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소통과 인간관계 갈등 해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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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에는 드디어 내면소통이란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내면소통의 뇌과학적인 근거와 유형 등을 통해 내면소통의 깊은 의미에 대해 음미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내면소통은 외면소통의 반대이거나, 여러가지 형태의 소통 중 하나인 것이 아닙니다.
내면소통은 모든 소통의 본질적인 요소입니다.
내면소통은 정보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소통이 아니라 나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종의 행위입니다.
따라서 대표적인 스피치 액트라 할 수 있습니다.
뇌과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말하기와 듣기는 항상 동시에 일어납니다.
말하기 위해서는 듣기와 관련된 뇌 영역이 동시에 활성화됩니다.
뇌의 관점에서 보자면 듣는 것이 곧 말하는 것이고, 말하는 것이 곧 듣는 것입니다.
내 안에서 늘 일어나는 내면소통에 대해 알아차리는 것은 나 자신과 세상 사람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나아가 내면소통의 개념은 우리가 일상 생활 속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다양한 형태의 인간관계 갈등 (감정적 다툼, 오해, 싸움 등)을 해소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해 줍니다.

(출처: 내면소통 343-351)
내면소통의 ‘내면’은 단순히 외면적인 것과 대비되는 개념으로서의 내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데이비드 봄의 내재적 질서와 내향적 펼쳐짐을 포괄하는 개념이며 생성질서와 능동적 정보가 이루어지는 장(field)으로서의 ‘내면’을 의미한다. 또 프리스턴의 능동적 추론이 펼쳐지는 마코프 블랭킷의 내부상태 개념과 생성모델의 핵심으로서 에이전트의 개념도 포괄한다.
내면소통은 모든 소통의 보편적인 모습이며 본래적 실체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든 형태의 소통에도 내면소통이 작동한다. 외재적 질서로 표현되는 여러 가지 소통 현상들은 내면소통의 특수한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내면소통은 내가 나에게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행위가 아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설명하거나 묘사하는 소통을 할 필요가 없으며 무슨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내면소통은 본질적 측면에서 스피치 액트의 성격을 지닌다. 그것은 내가 나 자신을 향해서 어떠한 ‘행위’를 하는 것이다. 내가 나를 비난하든 용서하든 격려하든 칭찬하든 모두 무언가 행위를 하는 일종의 스피치 액트다. 그리고 그 행위의 힘은 막강하다.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은 나 자신에게 즉각적이고도 강력한 효과를 갖는다. 그래서 내면소통은 중요하다. 내면소통이 곧 나의 정체성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내면소통을 하면서 살아간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늘 자기 자신을 새롭게 정의하고 끊임없이 변화시키면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내면소통을 통해 우리 자신을 어떠한 방향으로든 변화시켜나갈 수 있다.

내면소통과 대인소통은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면소통은 대인소통의 필수적인 구성요소이자 전제조건이다. 먼저 내면소통이 있어야만 대인소통이 가능하다. 대인소통은 내면소통의 특수한 한 형태다. 외향적 펼쳐짐과 외재적 질서가 내향적 펼쳐짐과 내재적 질서의 특수한 한 형태이듯 대인소통은 내면소통의 특수한 한 가지 형태다. 대인소통 없는 내면소통은 가능하나 내면소통 없는 대인소통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또한 내면소통의 원인이면서 동시에 결과이기도 한 인간의 의식작용은 내재적 질서의 특성이 명확히 드러나는 사례다.

우리가 어떤 소리를 들을 때에는 우선 일차 청각영역이 활성화된다. 그런데 그것이 사람의 목소리 등 언어일 경우에는 곧바로 베르니케 영역도 활성화된다. 대화를 할 때 우리 뇌는 언어를 듣고 이해하는 청각 관련 부위와 언어를 말할 때 필요한 언어운동신경 부위가 동시에 활성화된다. 즉 상대방의 말을 들을 때 듣는 것과 관계되는 부위만 활성화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말을 할 때(혀와 입술 등을 움직일 때) 관련되는 뇌 부위도 활성화되는 것이다. 예컨대 특정한 단어를 들을 때 그 단어를 듣는 것과 관련된 부위만 활성화되는 것이 아니라 그 단어를 말하는 것과 관련된 부위도 동시에 활성화된다. 물론 ‘듣기’를 할 때 활성화되는 언어운동신경망의 패턴은 ‘말하기’를 할 때 활성화되는 언어운동신경망의 패턴과는 약간 다를 뿐이다. 상대방에게 무엇인가를 말한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소통의 내용을 음성을 통해서 발화하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것을 나는 동시에 듣는 것이며, 내가 듣는 것을 나는 동시에 말하는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순간에도 내 머릿속에서는 듣기 영역뿐 아니라 말하기 영역이 함께 활성화된다. 우리 뇌는 말하기와 듣기를 구분하지 않는다. 말하기와 듣기가 본질적 측면에선 같은 기능이라는 사실은 내면소통과 대인소통 역시 본질적으로 동일한 현상임을 말해준다.

지금 나는 이 책을 쓰고 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도 사실은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나의 생각과 주장을 글로 옮겨놓은 것이다. 모든 글쓰기는 따라서 전형적인 내면소통의 한 형태다. 즉 나의 내면적인 생각은 이 글처럼 그대로 언어로 표현될 수 있다. 언어를 떠나서는 어떤 생각을 한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 그런데 이 글쓰기라는 내면소통은 독자를 향해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내가 쓰는 글이 독자에게 어떻게 읽힐지를 끊임없이 상상하면서 문장을 만들어가고 글을 써내려간다. 나의 내면소통을 글로 표현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독자의 관점에서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 말하기가 곧 듣기인 것처럼 글쓰기 역시 곧 읽기다. 글을 쓴다는 것 역시 내면소통과 대화의 요소를 모두 포함한다. 글쓰기를 통해 나는 내 목소리를 듣고 내 글을 읽는 독자의 생각을 듣는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역시 마찬가지다. 이 글을 읽는 독자의 머릿속에는 분명히 다양한 내면소통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쓰기가 내면소통인 것처럼 읽기 역시 내면소통이다. 텍스트로부터 독립적인 독자의 능동적 역할이 반드시 요구된다는 것 역시 ‘읽기’라는 행위가 본질적으로 내면소통임을 뜻한다.

언어를 사용하는 한 머릿속에서 혼자 하는 생각이라도 ‘나만의 생각’이 아니다. 일종의 사회적 소통이다. 무슨 반성이나 후회 혹은 결심을 하거나 심사숙고를 할 때도 우리는 특정 ‘언어’를 사용한다. 나만의 개인적인 사유를 펼칠 때 공동체의 산물인 언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집단과 구별되는, 집단 이전의, 집단을 구성하는 선험적인 개별적 실체로서의 ‘개인’이라는 개념이 허구임을 의미한다. 한 개인의 정체성을 이루는 기본 바탕인 개인적 사유와 신념체계 등이 본질적으로 공동체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내면소통이 말처럼 그렇게 ‘내면적’이지만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면소통이 언어를 사용하는 한 그것은 이미 공동체적 활동이다. 언어는 일종의 생성질서로서 소통을 통해 의식 속으로 내향적으로 펼쳐져 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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