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의 기적(소경이 빛을 본 사건/요9장1-12절)2024년 11월 17일 주일예배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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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암의 기적
요한복음 9장 1-12절

시력이 없이 태어났다면 삶이 어떠할지 상상해보셨습니까?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시고 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감탄사를 쏟아내셨습니다. 시력없이도 꽃향기는 맡을 수 있지만 빨강 노랑 보라 초록같은 단어는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대자연과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시력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조차 모릅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은 우리는 태어날 때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악한 세상에 우리는 영적인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적의 사건이 아니고서는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그 기적이 사건이란 바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잃어버린 영적시력을 주시려고 인간이 살과 뼈와 가지고 세상에 들어오신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다가 군중이 반발하여 예수님을 돌로 치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피하여 성전 밖으로 걸어 나오셨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을 보셨습니다.
여기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화를 들어보십시오.

신앙은 관점을 바꾸는 것입니다.

9:1 예수님께서 지나가실 때에 태어날 때부터 눈먼 사람을 보시매  9:2 그분의 제자들이 그분께 여쭈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누가 죄를 지었기에 그가 눈먼 자로 태어났나이까? 이 사람이니이까, 그의 부모이니이까? 하니  9:3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의 부모나 죄를 짓지 아니하였으며 다만 이것은 그에게서 하나님의 일들을 나타내고자 함이니라.  

제자들이 묻습니다. 이 사람이 이렇게 태어난 게 누구 죄 때문입니까?
우리도 이런 질문을 던질 때가 있습니다. “왜 나는 이런 환경에서 태어났을까?, 왜 나에게 이런 억울한 일이 일어났을까?,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어떻게 이리도 불공평하실 수 있는가? 누구 때문에 내가 이런 고생을 하는가?”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어떻게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문제들이 일어납니다. 제자들의 말은 당시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을 보여줍니다. 어떤 사람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면 그것을 부모나 자신의 죄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들의 세계관은 불교적 세계관과 닮아 있습니다. 태국은 불교 국가입니다. 장애인으로 태어나면 전생의 죄값을 치룬다고 말합니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은연중에 사람들은 전생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윤회를 믿는 힌두교적 세계관입니다.

제자들은 당시 유대인들이 보는 것과 같은 관점을 가지고 그 소경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회에 다니지만 우리의 관점과 생각은 여전히 교회 밖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인생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장애를 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죽음에 대한 관점이 달라져야 합니다.
물론 이 세상의 불행이나 고통은 인간의 죄 때문에 들어온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본질적인 문제이지 모든 사람의 고통과 질병과 장애를 다 적용해서는 안됩니다. 여기 시각장애인이 죄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면 왜 그 사람만 그런 불행을 당해야 합니까? 모두가 똑같이 그런 일을 당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타인의 불행을 보고 죄 때문이라도 단정적으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이 사람이나 그의 부모의 죄 때문도 아니다. 이것은 그에게서 하나님의 큰 일을 나타내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서 어떤 선한 일을 이루기 위해 그를 앞못보는 장애로 태어나게 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큰 그림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장애가 있는 그 사람이 무슨 큰 죄를 지었거나 자녀를 둔 부모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거 아냐 라고 판단합니다.
사람의 입장에서는 왜 하필 그네 나냐고요 할 수 있지만 우리가 하나님이 크고 깊으신 뜻을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고난은 해석의 문제입니다.
설교 준비를 하다가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일본으로 선교하러 갔던 미국인 선교사 한 분이 예수를 전한다는 이유 때문에 참수를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간호사인 그 선교사님의 딸이 하나님을 향해 울부짖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왜 아빠가 참수를 당합니까? 신앙에 회의가 들고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는가’라는 질문으로 결론이 내려졌다고 합니다. 이 간호사는 전쟁 후에 부상 당한 일본 포로들을 찾아가서 돌보면서 전도를 하다가 다시 일본 선교사로 떠났다고 합니다.
여러분, 고난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똑같은 고난인데도 어떤 사람은 그것을 축복으로 변화시키고 어떤 사람은 저주가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어떤 불행한 환경에 있든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불행이나 상황보다 하나님의 계획이 훨씬 더 크고 놀랍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십니다
요한복음 9장 4,5절을 보십시오

9:4 낮일 때에 내가 반드시 나를 보내신 분의 일들을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면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9: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다, 하시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의 잘못된 신학을 바로 잡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 때문에 세상에 오셨는지 말씀하십니다. 내가 반드시 나를 보내신 분의 일들을 하여야겠다. 밤이 오면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께서 세상에 와 계신 때를 낮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낮동안에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미션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왜 소경을 고쳐주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바로 소경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하신 사건이 바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적으로 소경되었던 저와 여러분의 눈을 떠서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보게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9:6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그분께서 땅에 침을 뱉고 침으로 진흙을 이겨 그 눈먼 사람의 눈에 진흙을 바르시며  9:7 그에게 이르시되, 가서 실로암 못에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내어졌다는 뜻이라.) 그러므로 그가 자기 길로 가서 씻고 보게 되어 왔더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예수님께서 땅에 침을 뱉고 침으로 진흙을 이겨 그 눈먼 사람의 눈에 진흙을 바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실로암 못에서 씻으라”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가 실로암 못에 가서 씻자 시력이 돌아와서 보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너무 기쁘고 감격한 나머지 춤을 추면서 예수님께 와서 감사를 드렸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왜 그 사람을 침과 진흙을 섞어 눈에 발라주셨는지 잘 모릅니다.
실로암이란 뜻은 보내어졌다 뜻입니다. 그 소경은 예수님이 시킨 대로 씻고 보게 되었고 예수님께 다시 왔습니다. 그는 순종했습니다. 믿음은 이성을 뛰어넘습니다.

요한복음 9장 11,12절을 보십시오
9:11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예수라 하는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내가 가서 씻고 시력을 받았노라, 하니  9:12 이에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그가 어디 있느냐? 하매 그가 이르되, 나는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이웃 사람들과 그가 전에 구걸하던 것을 보아온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이 사람은 앉아서 구걸하던 사람이 아닌가?’” 사람들은 토론하기 시작했습니다.“몇몇 사람들은 그 사람이라고 말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아니다. 그냥 닮았을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내가 바로 그 사람이오.’”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의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자기가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나면 누가 뭐라고 해도 그리스도를 전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는 더 이상 소경이 아닙니다. 그는 눈을 떴습니다. 더 이상 그는 불행하지 않습니다. 그의 불행이 그리스도는 만난 계기가 되었습니다. 내 인생에 어떤 환난과 고난, 어떤 부조리와 억울함이 있어도 하나님을 만나면 축복이고 인생 역전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맹인을 고쳐주신 것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빛이요 구원자이심을 믿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요한복음에 기적이 7차례 밖에 나오지 않는데 실로암에서 시각장애인이 눈뜬 이야기는 6번쨰 표적이었습니다.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말씀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보고 감탄하고 SNS에 올리고 자연 앞에서 경외감을 가지면서도 그것을 만드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것은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우리 눈이 어두침침해지고 언젠가는 눈이 어두어져서 앞을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빛되신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은 영원한 영적시력을 잃지 않습니다. 그들은 천국에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천국에서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여러분은 영적으로 눈을 뜨게 될 것이며 그 시력은 결코 떨어지지 않습니다. 영적시력을 주셔서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고 하나님의 왕국에 초대해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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