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몸이다 - 물리적 신체와 소매틱 신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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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눈감고 앉아 있는 것이 명상적 삶이 아닙니다.
잘 자고, 제대로 먹고, 활력있게 움직이는 것이 진정한 명상적 삶입니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지니고 있는 몸에 관한 잘못된 개념을 하루 속히 바꾸어야만
제대로 먹고, 제대로 운동하고, 제대로 잠을 잔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것도 몸이고,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도 몸입니다.
모든 건강과 행복의 근원은 몸에 있습니다.
인간성과 인간관계의 근본적 기반 역시 몸입니다.

우리의 몸은 매일 계속 변화해 갑니다.
매일 수십억개의 세포가 죽어가고 또 그만큼의 세포가 새롭게 탄생합니다.
오늘의 몸과 내일의 몸은 다릅니다.
누구나 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몸을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계속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좋은 방향으로 몸을 하루 하루 만들어 가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대체 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분명히 이해해야 합니다.

현대인들이 지니고 있는 "몸"에 관한 개념과 이미지는 엄청나게 왜곡되어 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의무교육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주입된 데카르트-칸트 식의 기계론적 세계관 때문입니다.
몸에 대한 편견과 오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몸을 매일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대중매체와 소셜미디어가 보여주는 바디 이미지가 건강하고 이상적인 몸의 이미지라 착각한 나마지, 스스로의 몸을 미워하고 싫어하게 됩니다.
스스로의 몸을 다양한 방식으로 괴롭히고, 학대하게 됩니다
그 결과, 건강한 몸을 기반으로 하는 건강한 마음과 감정마저 스스로 해치고 있습니다.

진정 건강한 몸은 남에게 화려하게 드러나는 피지컬 바디가 아니라 나에게 느껴지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소매틱 바디입니다.
만성적인 통증도 없고 감정 조절 장애도 없는 건강한 몸은 편안해서 내 몸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 상태입니다. 반면에, 건강하지 못한 몸은 그러한 능력을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A failure of disattention, rather than a failure of attention—a loss of ability to attenuate, and as such, a loss of capacity to render one’s body comfortably invisible.) 

행복과 건강을 위한 내면소통 명상은 몸에 대한 명확한 이해에서 출발합니다.
내면소통의 핵심 중 하나가 "내 몸과의 소통"입니다 (8장, 9장).
나의 감정은 나의 마음이나 정신의 문제라기 보다는 나의 몸의 문제입니다.
명상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몸으로 하는 것입니다.
특히 편도체 안정화를 위한 뇌신경계이완 훈련, 호흡훈련, 움직임 명상, 내부감각 훈련, 고유감각 훈련 등은 모두 몸에 관한 것입니다.

인간의 몸은 물리적인(physical) 신체와 소매틱(somatic) 신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나는 나의 몸이다" - 정신(mind, soul)을 인간의 본성이라 본 데카르트 이래의 인간관을 근본적으로 무너뜨린 메를로뽕티의 유명한 명제입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데카르트와 칸트가 구축해 놓은 기계론적 세계관에 여전히 갇혀있는 우리의 관점을 니체와 메를로뽕티의 관점에서 돌이켜보겠습니다.
현대 뇌과학은 몸과 마음을 둘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옳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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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른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몸을 본다.
다른 사람이 보는 나의 몸은 물리적 신체(physical body)다.
그러나 내가 자각하는 나의 몸은 ‘소매틱 신체(somatic body)’다.
나의 몸은 타인에게는 물리적 신체지만 나에게는 소매틱 신체다.
다른 사람이 내 손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위해서는 보거나 만지거나 해야 한다. 즉 경험해야만 한다. 다른 물리적 사물의 존재를 인지할 때와 마찬가지다.
그러나 내가 내 손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은 보거나 만지거나 하는 경험을 통해서가 아니다.
나는 내 손을 보거나 만지지 않아도 내 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소매틱 신체다. 소매틱 신체는 말하자면 뇌가 생산해낸 내 몸의 이미지다.

우리 자신의 몸에 대한 이미지는 몸의 물리적 특성에 따라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라기보다는 뇌가 적극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내 몸과 다른 사람의 몸이 확실히 구분된다는 느낌이나, 내 몸의 경험은 나만의 것이라는 개인성 역시 의식의 산물이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나 나의 생각 자체가 나만의 고유한 것이라는 개인성 역시 그러하다.
나의 감정이나 나의 생각 자체가 ‘나’의 핵심적인 정체성이라는 생각 역시 일종의 환상이다.
이러한 환상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이러한 것이 환상임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출처: 내면소통 pp. 200 - 203)

인간의 몸 역시 사물의 일부로 전락했다.
인간의 본성은 몸이 아니라 정신에 있다는 생각도 데카르트 철학의 필연적인 결과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존재가 있다.
하나는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사물로서의 연장체(res extensa)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정신이자 인식의 주체인 인식체(res cogitans)다.
몸은 연장체의 일부로서 인간이 소유한 어떤 것이 되었다.
인간의 정신만이 인간의 본성이고 몸은 그저 물건과도 같은 것이기에 ‘고귀한’ 이념이나 가치를 위해서는 내 몸을 희생하거나 타인의 몸을 파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전도된 가치관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하지만 어떠한 이념이든, 국가를 포함한 어떠한 조직이든 모두 인간의 몸을 위해 봉사해야지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의 몸은 최우선의 가치여야 한다.
몸이야말로 인간성의 기반이고, 정신은 몸의 어떤 기능에 불과하다.
인간의 몸을 희생해서 얻을 수 있는 더 귀한 가치란 없다.
데카르트에 의해 확립된 기계론적 세계관은 보편적이고도 당연한 세계관이라기보다는 17세기에 등장했다가 20세기 들어서 과학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빠르게 사라져가는 세계관이다.
기계론적 세계관은 현대물리학에 의해서 폐기되었고, 직교좌표계는 아인슈타인의 새로운 공간 개념으로 대체되었다.
몸과 마음의 이원론은 바렐라 등의 생물학자, 메를로-퐁티 등의 철학자, 다마지오나 프리스턴 등 여러 뇌과학자에 의해 폐기처분되고 있다.
그런데도 ‘평균적인 민주시민’을 길러낸다는 세계 각국의 의무교육에서는 여전히 칸트나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세계관을 어린 학생들에게 주입시키고 있는 까닭에 여전히 우리의 ‘상식’은 기계론적 세계관에 머물러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내면소통 이론은 기계론적 세계관과 몸-마음의 이분법적인 관점을 지양하고 몸과의 내면소통의 중요성을 최대한 강조한다.
(출처: 내면소통 pp. 290 -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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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몸 철학자 정화열 교수님에 대한 소개 글 (1997년 8월)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

정화열 교수님의 칼럼 연재 (1997년 10월부터. 김주환 번역)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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