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 이용도 4. 이용도 신앙의 전환점, 기도의 몰입과 부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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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도의 열광적인 신앙의 한계점에 대한 이해 4. 이용도 신앙의 전환점, 기도의 몰입과 부흥사

이용도가 부흥운동가로 활동하기에는 몇가지의 신앙적인 전환점이 있었다. 첫째는 가정적인 면이다. 그의 어머니는 양잿물을 먹고 자살하려던 광경을 여러 차례 목격할 만큼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어려웠다. 그러나 한편으론 자녀들을 위해서는 항상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어머니로부터 감명깊은 영향을 받으며 자랐왔다. 이런 영향인지 13세부터 교회 종각에 올라가 여러시간 혹은 밤샘 기도를 하였을 만큼 종교적인 면에서 남다른 면이 있었다.

둘째는 신비적인 면이다. 그는 중풍에 걸린 백부님이 진유(眞由)를 사오라는 심부름에 가던 밤 중 마귀가 나타나 길을 막자 마음을 침착히 하고 찬송가를 크게 부르자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마귀를 밀어내고 보호하여 길을 갔었던 사건이 최초의 환상(幻像)이었다. 이후 여러 차례의 환상을 보는 등 종교적이고 신비적인 신앙을 형성해 가고 있었다.

셋째는 강동 부흥회이다. 1925년 신학교 2학년 때에 폐병 3기의 진단을 받은 그는 요양 차 이호빈(李浩彬)과 이환신(李桓信)의 고향인 강동(江東)에서 요양 중이었는데 그곳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해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환신과 용도는 부흥회에 대한 두려움으로 대동강 상류 탄면에서 밤이 깊어지도록 기도를 하게 되었다. 첫날 사회를 맡은 용도는 찬송가 163장을 한절을 부르고 두절을 부르고 울기 시작하자 회중도 함께 울었다. 그리고 149장을 부르자 예배당은 통곡의 마당이 되었다.

이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자 그 다음날 환신과 회중의 요청으로 설교를 하게 되었다. 용도는 새벽 강단에 서서 찬송을 불러도 울음이요. 기도를 드려
도 울음. 설교를 해도 울음이었고. 용도가 무슨 말
을 꺼내도 통곡이요 감격이었다.

이를 계기로 용도는 “주님께서 불러 세우시는 것
이었으니 한 마디라도 외치고 당장 죽어지리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주께서 명하시는 말씀을 외치
고 죽는다는 결심이 열정으로, 열변으로 승화되었
다. 그는 그냥 결사적으로 외치자 병약했던 그의 원기가 회복하는 등 놀라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것이 부흥사의 시작이었다. 강동의 사건 이후 용도는 “바치라, 그저 완전히 바치라, 주님께 완전히 바치기만 하면 내 모든 문제는 주님께서 맡아 주관하시고 내 몸 전체도 주님께서 뜻대로 맡
아 사용하신다”는 확신을 얻으며, 주님께서 나를 통해서 하실 일이 있는 동안에는 내 생명을 거두시
지 않으실 것이니 그 뜻에 따라 복종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만 기도하고 준비하고 노력하기로 결심하고 또 맹세 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생의 말년에 대한 최후의 소망이었다.

넷째는 백정봉의 산 기도이다. 신학교 4학년 가을 연회에서는 9월 13일 자로 강원도 통천으로 부임받았으나 별다른 열매를 얻지 못하자 자신의 신앙에 대한 회의를 느꼈다. 이때 박재봉(朴在奉)이라는 청년과 함께 통천읍 서북쪽의 백정봉(百鼎峰)의 바위에 10일간의 불식불음(不食不飮)의 기도를 드리고 하산하였다. 이 기도는 그의 삶의 모든 부분들에 대한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론과 논쟁을 즐겨하던 그는 엎드려 몸부림치며 기도하는 신앙인으로 변화되었다. 이를 계기로 기도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다.

이상의 면들을 살필 때 용도는 가정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자신의 한계의식을 극복하고자 신앙인으로 변화되어가고 있었으며, 그 중에는 개인적인 종교심을 동반한 열정과 신비적인 체험은 그의 요지부동한 신앙의 초석을 이루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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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송도역 남인천 농협앞, 베짜마 카페에서 이종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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