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약속대로 안하고, 성질을 건드려! ....프로 레슬링 경기 안에서 우발적으로 벌어지는 실제 격투기(역도산,여건부,안토니오 이노끼) # 역사적인 프로레슬링 명승부 경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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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레슬링은, 미리 정해진 각본대로 싸우는, 공연 스포츠입니다.
그런데, 몸집이 크고, 성격이 와일드한 파이터들끼리 몸을 내던지며 연기를 하다보면, 상대 선수의 사소한 실수 하나에 욱해서, 정해진 대본과 약속을 깨고, 실제 격투에 돌입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보통 프로레슬링 경기에서는 볼수 없는, 약속깨기 실전 상황을 보고 있으면 꽤나 살벌한데요, 프로 레슬링 경기 도중, 실전이 벌어진 대표적인 사례, 3경기를 소개합니다.

일본 프로 레슬링의 선구자였던 한국인 역도산이 1954년 야마구치현 간류지마에서, 일본 역사상 최고의 유도 실력자라고 불리우던 기무라 마사히코와 프로 레슬링 경기를 펼칩니다.
주짓수에서 많이 활용되는 꺽기 기술인 기무라 락의 창시자로 유명한 기무라 마사히코는 그 당시까지 15년동안, 수백차례 대결에서 단 한번도 지지 않았던 유도 최강자로서, 전 일본에서 인기를 끌었던 선수입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대 초. 미국에서 프로레슬링을 배우고 일본으로 돌아온 역도산이, 최강의 격투 스포츠로서, 프로 레슬링의 인기를 전국적으로 이끌어내는데요, 일본 최고의 파이터로서 역도산의 명성이 높아지자, 기무라 마사히코가 역도산에게 찾아가, 링 위에서 대결을 신청합니다.
보통 프로 레슬링 경기처럼, 미리 짜여진 각본대로 대결을 펼치기로 합니다. 그리고 서로의 실력을 존중하며, 무승부로 경기를 끝내기로 합의하죠.

당시 일본 관중들은 프로 레슬링이 각본대로 짜여진 대결이 아니고, 실제 벌어지는 싸움이라 생각했기에, 이 두 강자의 대결에 깊은 관심을 갖고, 손에 땀을 쥐며 경기에 몰입합니다.
각본대로 경기를 진행하던 두사람. 그런데 갑자기, 기무라 마사히코가 역도산을 향해 발로 로우블로우를 가격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고의였는지, 실수를 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프로레슬링에서 상대의 낭심을 실제로 걷어차는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었는데요,
그 행동에 순간적으로 격분한 역도산은 그때부터 대본을 깨고 실전 타격에 돌입합니다.
당황한 기무라가 테이크다운으로 저지해 보지만, 이미 흥분한 역도산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에게 킥과 스트레이트를 연거푸 날립니다.
역도산의 난타에, 한번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정신없이 당하고 있던 기무라는 결국 비참하게 KO를 당하게 되죠.
기무라의 KO는 서로간의 약속을 깬 역도산의 반칙입니다.
하지만, 주최측은 관객들에게 이 싸움이 실전으로 보여져야 했기때문에, 그대로 역도산의 승리를 선언합니다.
실제로는 약속을 깬 반칙 경기였지만, 표면상으로는 정식 경기가 되어버린 것인데요, 일본 언론은 그들의 프로레슬링 스타 역도산이 무패의 유도 영웅을 꺾었다며 대서특필 하였고, 이 어색한 승리로 인해 역도산은 국민적 레슬링 스타로 떠오릅니다.

반대로 기무라 마사히코는 이 처참한 패배로 인해, 그동안 쌓아온 자신의 명성에 큰 타격을 입습니다.
이 경기 이후, 기무라는 평생 역도산에게 마음의 응어리를 안고 살았다고 합니다.
역도산은 이 경기로부터 9년 후, 일본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야쿠자와 시비 끝에 살해되는데요, 이 사건에 대해 기무라는, 역도산이 죽은 것은 야쿠자 때문이 아니라, 내가 평생 그의 죽음을 저주하였기 때문이었다고 말했을 정도였습니다.

일본의 프로 레슬링의 최고 스타는 안토니오 이노키죠.
1976년 무하마드 알리와 이종격투기 세기의 대결을 펼쳤던 그는, 그 이후로 전세계의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프로레슬링 매치를 벌입니다.
1977년 10월에는 캐나다의 거인 차력사, 그레이트 안토니오와 프로레슬링 시합을 펼치기로 하는데요,.
그레이트 안토니오는 승객을 실은 버스 3대를 한꺼번에 맨손으로 이끌고 가는데 성공하여,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던 괴력의 소유자였습니다.
그와 안토니오 이노키와의 대결도 물론 모두 약속된 대본대로 경기를 하기로 되어 있었죠.

하지만 그는 안토니오 이노키가 공격할때, 쓰러져야 하는 상황에서 쓰러지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액션을 취합니다.
이런 상황이 잇따라 반복되자, 안토니오 이노끼는 짜증을 내기 시작했죠.
이노키의 공격에 그레이트 안토니오가 무반응으로 일관하고, 오히려 이노키의 목덜미를 잡아 내려치는, 대본에도 없던 상황을 만들어내자, 이노키가 결국 폭발해 버립니다.
그리고 곧바로 실전 격투를 실행하는데요, 그의 매니저까지 링에 뛰어 오르며 말려보지만 결국 그는 처참하게 KO를 당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로 레슬링 경기에서 이런 약속깨기 상황은 실제 승부로 받아들여집니다.
일본 프로레슬링 영웅 안토니오 이노키는 4년전 전신성 아밀로이드증이라는 희귀성 난치병에 걸려 병마와 싸우다가, 올해 2022년, 10월 심부전으로 79세의 나이에 사망합니다.

마지막 사례는 1970년대 프로레슬링을 좋아하던 팬들에게 큰 인기가 있었던 여건부의 경기입니다.
원래 재일교포였던 여건부 선수는 일본에서, 헤드락 펀치로 유명한 프로레슬링 스타였죠.
여건부는 1970~80년대 한국에서 펼쳐진 프로레슬링 경기에서, 김일 선수의 초청으로 많이 출연했었죠.
그는 1982년 영국의 프로 레슬러 다이나마이트 키드와 싱글 매치를 벌이는데, 사전에 합의된 각본은 여건부 선수의 패배였습니다.
아무리 패하기로 되어 있어도, 경기 내용은 각본대로 진행되어야 할텐데요, 다이너마이트 키드 선수는 자신이 공격하는 상황에서는 각본대로는 연기를 하면서도, 여건부 선수의 공격 기술을 받아주질 않습니다.
여건부가 그에게 주의를 주지만, 오히려 각본에도 없던 무릎차기를 시도하자, 여건부 선수가 참지 못하고 실제 싸움을 걸게 되죠.
키드는 급소차기로, 그리고 여건부는 프론트 헤드락으로 서로 치고 받으며, 프로 레슬링 경기 같지 않은 희한한 상황이 전개되는데요,.
계속 실제 싸움으로 이어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여건부 선수가 확전을 피하고, 정해진 승부를 받아들여, 이 경기는 큰 탈 없이 종료됩니다.
여건부 선수는 50이 되어서도 선수 활동을 이어가다가, 2010년, 뇌경색과 폐렴으로 63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납니다.

일본의 프로 레슬링에 경기들 중에는 처음부터 아예 각본없이, 실제로 격투 대결을 펼치는 경기가 있습니다. 이를 시멘트 매치라고 하는데요,
프로레슬링 실전 대결인 시멘트 매치는 템포가 매우 빠르며, 맨손 주먹 타격과 실제 관절기를 사용함으로 인해, 경기 내용이 과격합니다.
그래서, 일반 프로 레슬링와는 달리, 실전 MMA 경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의 슈퍼 타이거와 마에다 히아키 선수간, 1984년에 벌어진, 프로레슬링의 대표적인 시멘트 매치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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