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역사스페셜 – 식민지 조선 황금광(狂)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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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 조선, 황금을 쫓는 사람들.
1930년대 금광개발 열풍에 힘입어 금 생산량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1932년까지 10톤을 넘지 않던 금 생산량이 1939년에는 31톤으로 조선은 세계 여섯 번째 금 생산국이 됐다. 채굴기술이나 장비도 변변치 않았던 시절에 황금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금광으로 모여들었다.

- 골드러시, 왜 1930년대인가?
1929년 대공황 뒤 국제시장에는 환율제와 금본위제가 공존한다. 불안한 환율을 버리고 금본위제를 선택한 일본은 황금확보에 혈안이 되고 전쟁 준비를 위해 황금수요는 더더욱 높아진다. 금광 탐사와 개발에 지원금을 쏟아 붓고 시중의 금을 비싸게 매입하기 시작한 일본에게 조선은 언제나 준비돼있는 황금인출기였다. 또한 1931년 한반도는 유례없는 풍년으로 시장에 쌀이 넘쳐 가격이 폭락한다.
생활이 어려워진 농민들은 농토를 갈아엎고 산을 헤맨다.
금을 찾아 나선 것이다. 이북 지역의 운산, 대유동, 삼성, 교동, 남한의 직산, 구봉 등 대형 광산에서는 제련소와 항구 같은 연관 분야도 함께 발달하며 유랑 농민을 흡수했다.

- 맨주먹의 황금신화, 최창학
30세가 넘도록 변변한 직업도 없이 떠돌던 최창학은 백여 명의 금전꾼들과 함께 고향 근처 조악동 폐금광에서 금을 찾기 시작했다. 4년 동안의 기나긴 기다림, 최창학은 결국 금맥을 찾았고 그 이윤으로 금광을 사재기했다.
1930년대 말 최창학이 매각한 금광으로 일군 재산은 1천 만원. 이로써 최창학은 단번에 전국적인 유명인사가 되었다. 민초들에게 황금의 힘을 보여준 최초의 영웅이자 살아있는 신화가 된 것이다. 그 밖에도 동네 훈장 출신의 방응모가 황금으로 인생역전했고 오늘날의 조선일보를 일으킨다.

- 조선판 투기, 묻지 마 투자
황금광 시대의 하이라이트는 광업권 투기였다. 황금에 눈을 뜬 사람들은 광업개발권 취득에 열을 올리고 금값이 오름에 따라 광업권 역시 큰 폭으로 올랐다.
일본의 세계적인 재벌그룹이자 자본이 넉넉한 미쓰비시, 닛산, 미쓰이 그룹은 가격이 폭등한 광산들을 사들였다.
또한 1934년 한 해만 해도 어림잡아 10톤 가량의 금이 일본으로 반출됐다.

- 물거품처럼 사라진 황금열풍
1930년대 조선반도를 들썩이게 했던 황금열풍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멀지 않은 과거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진 조선의 황금광 시대. 그것은 철저히 약탈의 논리로 이루어진 식민통치 속에 공동의 꿈을 잃어버린 조선인의 안타까운 자화상은 아니었을까.

신역사스페셜 56회 – 식민지 조선의 황금광 시대 (2011.1.20.방송)
http://histor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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