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사랑의 종말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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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이야기

노래실력이 집안내력인 경우를 우리는 종종 만나게 되는데요.
차중락 선배님의 형제들 역시 뛰어난 예체능을 골고루 물려받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아버지가 보성전문학교 마라톤선수, 어머니는 경성여상의 단거리 선수였고, 이런 재능을 이어받아서 형제 중에서 넷째였던 차중광씨는 성균관대 야구부 투수 출신으로 록밴드 '다크헤어즈'의 리드 보컬로 인기를 모았고요. 다섯째 차중용씨는 양정고 마라톤 선수 출신으로 역시 록밴드 '가이스&돌스'에서 노래하는 가수가 되었습니다. 형제 중 셋째였던 차중락 선배님 역시 다재다능해서 경복고 시절에는 육상선수로 활약했고, 대학 시절엔 보디빌더로 당시 미스터 코리아 2위까지 올랐는데요. 영화감독을 꿈꾸던 한양대 연극영화과 시절에는 포스터도 직접 그릴 만큼 그림실력도 뛰어났다고 합니다. 다른 형제들처럼 음악적인 재능도 특출나서, 주위에선 가수가 되어보라고 추천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러자 차중락 선배님은 일본에서 노래로 돈을 벌어서 그 돈으로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대학을 중퇴하고 일본에 밀항을 하려다 발각되면서 그 꿈이 꺾여버렸는데요. 이때, 먼저 가수로 데뷔해서 '키보이스'를 준비하고 있던 사촌형 차도균 선배님의 권유로 차중락 선배님도 '키보이스'에 합류하게 됩니다. 1963년부터 활동한 '키보이스' 1기는 베이스에 김홍탁 선배님, 드럼에 윤항기 선배님, 키보드에 옥성빈 선배님, 그리고 베이스 기타에 차도균 선배님이 멤버였고, 차중락 선배님은 보컬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키보이스' 활동과 동시에 차중락 선배님은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면서 인기를 모았는데요. 멋진 목소리와 잘생긴 외모, 거기다 미스터 코리아 2위로 선정되었던 건장한 체격과 감미로운 바이브레이션 창법으로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런 차중락 선배님의 인기는 솔로활동을 시작하면서 더욱더 만개했지요.

'키보이스'에서 나와서 솔로활동을 시작한 차중락 선배님은 이화여대 메이퀸 출신의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에 빠졌지만 1966년 스물 네살의 가을, 그 여인이 미국으로 떠나버리면서 아픈 실연을 겪게 되는데요. 공교롭게도 바로 그 해인 1966년, 엘비스 프레슬리의 'Anything that's part of you'를 번안해서 편곡한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을 발표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실연의 아픔을 겪었기에 더 감미롭고 애잔하게 노래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이 노래를 계기로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로 불리게 되었지요. 그리고 이런 차중락 선배님의 인기를 최정상으로 만들어준 또 다른 히트곡이 바로 동양방송(TBC) 라디오 연속극 주제가 '사랑의 종말'입니다.


'사랑의 종말'은 이미자 선배님의 '섬마을 선생님' 가사를 썼던 '이경재' 선생님이 극적인 노랫말을 썼고요. 천재 작곡가로 손꼽히는 '이봉조' 선생님이 아름답고 애절한 탱고리듬으로 곡을 완성하고, 차중락 선배님의 멋진 목소리가 화룡점정이 되어준 명곡입니다. 이 노래의 어마어마한 히트로 1967년, 차중락 선배님은 그해 TBC 동양방송의 방송가요대상 시상식에서 남자 최고 신인가수상을 수상합니다.


"외로워 외로워서 못살겠어요
하늘과 땅 사이에 나 혼자
사랑을 잊지 못해 애타는 마음
대답 없는 메아리 허공에 지네
꽃잎에 맺힌 사연 이루지 못해
그리움에 타는 마음 달랠 길 없어
이렇게 가슴이 아플 줄 몰랐어요
외로워 외로워서 못살겠어요

외로워 외로워서 못살겠어요
하늘과 땅 사이에 나 혼자
사랑을 잊지 못해 애타는 마음
대답 없는 메아리 허공에 지네
꽃잎에 맺힌 사연 이루지 못해
그리움에 타는 마음 달랠 길 없어
이렇게 가슴이 아플 줄 몰랐어요
외로워 외로워서 못살겠어요"


1967년에 발표된 노래지만, '사랑의 종말'은 가사나 멜로디가 지금 들어도 너무 세련되고 현대적인 감각을 갖고 있는데요. 외로움을 솔직하게 직설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예술적인 품격이 느껴지는 이 노래를, 감미롭고 애잔한 차중락 선배님의 목소리는 지극히 아름다운 슬픔으로 승화시켜줍니다.

'사랑의 종말'이 크게 히트하자, 1960년대의 유행이 그렇듯 노래의 인기에 힘입어 1969년에는 영화도 만들어졌는데요. '내일은 죽을지라도'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이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이 영화의 주제가로 쓰였던 '사랑의 종말'은 또 다시 인기를 모으며 모두가 사랑하는 명곡으로 오랫동안 기억되었고요. 이 곡은 명실상부 차중락 선배님의 대표적인 히트곡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인기로 인해서 수많은 스케줄을 소화하는 동안 차중락 선배님은 자신의 건강을 돌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1968년, 서울 동일극장 무대에서 노래하던 도중 뇌막염으로 쓰러지면서 너무나 안타깝게도 스물여섯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하늘의 별이 되어버렸습니다.

1963년 '키보이스'로 활동을 시작해서 1968년까지, 너무 짧은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 가요계에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전설이 되어버린 '차중락 선배님'인데요. 차중락 선배님의 노래를 듣고 부를 때마다 좀더 오래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얼마나 더 아름답고 멋진 노래들을 많이 불러주셨을까 그 감미로운 목소리가 몹시도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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