습니다. 저녁 6시부터 다음 날 아침 10시까지 열여엿 시간 동안 단식하는 ‘간헐적 단식’을 석 달째 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이와 더불어 채소-단백질-탄수화물 순서로 식사하는 이른바 ‘거꾸로 식사법’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러고선 TV를 잘 보지 않게 되었는데요, TV 프로그램 절반이 뭐 먹는 장면이더라고요? 나머지 절반은 먹는 거 만드는 장면이던데요? 그런 것들 보면 먹고 싶잖아요? 그래서 TV를 안 보고 배고프면 성경을 읽었더니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예수님 말씀이 더 잘 이해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단식을 하시고 시장하실 때 악마가 와서 세 가지 유혹을 합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악마는 이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이간질하기 위해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이라는 조건을 답니다.
이 유혹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까지 반복될 텐데요, 십자가 위에 계신 예수님께 군중들은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마태 27,40)라고 외칠 것입니다. 또한 수난을 예고하실 때 수제자인 베드로가 펄쩍 뛰며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혹자가 제자 안에 들어 와 있음을 알아채시고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 16,23)라고 호통치시며 또 다시 유혹을 물리치실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 복음에서 악마가 한 유혹은 모양을 바꾸어 계속 예수님을 찾아올 것이고, 우리에게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 가지 유혹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를 탈출한 뒤 40년의 광야 생활을 통해 정화의 과정을 거치지만, 갖가지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굴복하여 넘어집니다. 악마가 한 세 가지 유혹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겪었던 유혹을 압축한 것입니다.
우선 그들은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다고 투덜댔고, 하느님께서 주신 만나도 지겹다고 불평했습니다. ‘돌더러 빵이 되게 해 보라’는 유혹은 마귀가 같은 유혹을 예수님께도 던진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광야에서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가, 계시지 않는가?”(탈출 17,7)라고 말하며 하느님을 시험했습니다. ‘밑으로 몸을 던져 보라’는 유혹은 이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또 십계명을 받으러 시나이산으로 올라간 모세를 기다리지 못하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절했습니다. 예수님더러 ‘나에게 절하라’고 유혹한 악마는 이 일을 반복하게 하려 한 것입니다.
신명기에서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 생활 40년을 정리하면서 앞으로 살아가야 할 지침을 줍니다. 예수님께서 유혹을 물리치면서 하신 세 가지 말씀은 모두 신명기 6장에서 8장 사이에 나오는 말씀으로서,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40년간 겪은 유혹을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겪으셨을 뿐 아니라, 그 유혹을 하느님 말씀으로 물리치셨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새로운 하느님 백성을 이끌고 새로운 출애굽, 새로운 파스카를 시작하실 것이고 하느님께 대한 완전한 헌신으로 그 일을 완수하실 것입니다. (R.T. France, 128)
이는 제1독서에서 인류의 조상들이 유혹에 굴복하여 하느님을 거역한 것과 대비됩니다. 하와가 유혹의 소리에 귀 기울이자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니 참 좋으셨는데” 이제 그 하느님의 특권을 자신들이 빼앗고 있습니다.
복음의 주제가 하느님께 대한 순종이라면, 제1독서의 주제는 하느님께 대한 거역입니다. 이 둘을 연결하는 것이 제2독서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인류의 조상이 죄를 지었고 우리도 그 죄를 반복하며 하느님 말씀을 거역하였지만, 하느님께 순종하신 그리스도의 희생이 그보다 훨씬 더 크기에 우리가 의롭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아들, 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들딸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소명을 훼방하는 유혹들이 여전히 우리 주위에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세속적 가치관과 물질주의입니다.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이웃을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과 질투의 대상으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때론 내가 베푼 선행과 도움을 아까워하기도 하고, 남들보다 더 갖지 못하면 불안해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유혹을 거슬러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되뇌야 합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두 번째로는 하느님을 믿지 못하고 시험하려는 유혹입니다. 때로는 ‘내가 왜 이러한 시련을 겪어야 하나?’ ‘하느님께서 나의 고난을 알고 계신가?’ ‘계시기는 한 건가?’ 하고 의문을 가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생각에 빠져 있지 말고 ‘아, 지금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하고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음을 의식해야 합니다. 불안한 마음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면, 그 감정에 빠져 있지 말고, ‘아, 내가 불안한 감정을 느끼고 있구나’라고 의식하면서 즉시 ‘주님, 제게 이러한 마음이 듭니다.’라고 기도를 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미국의 뇌과학자 질 볼트 테일러라는 분은 37살 때 겪은 뇌졸중의 경험을 바탕으로 뇌 기능을 심층적으로 연구했습니다. 테일러는 어떤 감정이 일어나서 화학적으로 분해되어 사라지는 데 걸리는 시간을 연구했는데요, 그 시간이 얼마일까요? 90초라고 합니다.
가령 화가 났는데 90초가 지나도 여전히 화가 나 있다면, 그것은 생물학적 현상이 아니라 ‘심리적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일을 머릿속으로 계속 되뇌거나,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지?’라는 생각을 덧붙이면 뇌는 새로운 자극으로 인식해 화학물질을 다시 분출한다는 것입니다.
테일러는 다음과 같이 조언합니다. 화가 났을 때 시계를 보며 90초 동안 그 감정이 내 몸을 파도처럼 훑고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라는 것입니다. 가령 ‘심장이 빨리 뛰네’하고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90초가 지나면 이 감정을 지속할지 다른 생각으로 전환할지 스스로 결정하라고 합니다.
우리의 모든 상황과 감정이 이처럼 단순화되기는 어려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주인은 분노나 불안, 죄책감이나 후회 같은 감정이 아니라 하느님이십니다. 이러한 감정이 나를 지배하려 든다면,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라는 말씀을 되뇌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셋째로는 하느님 외의 다른 것을 섬기게 하려는 우상숭배의 유혹입니다. 가장 교묘하고도 강력한 우상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자신의 업적을 부풀리고 과장하며, 하느님의 영광보다 내가 드러나는 것을 우선시하는 태도가 바로 오늘날의 우상숭배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하느님처럼 되려 한 것도 바로 이 유혹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유혹을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는 말씀으로 물리쳐야겠습니다.
사순시기를 시작한 우리를, 유혹이 아니라 주님 말씀께서 차지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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