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백마강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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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이야기

'백마강', '페르샤 왕자', '마음의 부산항구' 등의 노래를 부르신 허민 선생님의 일생에 대해서는 크게 알려진 것이 없었습니다. 출생이나 본명조차 제대로 알 수가 없던 것이지요. 1950년대를 풍미한 가수였음에도 불구하고 격동의 시기를 거치면서 자료를 보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중음악연구가 김종욱 씨에 의해 2010년 밝혀진 정보에 의하면 허민 선생님의 외동딸인 허경자 씨가 부산에 거주하고 있고 그동안 본명이 '허민락' 또는 '허민학'이라고 알려졌던 것과는 달리 '허한태'라는 것, 또 1929년에 출생해서 1974년 소천하셨다고 합니다.

1950년대 초 '남조선 콩쿨대회'에서 2위로 입상하며 가수로서의 활동을 시작한 허민 선생님은 휴전 직후인 1954년 '백마강'과 '페르샤 왕자'를 수록한 앨범을 발표하게 됩니다. 한복남 선생님이 피난 중 부산 아미동에서 설립했던 도미도레코드사는 경영 악화로 인해 고심하던 중 돌파구를 찾기 위해 작사가 손로원 선생님에게 러브콜을 보내게 되고 '백마강'을 기획하게 됩니다. 그 시절에도 이미 백마강을 소재로 한 노래들이 여럿 있었기에 이 노래가 성공할지는 미지수였지만 허민 선생님의 노래로 발표된 '백마강'은 그야말로 대성공이었습니다. 도미도레코드는 '백마강'으로 경영난을 탈출해 회생하게 되고, 허민 선생님은 스타 가수로 발돋움하게 되지요.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고란사의 종소리가 들리어 오면
구곡간장 찢어지는 백제꿈이 그립구나
아 달빛 어린 낙화암의 그늘속에서
불러보자 삼천궁녀를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철갑옷에 맺은 이별 목 맺혀 울면
계백장군 삼척검은 님 사랑도 끊었구나
아 오천결사 피를 흘린 황산벌에서
불러보자 삼천궁녀를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칠백년의 한이 맺힌 물새가 날며
일편단심 목숨 끊은 남치마가 애닯구나
아 낙화삼천 몸을 던진 백마강에서
불러보자 삼천궁녀를"

충남 부여 부근을 흐르는 금강 하류의 약 16km 구간을 '백마강'이라고 부르는데 소정방이 백마의 머리로 용을 낚았다는 전설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말을 큰 존재로 여겼던 백제의 정서로 따져볼 때 '백제에서 제일 큰 강'이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백마강은 일본, 신라, 당나라 등과 교역하던 무역의 중심지였고, 660년에는 신라와 당이 연합하여 백제가 패망하고 삼천궁녀가 슬픔을 이기지 못해 백마강 물 속으로 몸을 던졌다는 이야기는 자세히 서술하지 않아도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거라 생각됩니다.

계백 장군은 최후의 전투에서 결사대를 조직하고 나당 연합군에 대항해보지만 당의 소정방이 이끄는 13만의 군사를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지요. 결국 계백과 그의 군대는 드넓은 황산벌에서 마지막 한 명까지 용맹하게 싸우다 전사했다고 합니다. 이후 의자왕은 웅진으로 피신했다가 결국 당나라에 포로로 끌려가 죽음을 맞았다고 전해집니다.

백제의 멸망과 3천 궁녀의 절개를 소재로 한 '백마강'은 '꿈꾸는 백마강' 등의 비슷한 내용의 노래가 많지만 부여의 구드래공원에 가면 백마강의 노래비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좋은 계절에 노래 가사를 한구절 한구절 곱씹어가며 백제의 유적지를 여행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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