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해조곡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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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이야기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불멸의 여가수 이난영 선생님의 '해조곡'은 이부풍 작사, 손목인 작곡의 작품으로 1937년에 발표되었습니다.

'해조곡'은 한국 가요사에 있어 불후의 명곡이자 일제 강점기 최고의 인기곡으로 꼽히는 '목포의 눈물'이 1935년 오케레코드에서 발매된 지 2년 뒤 같은 작곡가인 손목인 선생님에 의해 쓰여진 노래인데요. '해조곡'은 제2의 목포의 눈물이라는 칭호를 얻으며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같은 해에 발표된 남인수 선생님의 '애수의 소야곡' 보다도 더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노래였다고 합니다.

해조곡(海鳥曲)은 말 그대로 바다새의 노래라는 뜻인데, 노래 가사에서 들을 수 없는 단어를 제목으로 삼은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시대적 배경을 보면 1931년부터 1년간 동아일보에 연재되어 큰 인기를 끌었던 장편소설 '해조곡'의 영향을 받았을거라 추측됩니다.

"갈매기 바다 위에 울지 말아요
물항라 저고리에 눈물 젖는데
저 멀리 수평선에 흰 돛대 하나
오늘도 아, 가신 님은 아니 오시네

쌍고동 목이 메게 울지 말아요
굽도리 선창가에 안개 젖는데
저 멀리 가물가물 등대불 하나
오늘도 아, 동백꽃만 물에 떠가네

바람아 갈바람아 불지 말아요
얼룩진 낭자 마음 애만 타는데
저 멀리 사공님의 뱃노래 소리
오늘도 아, 우리 님은 안오시려나"

아득한 수평선을 바라보며 돌아오지 않는 님을 기다리는 한 서린 여인의 삶이 수채화처럼 그려집니다. 혹자는 일제 강점기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슬픔을 담은 가사라고도 합니다. 어떤 해석이든지 가슴을 저미는 슬픔은 매한가지인 것 같네요. 이난영 선생님의 비음 섞인 애절한 노래가락은 세월을 넘어 지금도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창법이 바로 이난영 선생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1916년 목포에서 출생한 이난영 선생님은 불우한 환경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다 1932년 극단 '태양극장'에 입단하면서 첫 무대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옥례(李玉禮)라는 본명에서 이난영(李蘭影)이라는 예명으로 변신하게 되는 것도 이 시기였습니다. 1933년 태평레코드에서 '시드는 청춘'이라는 곡을 발표하면서 정식으로 가수로서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후 1943년까지 국내 최고의 음반사였던 오케레코드의 간판 스타로서 입지를 굳혀나갔습니다. 1945년 앞서 언급한 노래 '목포의 눈물'이 대히트를 기록하면서 지금까지도 온 국민이 애창하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이 '해조곡'은 이난영 선생님의 노래 스타일을 가장 잘 표현한 곡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요. 선생님만이 표현할 수 있는 애절함과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난영 선생님의 노래는 그 영역이 전통가요를 넘어 여러 장르로 승화되기도 했는데, 1939년 발표된 '다방의 푸른 꿈' 같은 곡의 경우에는 치마저고리의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지금 들어도 세련된 느낌의 재즈스타일로 멋지게 표현했습니다.

이난영 선생님은 1965년 4월 11일, 49세의 나이로 서울 회현동에서 소천하셨지만 선생님의 아름다운 노래들은 지금도 우리 곁에 있습니다. 주옥같은 노래들은 우리에게 유산으로 남아 세월을 뛰어넘는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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