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변란사] 영창대군의 살해와 폐모의 출발점, 계축옥사(癸丑獄事)

Описание к видео [조선변란사] 영창대군의 살해와 폐모의 출발점, 계축옥사(癸丑獄事)

#조선변란사 #영창대군 #광해군 #인목대비 #공빈_김씨 #계축옥사 #선조 #정인홍 #유영경 #이항복 #이덕형 #심희수 #이언적 #이황 #회퇴변척소 #강변칠우 #의인왕후 #기자헌
계축옥사(癸丑獄事)는 광해군 5년인 1613년에 대북파가 영창대군 및 반대파 세력을 제거하기 위하여 일으킨 옥사로 계축사화 또는 ‘칠서의 옥’이라고도 합니다.
1608년에 광해군이 즉위했고 그의 지지 세력이었던 대북의 기자헌, 이이첨, 유몽인이 실세로 떠오르는데 집권하자 대북은 소북의 영수이자 영창대군을 지지했던 유영경을 제거하는데 성공합니다.
선조의 정비 의인왕후 박씨는 왕자를 생산하지 못한 채 1600년 사망하였고 1602년 의인왕후의 빈 자리는 19세의 인목왕후 김씨가 차지하였습니다.
당시 선조는 후궁인 공빈 김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두 왕자 임해군과 광해군이 있었는데 임해군은 이미 자질에서 문제가 드러났지만 전란 후 능력을 인정받으며 커버린 광해군은 큰 정치적 부담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선조의 마음을 파고 든 것은 어린 계비가 낳은 영창대군으로 1606년 55세라는 늦은 나이에 적장자를 본 선조의 기쁨은 누구보다 컸습니다.

이런 분위기속에 선조의 환심을 사고자 영창대군의 세자 책봉을 은근히 청하는 세력들도 생겨났는데 결국 영창대군의 탄생을 계기로 북인은 다시 두 개의 당파로 나뉘어졌습니다.
광해군을 지지하는 대북과 영창대군을 지지하는 소북이 그것으로, 대북의 중심에는 정인홍이, 소북의 중심에는 유영경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선조는 영창대군을 지지하는 소북의 영수 유영경을 영의정으로 임명하면서, 당연히 광해군으로 이어질 것 같은 왕통에 영창대군이라는 변수가 있음을 암시하였습니다.
선조 후반의 정국에서 영창대군은 광해군을 제치고 차기 대권 주자로 급부상 하였으나 선조의 급서로 정국은 일변하는데 어린 영창대군을 왕위에 올리는 것이 불안한 선조는 광해군을 국왕에 올릴 것을 명했습니다.
광해군 정권의 출범은 한편으로 가장 강력한 왕위 계승의 라이벌이었던 영창대군과 그를 지지하는 세력에 대한 정치적 보복을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Комментарии

Информация по комментариям в разработке