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인물현대사 – 장준하 2부, 거사와 죽음의 진실 / KBS 20040116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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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8월17일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58세의 나이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장준하! 2003년 대통령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장준하 죽음의 진실을 밝히려는 시도를 다시 전개했다. 2003년 말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방문조사를 벌였었고, 옛 중앙정보부 시절 장준하 관련 자료의 추가공개를 국가정보원에 요구하기도 했다.
1950년대 잡지 ‘사상계’를 통한 실천적 지식인 운동에 이어, 1960-70년대 박정희정권에 맞서서 반독재 투쟁의 선봉에 섰다가 1975년 8월 의문의 죽음을 당한 장준하. 그가 죽음을 전후로 모종의 거사를 준비했었으며, 그것이 그의 죽음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증언도 나왔다.
장준하 죽음의 진실은 무엇이고, 그가 계획했었다는 ‘거사’란 과연 어떤 것이었는지를 밝혀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중앙정보부의 장준하에 대한 관찰기록인 위해분자관찰보고계획서를 최초로 공개한다.

■ 그 어느 무더운 여름날의 죽음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군 약사봉 계곡, 장준하는 산행 도중 사망했다.
당국은 단순 실족사라고 발표했지만 현장을 목격한 주위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절벽에서 떨어졌다는 시신은 별다른 외상없이 깨끗했고 추락장소는 전문 산악장비 없이는 접근조차 불가능한 지점이었다.

■ 장준하는 살해됐는가?
29년간 의문은 계속됐다. 그러나 최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시 정황에 대해 중요한 증언을 했다. 죽기 18일 전인 7월 29일, 장준하가 자신의 집을 방문해, 유신정권 타도를 위한 거사를 모의했다는 것이다. 그즈음 장준하는 전국을 부지런히 돌며 끊임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그는 당시 유신정권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거의 유일한 현실 정치인이었다. 장준하에게 박정희의 유신정권은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될 민족의 적이었고, 유신정권에게 장준하는 위해분자였다.

■ 최초로 공개되는 ‘위해분자관찰보고계획서’
1975년 3월 31일 장준하는 유신정권에 대항하기 위해 야권 통합을 추진,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이 참여하는 4자회담을 성사시킨다. 그리고 바로 이날 중앙정보부는 장준하를 위해분자로 규정짓고 특별감찰활동계획을 수립한다.
그것이 바로 이번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입수한 위해분자관찰보고계획서다.
유신이 우려한 장준하의 위해행위는 무엇이었는가?

■ 장준하의 힘 1, 박정희의 천적, 정직 청렴 카리스마의 정치인
일본 관동군 소위였던 박정희와 광복군 대위였던 장준하. 장준하는 박정희를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 항일독립투사의 후광에 도덕적으로도 깨끗했고, 사상계를 통해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과 함께 했던 장준하의 힘. 그 힘이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과정을 거치며 박정희와 정면으로 맞부닥치게 된다. 장준하는 1967년 대통령 선거에서 “3천만 국민 모두가 대통령이 될 수 있어도 박정희만은 안 된다“라고 하며 박정희에 대해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는다.

■ 장준하의 힘 2, 다양한 사회 세력을 끌어 모으는 조직력
장준하는 7대 국회에 진출해 국방위원을 역임했다. 군에 대해 높은 관심과 애정을 보인 그에게 많은 현역 장성들이 존경을 표했다. 당시 주월사령관이었던 채명신 장군은 장준하에 대해 ”살았으면 김대중보다 먼저 대통령이 됐을 것이다“라고 애석함을 표했다. 1967년과 75년 두 차례 중요 국면에서 장준하는 야권통합을 강력히 추진했다. 군에서부터 재야까지 모두를 엮어내는 조직력과 높은 도덕성을 가진 그는 유신정권에게 위해분자였다.

■ 거사의 실체는 무엇인가?
1975년에 이르러 장준하는 모종의 결심을 한 것으로 보인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유신정권에게 실질적인 타격을 가하고 민주주의를 회복시킨다’ 이것이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해 당시 그와 시국을 논의했던 거의 모든 인물들이 기억하는 공통된 이야기다. 하지만 거사의 실체는 여전히 모호하다. 전국적인 반유신성명 발표였다는 주장도 있고, 군부궐기, 민중항쟁과 같은 실력대결이었다는 說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모든 가능성을 광복군에서 언론인으로, 현실 정치인으로 장준하가 키워온 실질적인 힘이 뒷받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하나의 반증이 위해분자관찰보고서다.

■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2004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장준하의 죽음을 계속 수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유일한 목격자는 입을 다물고 있고 관련 기관은 근거 문서의 추가공개를 피한다고 보고 있다. 위해분자관찰보고서가 당시 중요한 정황을 증명해 냈듯이 장준하 죽음의 진상을 밝히는 것은 한 사람의 양심선언일수도 있고 한 장의 문서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제 이것을 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정부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도 아니라 우리 모두의 관심과 의지이다.

인물현대사 27회 – 장준하 2부, 거사와 죽음의 진실 (2004.1.16.방송)
http://histor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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