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Описание к видео #로마의

로마의 산 칼리스토 카타콤베, 쿼바디스성당을 소개하는 영상입니다.
영상속에 잔잔한 기타반주는 그레고리천

예전에는 패키지단체 여행일정에 포함되어 있어서 자주 갔던 곳인데... 요즘은 관심이 있는 개인여행이나, 성지순례 단체들만 찾는 곳 이 되었습니다. 사실 이런 종교적 색깔이 찐한 곳 들은 가이드들도 조금 더 조심스럽게 안내와 설명을 해야 하는 곳 이고요!... 사실 전문적으로 가이드일을 하는 사람들은 불문율처럼 여기는 것 중에 깊은 정치적이야기, 깊은 종교적 이야기, 성지 순례단체가 아니라면 이런 성지에서는 조심스러워 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가이드일을 하면서 이것 하나는 배운 것 같습니다! `종교의 역사가 오래된 나라 일수록 다른 종교에게도 배타적이지 않고, `종교의 역사가 짧은 나라 일수록 다른 종교에는 아주 배타적이다.
한주 영상을 만드는 동안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카타콤베를 다시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고, 그리고 더 더 오랬동안 잊고 살았던 우리의 역사 `신사참배`아픈 역사적 사건을 통해 그당시 억압과 탄압과 받던 기독교인들이 로마 황제에게 굴 해야 했던 우리와 같은 시대와 상황 이었겠다 라고 생각하니 타협 해야만 했던 우리의 역사도 마음으로 이해가 되는 시간이 이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는 없다'
카타콤베 영상을 만들면서 한번 더 나 자신을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AD70년의 예루살렘 성전의파괴( 기독교의 주요 터닝 포인트)- 유대교로부터 기독교 독립의시작- 로마제국과 유대인에 의한 기독교 박해(250년간) – AD313년 로마제국의 기독교공인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칙령 으로 기독교 공인- 250년 박해가 끝난후 오히려 신앙의 순수성이 약화되기 시작 –고난의 상징인 기독교가 황제의 후원까지 받는 종교로 변화 –이렇게 신분이 바뀌게된 교회는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중요하게 바뀌게 됩니다
#로마의 기독교박해 주요원인 – 로마의 신과 황제숭배거부
재판을 거쳐 황재숭배를 하면 처벌이 면제,
그 당시 기독교인들이 모두 순교를 당했을까요? 우리의 역사에도 신사참배를 했던 것 처럼 많은 1,기독교인들도 황제숭베를 하게 됩니다
2. 그 당시에는 황제숭배 증명서를 발급 했던 로마 –황제 숭베는 하지는 않았지만 돈을주고 증명서를 구입 한 사람도 있었고
3. 마지막까지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를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카타콤(Catacombs)은 라틴어 단어들 "가운데"(cata)와 "무덤들"(tumbas)이 합성되어 "무덤들 가운데"(among the tombs)라는 의미이다. 무덤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좁은 통로로 이루어진 지하 묘지이다. 기독교인들이 로마 제국의 박해기에는 피신처의 역할을 하기도 했고 순교자의 무덤에서 미사를 드리기도 했다. 카타콤은 거주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주로 지하묘지로 사용되었고, 죽은이를 위한 예식과 기도를 드렸던 곳이다. 카타콤바에는 프레스코화로 그려진 최초의 그리스도교 미술이 남아있으며, 벽면에 십자가와 물고기, 그리고 닻 등 그리스도교 상징이 새겨져 있다. 물고기는 그리스도교 상징으로서, IXOCE (익투스 또는 이크티스) 라는 암호를 사용했는데, 이는 물고기를 뜻하기도 하지만 권능자를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물고기를 그리며 서로 기독교인임을 확인하였다. IXOCE는 Ιησους Χριστος Θεου Υιος Σωτηρ(이에수스 크리스토스 테우 휘오스 소테르, 이이소이스 크리스토스 쎄오이 이이오스 소티르)의 첫 글자를 따와서 생겨난 말인데, 이것은 '하느님의 아들 구원자(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또는 '주님은 저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산 칼리스토의 카타콤베(이탈리아어: Catacombe di San Callisto)는 이탈리아 로마의 아피아 가도에 있는 로마의 카타콤바 가운데 하나로서 2세기에서 4세기까지 재위한 몇몇 교황의 유해가 묻혀 있기 때문에 교황 납골당(이탈리아어: Capella dei Papi)이라고도 부른다.[1][2] 그러나 납골당을 더는 사용하지 않고 남아 있던 유해들도 로마의 여러 성당으로 뿔뿔이 이장되면서 차츰 붕괴되었다. 납골당에서의 마지막 이장 작업은 9세기 교황 세르지오 2세 재위 때 롬바르드족의 침략이 있기 전날 납골당의 유해를 산 실베스트로 인 카피테 성당으로 이장하였다. 이곳은 로마의 카타콤바와는 달리 아우렐리우스 성벽 안에 있었다.
칼리스토 카타콤바는 교황 갈리스토 1세가 아직 부제였던 시절에 교황 제피리노의 지시에 따라 만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갈리스토는 본래 이전부터 있었던 초기 기독교의 히포게움을 확장하여 오늘날의 카타콤바로 만들었다. 갈리스토 1세 본인은 아우렐리우스 가도에 있는 칼레포디우스 카타콤바에 안장되었다. 칼리스토 카타콤바와 납골당은 1854년 선구적인 이탈리아의 고고학자 조반니 바티스타 데 로시에 의해 발굴되어 세상에 공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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